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방과 후 시 수업을 진행하며
아이를 재워 놓고 이명수의 <내 마음이 지옥일 때>를 폈다. 지난 주 도서관에 갔다가 제목이 눈에 들어와 이 책을 집었는데, 지은이 옆에 '영감자 정혜신'이라고 쓰여 있어 빌려 왔다. 요즘 내 마음이 지옥 같기도 했고,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 님의 몇 편의 글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책을 피고 프롤로그 서너 장을 읽었는데 이건 마치 기대하지 않은 장소에서 보물을 찾은 기분이다. 작가는 시(詩)를 통해 치유적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프랑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시를 먼저 가르치는 것과 하버드대학에 시 낭독 자료를 듣는 방이 있다는 것이 부럽다고 말한다. 나와 같은 마음인 사람이 여기 또 있구나. 갑자기 너무 반갑고 설레고 행복하다.
나는 학교에서 수업 도입 5분간 문학을 소개하는 시간이 너무 달콤하여 방과 후 수업으로 시 읽기 수업을 열었다. 수업명은 ‘열일곱(또는 열여덟), 시에 물들다’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에 드는 이름이다. 수업 소개에 진심으로 쓰고 싶었던 말은 "시는 무용(無用)하므로 아름답다. 우리 잠시 인생에서 쓸모없지만 아름다운 시간을 함께 보내자."였다. 그러나 신규교사로서 학교 눈치도 보이고 아이들도 겁을 먹을 것 같아 시 감상을 통해 수능 국어 풀이에 도움을 얻자는 식으로 학생들을 꼬드겼다.
본 수업 연구도 버거운 와중에 방과 후 수업까지 공들일 자신이 없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시 수업을 꾸려나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몇몇 시인(백석, 기형도 등)을 정해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의 발표로 시인의 인생을 알아보았다. 연주곡을 듣거나 고요한 가운데 시집을 통째로 감상하는 경험을 하였다. 그 중 제일 좋았던 시 구절과 감상을 공유하고 서로의 감상에 대한 생각을 또 나누었다. 어느 때엔 시 창작도 해보았다. 날씨가 좋을 때는 주말에 만나 문학관이나 남산 등에 가서 둥그렇게 모여 앉아 시 낭독의 시간을 가졌다. 나도 교사로서 수업을 이끌기보다는 학생들과 함께 수업에 참여했다. 지금 생각하니 수업을 빙자해 내 사심을 채운 것 같다. 왜냐하면 아이들보다 내가 더 행복했기 때문이다. 몇몇 아이들은 수능 문제 풀이와 한참 거리가 있는 수업 방식에 당황한 듯 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나만큼 이 수업에서 누리는 듯 했다. 아이들의 시 감상과 그 친구의 감상에 대한 자신의 느낌들을 듣고 있으면, 내 앞에 있는 이 아이들이 다 시인이 아닌가 싶었다.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더 맑고 풍성하게 시를 느꼈다. 어떤 표현들은 내 노트에 적어 가고 싶을 정도였다. 내가 사랑하는 시를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누린다는 사실이 나를 많이 충만하게 했다. 시 수업의 마지막 날에는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고백이 툭 튀어나왔다. ‘나는 이 수업 시간 때문에 학교 다니는 것이 신이 났다고. 너희와 함께하는 이 시간의 감동이 나의 생활에서 가장 큰 기쁨이었다고. 나에게 이런 선물을 줘서 고맙다고.’
내가 부족한 교사라는 생각이 자꾸 나를 괴롭히는 요즘이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것들이 아직 많다. 교사로서 더 노력하고 발전하고 싶은 욕심이 남아있다. 수업 도입 시간이나 시 수업을 더 다듬어 풍성히 만들고 싶다. 시 뿐만 아니라 문학과 비문학 읽기의 즐거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읽기뿐만 아니라 말하고 듣기, 쓰기의 힘도 길러줘서 아이들이 언어의 힘을 누리고 살길 바란다.
나에게 문학은 기도가 나오지 않을 때 나를 위로하는 내 영혼의 쉼터이다. 그래서 문학이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아닐까 싶다. 내가 교사로 살아가며 아이들에게 그 선물을 나눌 수 있다면 그걸로 조금이나마 내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스스로 다독여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