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주형 Jul 12. 2023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부터

잃어버린 10년은 다가올 10년으로 찾아오면 된다.

  지금껏 이어온 국밥 장사를 그만두고 다른 것을 해야 한다면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라며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다른 요식업에 취업을 할까? 아니면 검은 세상에 발을 들여볼까? 요식업에 관해 시야의 폭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질려버린다는 느낌을 종종 받고는 했다. 리뷰에 사장님 댓글을 달 때도 내 나름대로 진심과 마음을 다해 남기는 것인데 다른 누군가는 역겹게 느끼거나 가식적으로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전기, 가스, 수도 등의 요금만 하더라도 끊임없이 오르고 식자재는 말할 필요도 없다. 요즘 장마로 폭우를 맞고 배달을 다녀온 내게 60대 단골이 물었다. "돈 벌기가 참 어렵다." 나는 뭐라고 답했을까? "어려운 만큼 돈이 벌리면 다행입니다." 대답을 하면서도 도대체 나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빠졌다. 뭐 하고 있는 짓일까?


  내 소신은 지금껏 변함이 없다. 돈을 좇지 않고도 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7살 어린 날 아버지의 술주정을 못 견디고 떠난 어머니를 10년 후에 만났고 테이블 4개짜리 자그마한 국밥 가게에서 그 잃어버린 10년을 찾는 그 과정에 의미를 두고 있다. 자식 된 도리로 부모가 죽으면 눈물이 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너무 고생이 많으시다. 내가 산증인이다. 나는 포기했다. 아니, 선택했다. 어머니와 둘이서 장사를 이어갈 수 있는 것만을 말이다. 나는 돈을 못 벌어도 어머니 월급만 나오면 그것으로 감사한 일이고 남들은 연애와 결혼을 하더라도 잃어버린 10년을 찾는다고 말이다.


  얼마 전 유서를 쓰려고 만년필을 들고 글을 쓰기 시작하려다. 멈췄다. 마음이 부르는 말을 글로 받아 적으려고 했는데 다른 말이 없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더 이상 다른 내용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머니께 잔소리도 많이 하고 신경질도 자주 내는 편이지만 결국 이것이 내 본심인 것이다.  


  우리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 중에는 자영업자가 많다. 그들은 일반적인 직장인과 달리 언제나 고개를 숙이며 들어온다. 우리의 소신을 알고 국밥 한 그릇을 8,000원에 먹는다는 것이 미안해서일 것이다. 국밥 한 그릇 가격을 12,000원으로 인상하게 된다면 아마 나도 조금은 벌어갈 것이다. 그렇지만 500원 올리기가 무섭다. 그것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손님이 자영업자를 제외하고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군가가 물었다. 그 사람은 정년퇴직 이후에 음식 장사를 시작해 보려고 굳은 다짐을 한 상황이었다. "저도 직장 생활을 충분히 해봤습니다. 자영업은 직장 생활보다 최소 3배는 힘이 듭니다. 열심히 한다고 대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닙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죠. 컴퓨터 잘 다루십니까? 스마트폰도 잘 다루십니까? 위생에 관해 정확히 알고 계십니까? 음식 맛은 진짜 있으십니까? 수많은 사람이 비수를 꽂을 때 버텨낼 맷집이 있으십니까? 지금 장사에 투자하는 그 돈 버려도 되는 돈입니까? 굽신굽신 빌빌 길 수 있습니까? 등의 질문을 해본다. 나이가 있어도 지금껏 장사를 이어온 업주는 젊었을 때부터 해온 사람이다. 갑자기 사방팔방에서 뒤통수를 때리듯 정신 못 차릴 일들을 받아내기가 힘들고 새로운 일을 배워내기가 힘든 나이이기 때문이다. 자영업을 갓 시작한 사람들의 특징은 한결같다. 자만에 취해있는 것이다. 한 눈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러다 풀이 꺾일 때가 있다. 폐업을 했을 때나 3년 정도 세금의 매를 맞아봤을 때쯤이다.


  나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노력해 볼 계획이다. 언젠가 확장을 할 수 있다면 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다면 문을 닫는 날까지 여기에 머무를 것이다. 가게를 처음 얻었을 때가 생각난다. 벽지 두를 돈이 모자라서 김영사에서 펴낸 허영만의 식객 15화 돼지고기 열전이라는 만화책을 10권 사서 한 장 한 장 어머니와 붙였다. 김영사에서 두 번째 저서 원고가 최종 검토 끝에 반려되기도 했다. 떨어지면 한 장 찢어서 풀로 붙이고 또 붙이며 아직도 여전하다. 간판도 사다리를 빌려와 수리했고 콘크리트 보수공사, 수도공사도 내 손을 거쳤다. 돈이 없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내 시간을 더 쏟아내면 된다. 우리 국밥 가게는 어머니와 나의 낭만이 그대로 남아있는 공간인 것이다. 


  누군가 장사의 정답을 알고 있는 귀인이 나타나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고 결국 혼자 판단하고 경험하고 깨닫고 이겨내야 했다. 장사가 재밌는 까닭은 하나다. 늘 새로운 문제를 만나기 때문이다. 빨리 풀어버릴 때도 있고 너무 오래 걸릴 때도 있다. 그 문제를 못 풀면 문을 닫아야 한다. 안 풀고 다음 문제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문제들을 풀어가면서 저서 두 권을 집필했다. 작은 책에 많은 내용도 아니었지만 정말 힘들었다. 독자들이 고민 상담을 걸어올 때면 늘 해주는 말이 있다. "선생님,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방법은 한 마리의 토끼를 먼저 잡고 다음 토끼를 잡는 방법뿐입니다. 더 중요한 토끼 한 마리를 먼저 잡으세요." 그렇지만 두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진짜 그러다가 잡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해야겠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대신, 끈기와 체력이 좋아야 하겠지. 나도 어떻게 보면 장사와 글 두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지 모른다. 독자가 많든 적든 말이다. 그래서 지금도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다 어느 날 훅 하고 잡힐 수도 있으니까.





이전 04화 일방적인 공격을 당했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