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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지혜 Apr 29. 2024

사랑한다는 것은 시간을 들여 관찰한다는 것

초1 딸 봄이 관찰 일지

  예전에 개인적인 마음의 문제로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상담 선생님께서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는 책을 추천해 주셨다. 책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좋았다. 그 책을 통해 나는 '사랑한다는 것은 관찰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처음 낳고 기르는 내 두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헤매고 있을 때 이 책을 읽고 나는 아이들을 관찰하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내 평생 내 아이들을 지켜보며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가기로 했다.

  요즘 초등학생이 된 첫째 딸 봄이를 관찰하며 봄이를 발견한다. 봄이는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면 일단 만들기를 한다. 스퀴시라고 솜을 넣어 예쁜 종이 장난감을 만드는 것에 푹 빠져있다. 내버려 두면 한 시간이 꼬박 넘도록 자르고 붙이고 있다. 봄이에게 스퀴시 만드는 게 그렇게 좋냐고 물으니 "종이를 오리는 건 조금 지루해. 그런데 오리는 거 말고 붙이고 솜을 넣고 하는 나머지는 다 정말 즐거워!"라고 대답했다. 내가 사준 스퀴시 도안 책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때때로 자기가 도안을 그려서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 아이디어나 완성품이 제법 근사하다. 나는 어릴 때 만화책 위에 미농지를 깔고 따라 그리거나 낡은 내 옷을 잘라 인형옷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시간만 나면 그러고 있었는데 그 즐거움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래서 봄이가 만들기를 하는 시간이 쓸데없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인생에서 몰입할 정도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큰 선물이기 때문이다.

  봄이는 스퀴시를 다 만들고 나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한 그림들을 주로 그린다. 봄이 스스로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리면 펜트리 하얀 문짝에 붙여준다. 문짝에 그림이 가득 차면 새로운 그림을 붙이기 위해 그중 하나는  떼어내서 그림 폴더에 넣어두라고 한다. 봄이는 스스로를 '꼬마 화가'라고 부른다. 장래에 화가가 될지 아이돌이 될지 고민 중이라고 한다. 만들기와 그림 그리기야 매일 하니 화가야 그렇다 치고 춤은 일주일에 방과 후 댄스 수업 때 한 번만 추면서 웬 아이돌...과 같은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 했으나 참았다. 엄마인 나조차 내 딸의 가능성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으니까.


  그림을 다 그리고도 시간이 있으면 책을 읽는다. 다행히 봄이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컸다. 내가 읽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책을 가져다 읽으니 이만하면 지난 7년간 매일 책을 읽어준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봄이가 빠져있는 책은 의외로 어린이 시집이다. 그냥 그림이 예쁘고 시라는 갈래도 접하게 해주고 싶어 구해준 어린이 시집을 매일 책가방에 넣어 다닌다. 그리고 나와 자주 함께 낭독하고 싶어 한다. 그러더니 오늘 아침에는 "엄마, 내가 처음으로 쓴 시집이야"라며 무언가를 가져온다. 종이를 접어 미니북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시를 적었다.

사랑이 담긴 담요

담요 덮고 잘 때
사랑이 넘어가네.
그래서
엄마 아빠한테 가네.


아직 시를 더 써서 채워야 하기에 미완성이라고 한다. 대학에 가서 국문학과 시 쓰기 수업 때 처음 시를 쓴 기억이 있는 나에게는 시키지 않았는데 혼자 시를 써보는 봄이가 신기했다. 창작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봄이가 기특했다.

최근 봄이 친구들이 수학 학원에 다니는 것을 보며 그동안 봄이의 영어와 국어에만 신경 쓰며 키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이과 전공 부모들이 수학에 더 신경 쓰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수학과 과학에 큰 흥미가 없으니 집에 있는 수학전집이나 과학전집을 자주 읽어주지 않게 된다. 이제 조금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에 에너지를 덜 쓰게 돼서 무언가 더 해줄 힘이 생겼다. 그래서 어린이날 선물 겸 다섯 살인 둘째 가을이까지 고려해서 수학 교구 하나를 구입했다. 그리고 연산을 활용하는 수학 보드 게임을 주문했다. 책도 간신히 읽어주고 영어 학원 숙제도 겨우 봐주는 상황에 내가 수학 놀이까지 해줄 수 있을까 자신은 없지만 일단 도전해 보기로 한다. 안되면 당근 하지 뭐. 당장은 수학 보드게임을 함께하면서 봄이 와 전혀 나누지 않던 수학에 대해 대화할 수 있어 좋다. 아이를 키우며 최고를 경험시키보다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고 싶다.


  그 외에 봄이는 초등학생이 돼서 줄넘기에 빠져있다.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줄넘기를 자주 하나보다. 친구들이 줄넘기 학원을 다니며 빠르게 실력이 늘자 봄이도 다니고 싶어 한다. 아직은 영어학원 이틀 가는 것도 피곤해해서 여름방학 특강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어제는 체육대회에서 달리기 꼴등을 했는데 울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봄이 일기장에 사실은 속상했다고 적혀있었다. 괜히 어제 생각 없이 새 운동화를 신겨서 아이가 잘 달리지 못한 거 같아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어릴 적 그랬듯 봄이도 학교에서 처음 만나는 여러 상황에서 생각이 자라고 마음이 단단해져 간다는 것을 느낀다. 엄마 품을 떠나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봄이가 내심 대견하다. 

  사랑은 시간을 들여 주목하고 관찰하는 것. 봄이의 삶을 이끄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늘 지켜보고 기도해 주고 도움을 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를 사랑하는 일, 곧 아이를 관찰하는 일이 나에게도 기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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