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정답 좀 알려줬으면
이십대에 교사로 학생들을 만날 때에는 내가 여고생을 졸업한 지 십 년이 채 안 돼서 그런지 학생들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학생들도 나를 어려워하기보다는 큰 언니 따르듯 따라줬다. 아이들과 떡볶이를 먹으며 수다 떠는 것이 나 역시 즐거웠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나도 좋아했다. 애쓰지 않아도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소통되는 기분. 그것이 꽤나 오래 갈 줄 알았다.
첫 아이를 낳고 2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친 뒤 학교로 복직을 했을 때 나는 삼십대가 되어 있었다. 어느 새 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 이름은커녕 그룹명도 다 알지 못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예전에 내가 만났던 아이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당황스러운 순간들을 하나씩 마주했다. 내가 너무 변한건지 요즘 아이들이 너무 변한건지 헷갈렸다. 종종 그때의 일이 떠오르면 내가 어떻게 했어야 더 지혜로웠던 걸까 고민하게 된다.
복직 후 처음으로 당황스러웠던 순간은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3월이었다. 수업을 들어가니 한 학생이 캡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앉아있었다. 쉬는 시간에 쓰고 있다가 수업이 시작한 걸 깜빡했나 싶어 당연하게 "누구야, 모자 벗어~"라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자 학생이 "왜요?"라고 대답했다. 순간 교실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 학생의 눈빛에서 '내가 수업 시간에 모자 쓰는 게 왜 문제가 되냐. 어이없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다른 학생들이 우리 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갑자기 너무 당황스러웠다. 아니,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모자 쓰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고? 괘씸하게도 느껴지고 그냥 기 싸움을 거나 싶어 벗으라면 벗으라고 세게 나가고 싶은 충동도 잠시 들었다. 그러나 '교사는 학생과 싸우지 않는다, 그저 설명하고 가르친다'는 내 원칙을 떠올리며 마음을 차분히 가졌다. 매번 새 학기 초반에는 한 반에 한두 명 정도 교사를 찔러 보는 학생들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학생과 나의 일대일 관계이지만, 사실상 서른 명이 넘는 학생들이 이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한 반과 나의 다대일 관계이다. 보통 3월 한 달 동안은 새로운 학생들과 묘한 긴장감이 있다. 이 때 지혜롭게 처신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하게 보여주지 못하면 일 년 내내 학생들에게 끌려간다(다른 말로 학생들이 따르지 않는다). 나도 긴장되는 마음을 최대한 티내지 않고 가능한 침착하게 말했다. "누구야. 일단 우리 학교에는 교복 규정이 있어서 캡 모자를 허용하고 있지 않아. 그리고 네가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있으면 네 눈이 보이지 않아서 졸고 있는지 선생님을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선생님은 너랑 눈 마주치면서 수업하고 싶어. 이제 모자 벗어줄 수 있겠어?" 학생은 여전히 마뜩잖은 표정이었지만 모자를 벗었다. 수업을 무사히 마치고 나오면서 '와, 올해는 또 아이들이 다르구나' 느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학생은 그 반에서 제일 적극적으로 나를 따르는 학생이 되어 수업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해줬다. 나도 시간이 지나자 그 학생이 일부러 반항을 했다기보다는 정말 이해가 안 되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서도 캡 모자를 쓰고 수업을 듣는데 고등학교는 왜 안 되는 걸까? 내가 그 때 더 좋은 설명을 할 수 는 없었던 걸까?'라는 고민도 들었다. 그리고 학생이 반문할 때 꼭 그 의도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정말 몰라서 물어볼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대응해야겠단 다짐도 하게 되었다.
그 다음은 당황스러움을 넘어 황당한 일이 있었다. 우리 반 학생들 명단을 본 그 전해 담임 선생님들이 "어휴, 선생님 올해 좀 힘드시겠어요." 했을 때 그 정도를 짐작하지 못했다. 다양하게 힘든 아이들이 있었지만, 상대하기 가장 버거운 아이는 내 머리 위에서 놀려고 하는 학생이었다. 처음엔 그저 학교 나오기 싫어하고 종종 학교폭력 문제에 휘말리는 학생으로 생각하고 충분한 애정을 주면 잘 따라와줄 거라 믿었다. 지금까지 만나온 힘든 아이들은 자신에게 폭풍 애정을 보이면 오히려 더 의리 있게 나를 따라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학생, 정말 만만치 않았다. 새 학기가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나자 내가 제법 깐깐하게 담임반을 관리한다는 것을 눈치챘나보다. 전에는 몰래 몰래 학교를 빠져나가 담배를 피고 왔는데 내가 틈을 안 주니 한 달간 강제 금연에 힘들었던 것 같다. 결국 학교 밖으로 나가지를 못하니 교내에서 담배를 피다가 딱 걸렸다. 나름 이 학생 마음 좀 열어보려고 학교 밖 카페에 데려가 음료를 사주며 이참에 담배를 끊자며 달래는 나에게 협상을 하잖다. 내가 합법적으로 매일 외출증을 끊어주면, 자신도 외출해서 담배를 피고 들어와 교내에서는 절대 피지 않겠다고 한다. 선생님은 말이 좀 통할 거 같아서 자기가 솔직하게 말한다고 한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와, 신박하다고 느꼈다. 넘어갈 뻔했다. 지금 이 훈훈한 분위기를 순식간에 망칠 수 없어 생각해보고 내일 대답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하루 내내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봐도 이건 아니었다. 다음날 학생에게 말했다. "누구야. 선생님은 교사이기 때문에 네가 담배를 피우도록 도와줄 수 없어. 선생님이 이런 결정을 내려서 네가 선생님을 싫어하게 된다면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선생님은 일 년 동안 끝까지 너를 사랑하려고 노력할거야." 학생의 얼굴에 실망감이 확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여전히 담배도 피고 문제들을 일으키며 일 년을 보냈다. 일 년 내내 어르고 달래고 혼내도 보았지만 그 때 뿐 큰 변화는 없어 보였다. 그래도 내가 일 년 동안 끝까지 사랑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은 아는지 올해 스승의 날에 감사 인사를 보내왔다. 이래서 학생은 미워하기가 어렵다.
