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요즘 아이들은 우울할까

고등학교 교사가 보는 청소년 우울증의 원인

by 옥돌의 지혜

작년 고2 담임을 하며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 중 하나가 '왜 요즘 아이들은 우울할까'였다. 일 년 동안 서른 명 남짓한 반 아이들 중에 열 명 가까이가 우울감으로 인해 심리 치료를 받았다. 그 중 다섯 명 정도는 자해나 자살을 시도할 만큼 심각한 우울에 빠져있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했다. 매일 우울감을 호소하는 아이들과 상담하고, 밤마다 아이들이 어떻게 될까봐 두려워하며 잠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을 보다 더 잘 도울 수 있을지, 왜 요즘 아이들이 이토록 우울한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각종 심리학 책들을 사 읽었다. 주변 선생님들과 이 문제에 대해 자주 토론했다. 청소년 우울에 관한 교육청 연수도 신청해 들었다.


나의 기대와 달리 내 학생들의 우울감은 일 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부분 더 심각해졌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기분이 들었다. 매일 시간을 쪼개 학생과 학부모를 상담하고, 병원에 연계해 상담치료를 받게 하고, 학교 밖에서도 꾸준히 연락하며 관심과 애정을 들여 보아도 아이들의 우울감에 나의 노력은 닿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이 아이들에게 나의 모든 힘을 다 쓰느라 소외되고 있는 나머지 반 아이들이 나를 이해하고 위로해주었다.

아이들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대학생 때부터 청소년을 가르치며 지켜본 시간만 십 년이 넘는다. 긍정적인 변화들(자기주도성, 자기표현, 뚜렷한 목표의식 등)도 분명 있지만 부정적인 변화들도 급격하게 일어나는 것 같다. 그 중 작년 일 년 간 가장 크게 체감한 부분이 바로 아이들의 '우울감'이다. 그저 어느 세대나 겪었던 사춘기의 우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수준까지 갔다고 느껴진다. 왜 요즘 아이들이 이렇게 우울할까. 내 학생들을 상담하고 지켜보며 그나마 내가 찾은 원인들은 이러하다.

우선, 우울한 학생들은 대체로 가정에서 불행하다고 느꼈다. 즉, 가족 안에서 소통이 부재하고 있었다. 경제적 형편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대체로 부모님이 많이 바빴다. 그리고 부모님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또한 부모님의 생각을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말 놀랐던 것은 아이들이 자해를 하고 자살 시도를 하는데도 부모님들의 첫 번째 걱정이 아이의 입시 성적에 미칠 영향인 경우였다. 아이는 죽을 만큼 힘들다고 호소하는데 그 절박함이 부모님의 마음에 닿지 않는 것 같아 내가 다 속상해서 부모님께 울며 부탁한 적도 있다. 아이가 심리 상담을 받으면 강제로 부모도 같이 심리 상담을 받게 하는 법이 있었으면 싶었다. 부모가 아이의 심리적 방패가 되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가장 날카로운 검이 되어 마음을 찌르고 있었다. 오랜 기간 그런 아픔을 견뎌오던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어 못 버티고 무너지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 몇 년 전 담임 반에 인상 깊은 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은 고1 때 심한 우울감을 겪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대기업에서 일하시며 바쁘셨고 휴가 때마다 해외 유명 호텔에서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어려서부터 빈 집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에 지쳤다고 했다. 아이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고 성적이 많이 떨어지면서 학생의 부모님은 아이의 우울감을 알아채셨다. 그리고 학생의 어머니가 큰 결단을 내리고 직장을 그만두셨다. 아이의 아침밥을 챙겨주시고, 일부러 등하교를 함께 하시고, 저녁을 먹은 뒤 같이 산책하고, 독서실이 끝나면 데리러 가셨다고 했다. 그 학생은 나에게 말했다. "우리 엄마가 일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줄 처음 알았어요. 선생님, 저 진짜 열심히 해서 엄마가 회사 그만둔 거 후회하지 않게 하고 싶어요. 저 공부하는 거 도와주세요." 그 학생은 고2 말에 가장 성적이 많이 향상된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았다. 학생 부모님의 결단도 대단하지만, 부모가 보여준 사랑에 열여덟 살짜리 아이도 이토록 빠르게 변한다는 것에 더욱 놀랐다.


