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 년간 하루에 한 번은 꼭 들던 의문. '워킹맘은 어디까지 일해도 되는 걸까'.
이십 대에 결혼해서 취직하고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는 지난 십 년은 그저 생존의 시간이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저 당장 내게 주어진 아내, 교사, 엄마의 역할을 닥치는 대로 해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지내왔다.
둘째가 36개월 영유아기가 지난 작년 여름부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이제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어느 정도 내가 감당할 수 있다는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그 여유를 만끽하면 좋으련만 틈이 생기자마자 나는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미뤄두었던 수많은 과제들 앞에 달려들었다.
전국 국어교사 수업 연수 참여를 비롯해 교과서 검토, 추천 서평 작성, 자습서 집필 등 국어 교과와 관련된 다양한 일들을 들어오는 대로 수락했다. 평소 궁금했지만 차마 들여다보지도 못했던 영역들. 내가 잘할 수 있는지 좋아할지 경험해보고 싶었다. 예상했듯 나는 여러 선생님들과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즐겼고 문제 출제를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몰입하는 순간을 좋아했고 육아로 인해 시간을 쪼개 써야 하는 상황에 큰 스트레스를 느꼈다. 앞으로는 들어오는 대로 일을 맡지 않고 조금 더 내가 즐거워하는 일들을 중점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간 강의만 듣고 미뤄두었던 부동산 임장도 소모임을 꾸려 몇 달간 다녔다. 수도권에 관심 있던 동네들을 직접 찾아가 눈으로 보니 강의를 들어도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가격에 대해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3년간의 주식 투자 공부로 대단치 않지만 처음으로 수익도 내보고 대출도 갚으며 그간 공부한 보람도 느껴보았다. 앞으로 5년 간이 우리 가정에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3년처럼 할 자신은 없지만 꾸준히 공부하며 이 시기를 지혜롭게 보내고 싶다.
무엇보다 제일 해보고 싶었던 책 쓰기에 도전해 보았다. 그동안 블로그와 브런치에 쓴 글을 모으고 다듬어 투고를 해보았다. 그 과정이 매우 즐거웠다. 교사가 아니라면 매일 이렇게 읽고 쓰는 삶을 살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두 권은 투고하겠다고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한 권 투고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운 좋게 출판사 미팅까지 갔으나 최종계약을 앞두고 흐지부지된 상태이다. 다른 일들과 복직으로 분주해지면서 나도 책 쓰기에 대해 힘이 빠졌다. 그러나 같은 글쓰기 소모임 선생님들께서 차례차례 책을 내는 과정을 지켜보며 포기하지 않고 두드리다 보면 내 책을 내는 날이 꼭 오리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이렇게 좋아하는 일들, 아니하고 싶었던 일들을 실컷 하다 보니 매일같이 드는 생각이 있다. 하고 싶은 일만 실컷 좀 하고 살고 싶다. 그러면 아이들 생각이 뒤따라온다. 이럴 시간에 아이들 공부 하나라도 더 챙겨줘야 했던 것 아닌가. 나는 엄마인데 아이들의 성장보다 엄마인 나의 성장에 더 관심이 많은 거 아닌가. 엄마인 내가 어디까지 일 욕심을 내도 되는 걸까. 일하는 나도 엄마인 나도 사람은 하나인지라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일에 욕심을 내는 만큼 아이들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내줄 수 없으니 매번 마음이 편치 않다.
문방구에서 너무나 갖고 싶은 두 개의 물건 중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제자리에 서서 갈팡질팡 이도저도 선택 못하는 아이가 된 것 같다. 물론 하나만 선택할 수 없고 둘 다 병행해가야 한다. 하지만 엄마와 일하는 여자 사이에서 늘 그 어느 역할도 자유롭지 못한 기분이다. 잘 산다는 것이 여러 역할들 가운데서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그 어느 적당한 지점을 찾아가는 것이겠지만 매번 참 어렵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지는 대로 그저 흘러가듯 살지 않고 나답게 잘 살아내려 부단히 애쓰는 나의 노력들이 언젠가 살고 싶은 그 삶을 살게 해주지 않을까? 일단 나아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