끝으로 기억에 남는 학생은 처음으로 나를 울린 아이다. 이 학생은 담임으로 일 년 동안 지켜볼 때 본성은 나쁘지 않은데 표현이 거칠어서 오해를 많이 받는 것 같았다. 이 아이는 졸업하자마자 사회생활을 할 계획을 갖고 있었기에 이대로 졸업을 하면 사회에서 만나는 어른들과 많이 부딪힐까 걱정이 되었다. 불러서 조언을 할까 말까 일 년을 고민하다가 종업식이 열흘 남았다. 교사인 친구에게 의견을 구하니 자기는 고등학생 때 담임선생님이 너의 자기중심적인 성향만 고치면 훨씬 잘 될 거라 말해주셨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이 학생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다음 학년으로 올려 보내는 것은 갈등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내 책임을 다하지 않는 거 같았다. 부딪혀보지 않고 미리 지레짐작해서 학생을 포기하지는 말잔 생각이 들었다. 열흘만 지나면 안 볼 사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노력은 해봐야지 싶었다. 학생을 상담실로 불러 나름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했다. "누구야. 네가 말을 할 때 무례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어. 선생님이랑은 올해로 끝나지만 이다음에 만나는 어른들에게는 조금만 더 조심하면 훨씬 네가 더 잘 될 거 같아." 학생은 내 말을 듣고 자존심이 상했는지 "지금 저 싸가지 없다는 거죠? 저한테 싸가지 없다고 말한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는데요? 선생님이 그냥 제가 싫어서 말하는 건 아니고요?"라고 대답했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냥 "네가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더 이상 선생님이 할 말이 없네. 알겠어. 일어나자."고 말했다. 그냥 그렇게 씁쓸하게 마무리 된 줄 알았다. 다음날 학생은 나에게 "선생님 저 좀 봐요."하고 나를 불러냈다. 그리고 내게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고 사과를 요구하며 선을 넘는 말들을 뱉었다. 복도에서 학생과 대거리를 하고 교무실로 돌아와 내 자리에 앉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른 선생님들이 다 보고 있는데도 서러움에 복받쳐 엉엉 울었다. 나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행동이 내게 상처로 돌아왔단 생각에 억울했다. 그 이후 학생은 남은 열흘간 조종례 시간에 책상을 돌려 앉는 등 대놓고 나를 무시했다. 처음 며칠은 나도 분해서 학년 부장 선생님께 학부모 상담을 해야 겠다 그리고 이대로 이 학생 추천서는 못 쓰겠다고 했다. 나보다 20년 남짓 경력이 더 많으신 학년 부장 선생님께서 나를 다독이며 말리셨다. 나중에 후회로 남을 수 있으니 학생과 다투지 말라고. 그렇게 종업식 전날이 되었다. 나는 매년 종업식이면 담임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카드를 쓴다. 스승의 날에 학생들에게 받은 편지에 대한 답장이기도 하고, 아이들의 다음 학년을 응원하는 격려이기도 하다. 그 학생에게도 카드를 쓰자니 도저히 마음이 안 내켰다. 마지막까지 미루다가 기도했다.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썼다. '선생님은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너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미안하다. 이 일은 마음에서 털어버리고 내년에는 더욱 즐거운 학교 생활하기를 바랄게'. 카드를 받은 이후에도 그 학생은 쭉 나를 보면 외면하고 지나쳤다. 그 사건 이후 학생들에게 조언하는 것이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리고 한참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에게 내 직언이 너무 직접적이었을 수 있었겠다는 반성도 든다.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학생이 흥분했을 때 같이 흥분하지 않고 자리를 피하기로 다짐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시간이 흘렀을 때 그 학생이 나의 진심을 알아주면 좋겠다.
사실 학교에서 '당황'스러울 수만 있다면 다행이다. 우리반 아이들 간에 폭력 사건이나 자해, 자살시도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잠도 잘 못 자고 꿈에도 나온다. 사회에는 90년생들이 온다지만 학교에는 이미 00년생들이 와있다. 앞으로도 학생들의 분위기와 문화가 많이 달라질 것이다. 또 나와의 세대차이도 더 커져갈 것이다. 그럴수록 내가 더욱 단단한 교육 철학과 원칙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 또한 계속 공부하며 변화해가는 감수성을 인지하지 못하면 어느새 학생들이 따르기 어려운 꼰대 교사가 될 것 같다. 결론은, 내공을 기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