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무일을 틈 타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고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무언가 갑갑한 마음 탓인지 밤바다로 향했다. 아메리카노 아이스 한 잔을 천천히 마셔가며 남들 눈에는 배달원이 배달 가는 모습처럼 보였겠지만 나름대로 영양가 있는 드라이브였다. 천천히 달리면서 귀를 때리는 습한 바람을 느꼈다. 내가 멈추어 선 곳은 울산 몽돌 바닷가였다. 어떠한 지점에 밝은 조명과 감성적인 음악에 몸이 이끌렸다. 그곳으로 자갈을 밟으며 조심스레 걸었다. 조명을 이용해 바다 사진 몇 장을 건저 보려고 했던 것이다. 사진을 한 장 찍었을 때쯤 조명과 음악의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먼저 말을 건넸다. "손님이 오셨네." 그는 종이컵에 칵테일 얼음 두 개와 아메리카노 한 잔을 따라주며 말했다. "저기 앞에 보이는 작은 캠핑 의자가 있는 자리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예요. 한 번 편안하게 앉아보세요. 물이 그리 쉽게 차오르지 않아요. 더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시고요." 그 말을 듣고는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앉아버렸다. 하얀 해무에 갑갑한 마음을 띄워 보낼 수 있었다.
10여 분간 앉아 있다가 작은 의자와 바다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고 그에게 너무 좋은 선물을 받은 것 같아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선물했다. 보통 이 정도의 감성을 지닐 정도면 폴라로이드 사진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이게 뭔가요?"라는 답변을 해왔다. 그래서 나는 "아, 이거는 폴라로이드 사진인데 조금 있으면 색이 진해져 사진이 드러납니다. 선생님이 좋아하신다는 공간을 제가 조심스레 담아봤습니다. 커피도 너무 잘 마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라며 대답했다. 물어보지 않았음에도 그는 자기소개를 간결하게 해 왔다. "제가 15년 정도 평일마다 거의 이 자리에 왔습니다.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십니까? 조명과 음향입니다. 언제든지 오세요. 저는 여기 있을 확률이 높으니까요." 그 말을 듣고는 "저도 감성은 바다를 향하는데 꾸준히 바다를 찾는다는 게 선생님처럼 쉽지가 않네요. 오늘 이 시간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또 한 번 들려보겠습니다."라며 발길을 돌려 그곳에서 벗어난 바닷가 벤치에 앉아 먼발치에서 그와 바다를 더 구경했다. 그는 그 모습을 봤는지 밝은 그 조명을 더 넓게 마치 풍경을 내가 더 잘 볼 수 있게 고쳐 세웠고 노래가 바뀌었다. '위즈 칼리파 - 씨 유 어게인'이라는 노래였다. 그 노래를 세 번 연속해서 틀어줬다.
감성이라는 것은 정말 신기하다. 자연과 내 마음이 교류하고 타인의 마음과 내 마음, 마음끼리 교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성이 메말랐다면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길을 걸어라. 아니면 자동차로만 오가던 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내가 가는 속도가 느려질수록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 이런 게 있었나?" 하듯 말이다. 그리고 어떠한 곳에 멈추어 섰을 때 더 선명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 때문에 멈추었을 때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삶과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감성을 잃으면 안 된다. 어쩌면 그것에서 더 많은 힘이 생길지 모르니까.
내가 조금만 더 자각하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다면 그냥 지나갈 하루가 특별한 하루로 변해 있을 수도 있다. 삶의 의미가 있다면 특별한 하루를 많이 모으는 것이 아닐까? 나는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출발하면서 골전도 이어폰으로 그 노래를 세 번 들으며 돌아왔다. 이 노래는 이제 내게 특별한 노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