모든 부모가 생업을 내려놓고 자식을 돌봐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앞으로는 더 많은 부모들이 맞벌이로 아이들을 키울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내가 만난 학생들은 부모의 애정을 기가 막히게 잘 알고 반응하고 있었다. 충분한 물과 햇빛을 받으며 자란 나무들은 무성한 잎사귀뿐만 아니라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반면 최소한의 물과 햇빛도 부족한 나무들은 시들어 죽어간다. 그럼에도 뒤늦게 시들어가는 나무에게 물과 햇빛을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더 빠르게 영양을 흡수하고 쑥쑥 자라난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딱 그런 나무 같다고 느꼈다. 어떤 부모님들은 가정에서 결핍된 애정을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채워주면 되지 않느냐며 요구한다. 물론 학교에서도 노력한다. 우리 아이들 더 많이 사랑해주고 더 잘 가르치려고. 그러나 아이들은 선생님보다 부모님을 더 사랑한다. 한 선생님을 인생에서 만나는 시간을 짧지만 부모님은 평생이다. 부모가 더욱 힘써 아이들의 마음을 지켜줘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 반 우울한 아이들은 대체로 유년시절에 충분히 놀아보지 못했다. 우울감을 호소하는 학생들 중 절반 이상이 학령기 이전부터 지나친 사교육으로 많이 지쳐있었다. 영어유치원을 다니며 그 때부터 학업에서 열등감을 느끼고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낮은 자존감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이 이후 학교생활을 하며 학업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많이 미쳤다. 우리나라 입시 구조 상 고등학생 때 가장 집중력 있게 학습을 해야 하는데 이미 공부라면 학을 떼는 마음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유년시절에 충분히 놀며 즐거움을 만끽한 기억이 있어야 고등학생 때 제한된 입시 환경을 어느 정도 견뎌낼 힘이 있는데, 이미 에너지가 바닥이 나있는 아이들에게 고등학교 3년을 버텨야한다는 것은 너무 큰 두려움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고2때부터 제대로 공부를 시작했다. 나를 가르친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모교에서 십 년에 한 번 나올 만큼 성적이 많이 오른 케이스이다. 중학생 때까지 학교생활을 성실히 했지만 스트레스를 받을 만큼의 공부를 강요받은 기억은 없다. 우리 부모님은 밤이 늦으면 자야한다며 불을 끄고 가셨고, 학원도 내가 다니고 싶은 곳을 혼자 찾아가 상담 받고 엄마에게 학원비만 내달라고 부탁했었다. 중학생 때는 공부를 하긴 하지만 열심히 해야 하는 동기가 없었다. 그래서 매일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농구공을 갖고 놀고, 한강을 걷고, 노래방을 다녔다. 고2 때 교육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 좋은 교육자가 되려면 좋은 교육을 받아야할 것 같고, 가능하면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대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날 이후 하루도 놀지 않고 공부하려 했다. 놀고 싶을 때면 지난 놀았던 날을 떠올렸다. 그러면 놀만큼 놀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당분간은 공부만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입시를 마치고 대학을 가서 또 열심히 놀았다. 그리고 그 힘으로 교사 임용 공부를 하는 동안은 또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나의 개인적 경험을 돌아보아도 유년시절 충분히 마음껏 놀아보는 경험은 참 중요하다. 요즘 학생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초등학생 때부터 방학 때 친구를 한 번도 따로 만나지 않고 학원만 다녔다는 아이들이 꽤 많다. 삶에 즐거움을 느낀 순간이 많지 않으니 우울감이 찾아올 때 꺼내어 볼 추억이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끝으로, 나는 아이들의 우울감은 미디어의 노출로 인해 더욱 심해진다고 생각한다. 단적인 예로 우리 반 아이에게 자해를 어떻게 시도할 생각을 했냐고 묻자 유*브에서 보고 따라했다고 했다. 그 영상을 못 봤다면 어떻게 자해하는지 방법조차 몰랐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영상을 보니 따라해 보고 싶고, 그렇게 하면 이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이미 공중파 방송의 수위 또한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수준이라 생각하지만, 인터넷 방송의 수위는 아이들에게 매우 위험한 수준을 넘어섰다. 필터링 없이 모든 유해한 정보들이 아이들에게 노출된다. 다른 얘기지만, 학교에서 다른 아이를 왕따 시키고 괴롭히는 방법 또한 미디어 모방으로 인해 더욱 교묘하고 악해졌다. 미디어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사회적으로 너무 경각심이 없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망쳐두고서는 왜 그런 어른이 되었냐며 질책한다. 학교는 무얼 했냐고 한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미디어 교육 몇 시간이 과연 아이들을 유해 미디어로부터 온전히 보호할 수 있을까? 앞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은 더욱 미디어와 긴밀한 관계를 이루며 살아갈 것이다. 이미 미디어 컨텐츠를 창조하는 세대이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미디어를 받아들이고 창작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와 체계적인 교육이 절실하다고 느낀다. 지금도 늦다.


나는 학교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여전히 여고생들은 낙엽만 굴러가도 꺄르르 웃기 때문이다. 학교 안에 있으면 아이들의 그 웃음에 동화되어 나도 어느새 같이 웃고 있다. 그런 학교에서 매일 마음이 괴로워 죽고 싶은 아이들이 있다. 어쩌면 고등학생 때가 마지막으로 그 아이들의 마음을 만져 줄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담임선생님은 학생이 우울하면 상담하고, 상담치료를 연계하고, 일 년 내내 학생의 마음일지를 쓰며 돌봐준다. 성인이 되면 한 개인이 우울하다고 해서 누가 그토록 관심을 가져주나. 물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입시에 자유로워진 아이들이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3년도 아이들의 인생이기에 아이들 마음이 평안했으면 좋겠다. 훗날 행복했다고 기억되면 좋겠다.

keyword
이전 02화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