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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 Dec 02. 2023

스물일곱, 뮤지컬을 배우러 뉴욕에 갔다

다시 삶을 사랑하기 위한 모험이라는 몸부림

스물일곱 살 봄, 첫 퇴사를 했다. 그리고 두 달 반 뒤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뉴욕의 영화학교에서 열리는 뮤지컬 수업을 듣기 위해.




뭘 많이 준비하고 결정한 퇴사는 아니었다. 대안은 없었지만 이유는 많았다. 그중 첫 번째는 나를 살리기 위한 선택이라는 것이었다. 내 안에 내가 대답해야 할 절박한 질문들과, 숨 쉬게 해 줘야 할 나 자신이 있었고, 울컥울컥 올라오는 간절한 요청에 응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일단 9-6 직장을 인생에서 치우는 일이었다.


다음 갈 곳을 정해 놓지 않고 퇴사를 한다고 하니 동료들은 불안하지 않냐고 물었다. 격려차 대단하다는 말도 얹어 줬다. 근데 사실 난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게 더 불안했다. 이 일을 계속하면 이 일을 '계속' 하게 될 것 같은데, 행동하지 않고 하루하루 내 젊음을 돈과 맞바꾸고 있다는 생각이 날 조급하게 했다. 돈은 당겨 쓸 수 있지만 젊음은 밀어 쓸 수 없으니까.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 일상이 나를 살고 싶게 하는 일들로 채워져 있지 않다는 게 힘들었다. 일이 단지 먹고살기 위한 거라면 그 먹고살아야 하는 삶이 적어도 일의 괴로움만큼은 매력적인 것이어야 할 텐데, 당시의 나에게는 삶의 고됨만 있고 살아갈 이유가 딱히 없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살아 있지만 죽어 가고 있었다.


집에 돈이 많은 것도, 모아둔 돈이 많은 것도, 나를 확실하게 부양할 자격증이나 학위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다만 스스로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양새를 봤을 때, 내가 어떻게든 나를 먹여 살리기는 할 거라는 소박한 믿음을 가져 보기로 했다.




그렇게 난 정기적인 근로소득을 자진 상실하고 젊은 날의 하루를 24시간으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갑자기 너무 많아진 시간을 양손 가득 들고 고민에 빠졌다. 뭐부터 해야 할까?


공부를 할 수 없는 건 분명했다. 몇 시간씩 앉아서 뭘 하는 걸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혔다. 학생 때였다면 책상에 앉아서 집중할 수 없는 상태를 인정하지 못하고 스스로가 의지박약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렸겠지만, 이때 나는 그저 내가 책상 앞에서 쓸 수 있는 연한을 다 썼을 뿐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땐 잘했지만 지금은 아닌 것이다.


그럼 지금의 내가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했다. 열심의 기준은, 하루 14시간을 쏟을 수 있는 일. 어떤 일을 하면 그렇게 힘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노래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미국에 가서 뮤지컬을 배워 보기로 했다. 환경을 바꾸기도 해야겠고, 가진 기본기 같은 게 없으니 잘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구글링을 시작해 맨해튼의 한 영화학교에서 4주 뮤지컬 워크샵 과정을 운영한다는 걸 알게 됐고, 그걸 수강하기로 결심했다.




폭풍 같은 한 달이 이어졌다. 시간이 촉박해 필요한 비자가 제때 나올지 불확실한 상태에서 비행기표, 등록금, 기숙사비를 결제했다. 출국일 하루 전 기적적으로 학생비자가 나왔다. 가슴을 쓸어내릴 새도 없이 뉴욕행 짐을 쌌다.


출발하던 날은 폭우가 쏟아졌다. 정차하는 공항버스 바로 앞에서 빗물에 캐리어를 놓치는 바람에 손잡이가 버스 바퀴에 밟혀 출발도 전에 박살이 났다. 그래도 불행하지 않았다. 출발할 때의 다짐은 돌아오지 않을 길을 찾는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론 얌전히 귀국을 했다. 돌아오게 되면 불행할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길 역시 불행하지 않았다.


뉴욕에 있는 동안 매일매일 일기를 썼다. 몇 달이 지났고 이제 난 뉴욕에서 가져온 기억으로 서울에서의 복작복작한 삶을 살아갈 힘을 내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생각해 보니 내가 '스물일곱 살에 퇴사하고 뮤지컬을 배우러 뉴욕에 다녀온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대단한 이력은 아니어도 얘깃거리 같긴 했다. 그래서 브런치 작가 등록을 했다.


이제 나를 살리기 위해 향했던 뉴욕, 대체로 행복하고 생기 넘쳤던 그 도시에서의 시간과 그 전후의 이야기를 써 볼까 한다. 사랑할 길 없어진 듯했던 삶을 다시 사랑하기 위한 노력의 자취랄까. 누군가가 저렇게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누군가는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근데 뭐 그렇게까지 바라는 건 좀 거창하니까, 그냥 재밌는 글이 되길 바라 본다.

뉴욕필름아카데미(New York Film Academy)의 교실에서 내다보였던 허드슨강 전경. 저 멀리 자유의 여신상도 작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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