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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형 Oct 15. 2023

모두가 무시해도 자신과 싸움으로

내 경험은 버릴 것이 단 하나도 없다.

  남은 로즈메리 한 줄기가 수직이 아닌 왼쪽 수평으로 굳세게 뻗어 자라는 꿈을 꿨다. 마치 벽을 뚫을 것만 같았는데 좋은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꿈을 꾼 것은 두 가지 이유일 것이다. 한 가지는 매일 관심과 걱정을 제대로 기울였다는 것과 다른 한 가지는 어머니를 위한 내 마음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 한 줄기는 지금도 잘 자라고 있다.


  길에서 어머니와 아들이 다투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아들은 30대 중반으로 보였고 어머니는 60대 중후반으로 보였는데 몸싸움이 이어지자 오토바이를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다. 순간적인 딜레마에 빠졌던 터라 한 10m쯤 지나서 세웠고 거기서 아들을 불렀다. "아드님, 아이고, 잠깐만 한 번 참아봅시다." 당연히 아들의 눈빛은 분노에 지배당해 있었고 큰 불똥이 내게 튀어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10m의 딜레마에 빠졌던 것이다. 내가 아들을 불렀을 때 '저 녀석은 뭐지?' 하는 기운을 느꼈고 빠른 걸음으로 내가 있는 위치까지 왔다.


  처음 9m를 오는 길에는 내게 보복을 하려는 가짐으로 왔겠지만 남자와 남자끼리는 서로 전투력에 관한 기운을 어느 정도 느낄 수가 있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 내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겠다는 판단이 들었는지 '당신이 뭔데요?' 하는 태도로 물어왔고 몸싸움 때문인지 옷이 늘어나 있었고 제법 술에 취해있었으며 눈물이 고여있었다. 그리고는 내가 뭘 아냐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4살부터 주절주절, 4살부터 주절주절' 어쨌든 어머니와 아들을 그 긴박한 순간에 떼어 놓는다는 작전이었고 사실 나는 오토바이에서 내리지도 않았다.


  왼손으로는 아들의 등과 가슴을 번갈아가며 쓸어내리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아드님이 무슨 말씀이고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오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저는 한 7살쯤부터 어머니가 저를 보살피지 않으셨죠. 원망이라는 게 계속 부풀어 올라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제가 모르면 누가 알겠습니까? 그런데요. 아이스크림을 파는 배스킨라빈스 31을 아시나요? 거기 메뉴 중에 '엄마는 외계인'이라는 아이스크림이 있습니다. 이름 너무 잘 지었지 않습니까? 아마 제가 알기로 최고 인기 메뉴일 거예요. 말 그대로 엄마는 외계인이기 때문에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외계인하고 무슨 대화를 하겠습니까?"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아들의 눈빛이 돌아왔다. "아, 맞네요." 그 눈빛을 보고는 한 마디를 더 했다. "세대차이라는 게 서로를 외계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어머니도 아드님도 사람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세대차이의 벽을 뚫을 수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이미 분노는 한 번 터트리신 것 같은데 많이 참는 것도 좋지 않기 때문에 너무 잘하셨고 얼른 돌아가셔서 어머니 한 번 안아드리세요."라고 말이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부모와 자식이 다투지 않는 집안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관심이 있기 때문에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고 세대차이로 대화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한쪽에서 답답하는 느끼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쌓여서 분노가 되고 다툼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세대차이의 벽은 뚫어낼 수는 없다. 대신, 한 가지 방법은 있다. 나이가 어린 쪽이 나이가 많은 쪽으로 벽을 넘어가는 것이다. 넘어갈 때는 이해라는 단어를 지우고 양보라는 단어 단 하나만 들고 가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어쩌면 말도 안 되겠지만 2, 30대로 이루어진 11명의 축구팀 선수 중에 한 명의 60대 선수가 끼어있다고 생각해 보자. 만약 그 시합이 월드컵 결승이었다면 패배했을 경우에 동료의 원망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화살은 60대에게 날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젊은 쪽이 나이 많은 쪽과 화합을 하는 경우라면 월드컵 경기가 아니라 이벤트 경기인 것이다. 같이 그라운드에서 뛰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행복한 경기가 되고 추억이 되는 것이다. 오래전에 은퇴한 아버지 차범근과 얼마 전에 은퇴한 차두리가 나와서 패스를 주고받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무조건 죽자고 이겨야만 하는 시합을 할 필요는 없다. 내가 지금 어머니와 이벤트 경기를 이어나가고 있듯이 말이다. 나아가 일 년이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지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말 다 필요 없다. 단순히 자신이 느끼기에 '더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오토바이를 세웠던 까닭은 다른 것이 없다. 내가 아는데 내가 몰라주면 누가 알아주겠냐는 생각에서다. 우리 가게에 단골인 고독한 60대 손님과의 대화를 위해서 우동 면을 풀렸던 것과 같은 이치다.


