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선생님이 되고 싶은 이유
나는 타인을 대할 때 되도록 친절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노력을 한다는 건 타고난 성질은 친절한 성품과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언제부터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런 생각에 힘을 보탰던 문구는 기억난다.
‘친절하라. 왜냐하면 당신이 만난 그 사람은 지금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마 고등학생 때 읽었던 명언집에서 본 문구같다. (다른 말이지만, 나는 고등학생 때 공부하다 슬럼프가 올 때면 명언집을 소리내서 쭉 읽었다. 그러면 수많은 문구 중 하나쯤은 내 마음을 다잡아주곤 했기에 짧은 시간에 슬럼프 극복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되었다.) 살다보니 실제로 내가 힘들 때 누군가 무심코 베푼 친절이 큰 위로와 격려가 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나 또한 가능하면 지인이든 낯선 이든 친절하게 대하려고 애쓰게 된 것 같다. 나는 나의 이런 태도를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들이는 노력에 비해 돌아오는 보람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신규교사로 부임한 학교에서 난생 처음 담임을 맡아 매순간 마주치는 새로운 상황들에 당황하며 낯선 업무들과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였다. 담임이 처음인 만큼 학급 임원들에 대한 내 기대와 의지하는 마음은 상당히 컸었는데, 학기 초에 부반장인 학생이 느닷없이 자퇴를 하겠다고 찾아왔다. 평소 성실하고 반 아이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는 학생이었기에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저 학교에 있는 시간이 너무 괴로울 뿐 자퇴의 다른 이유가 없다는 말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여러 차례 교내 상담과 외부 상담, 학부모 상담을 거쳐도 학생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솔직히 그 당시엔 그 아이를 학교 밖으로 떠나보내는 것에 대한 걱정과 아쉬움보다 날 도와줄 거라 기대했던 아이가 오히려 힘들게 만드는 것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이 더 컸던 것 같다. 결국 학생이 자퇴한 날, 이렇게 퇴근하면 안 될 것 같은 찝찝함이 들었다. 야근하고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학생의 집 주소로 찾아가 잠시 얼굴을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놀란 얼굴로 나온 학생에게 먹고 싶은 걸 물어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그 때 무슨 대화를 했었는지 잘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저 교사로서 내가 최소한의 노력을 했다는 자기 위안을 안고 돌아가 또 학교의 일상들을 분주히 살아낸 기억만 남는다.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그 학생에게 연락이 왔다.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대뜸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학생은 어려서부터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지 않는 부모 때문에 많이 고통스러웠고 어른이란 존재에 대해 절망스러웠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삶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해준 어른이 나라고 했다. 자신도 선생님처럼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도 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쩌면 의무감이었을 나의 작은 친절에 아이는 너무 큰 고마움을 전했다. 그 날 나는 다시 한 번 친절한 사람이 되고자 ‘애써’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을 좋아한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주변 사람들은 무서운 말을 좋아한다고 한다. 물론 악도 뿌린 대로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선은 반드시 뿌린 것보다 더 크게 돌아온다고 믿는다. 적어도 내 삶에서는 그래왔다.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친절함이 몸에 베는 날이 오겠지. 정말이지,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