  점심 장사 때 볼일이 있어서 잠시 자리를 비운 적이 있다. 당연히 배달 주문은 배달 대행 기사님을 호출해야 했는데 볼일을 보고 돌아와서 배달 앱 리뷰를 확인해 봤더니 별 점 두 개와 대충 이해해 보니, 벨을 안 눌러서 음식이 다 식었다는 내용이었다. 수년간 장사를 해왔지만 음식이 식었다는 리뷰는 난생처음 받았다. 솔직히 자존심에 금이 조금 갔지만 손님이나 배달 대행 기사님 둘 중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내가 자리를 비운 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손님의 입장도 알고, 배달 대행 기사님의 입장도 알고, 업주의 입장까지 제대로 알고 있는 내가 외부의 탓으로 돌려버린다면 상인으로서의 자질적 그릇을 반납해야 될 것이다.


  대처는 빠를수록 좋기 때문에 '됐어. 됐어. 주형아 어서 네 기분부터."라는 주문을 마음속으로 한 번 외우고는 고객과 전화 연결을 시도해서 기분을 돌려놓았고 깔끔하게 환불해 드렸다. 그러면서 그 고객이 어떤 메뉴와 요청 사항으로 주문했는지 살폈다. 요청 사항에는 '파이팅입니다.'라는 문구가 있었고 배달 요청 사항에는 아파트 공동현관 비밀번호가 남겨져 있었다. 배달 장사와 관련된 독자가 이 글을 읽을지는 모르겠으나 공동현관 비밀번호가 쓰여 있다면 비대면 수령일 경우 무조건 문자를 한통 남겨야 한다. '벨 눌러주세요.', '벨 누르지 마세요.', '노크해 주세요.', '노크하지 마세요.', '벨 X 노크 X', 비밀번호만 남겨져 있다면 우선 대면 수령이라고 생각하고 벨이나 노크를 해서 문 밖에서 조금이라도 기다려봐야 한다. 공동현관을 직접 비밀번호로 열고 가야 할 때 문자를 해야 하는 결정적 이유가 고장이든 소리 때문이든 고객이 인지 못 할 확률이 상당히 높아서 음식 도착을 알리고 증거를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 내용들을 들려주는 이유가 결국 상처에서 비롯됐고 아팠지만 버릴 것 하나 없는 경험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배달원으로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경멸하고 무시했어도 나는 정직했고 오직 자신과의 싸움만을 했다. 이것이 진짜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프지 않다면 그것은 잊혀 버리는 한 순간에 불과한 것이다. 자신의 소신이 없다면 일단 소신부터 찾아라. 찾다 보면 반드시 발견하게 되어있고 찾게 되면 마음속에 묻어두지 말고 보이는 곳에 적어둬라.

  나는 모두가 보는 오토바이 배달통에 소명했다. 자신과 싸움에서 얻은 경험과 성장으로 어떠한 순간을 만나더라도 내 선에서 끝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고 내 어머니와의 이벤트 경기를 가능한 한 오래 이어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끝으로 '엄마는 외계인'에 관해 설명하자면 '배스킨라빈스 31'은 영화 제목으로 아이스크림 이름을 많이 지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초코볼이 장화 신은 고양이의 눈동자를 닮았다고 해서 '장화 신은 고양이'로 지었는데 한국에 발매될 때는 초코볼이 행성을 닮았다며 1988 '새엄마는 외계인'이라는 영화 제목으로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엄마는 외계인'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종종 어머니와 다투고 나서 이 아이스크림을 사다 드린다. "어머니, 이름 진짜 잘 지었지 않습니까?"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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