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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슈맘 Dec 24. 2020

내가 간암이라고? 울면서 출근했던 그날.

기억하기 싫었던 그때

7년 전, 어느 날

아마 결혼하기 몇 달 전이었던 것 같다.

집에서 기분 좋게 부모님과 저녁밥을 먹고 쉬고 있는데, 갑자기 숨이 안 쉬어졌다.


뭐랄까?

숨쉬기가 힘들면서, 가슴을 쥐어짜는듯한, 걷기도 힘들 정도의 통증이었다. 등까지 아파졌다.


"아빠 못 참겠어. 응급실 가자"


친청 아버지는 당황해하셨고, 집 근처 종합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나는 걸을 수가 없었고, 응급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평생 느낄 수 없는 통증이었다.

간호사였던 나는 혼자 자가 진단을 내렸다


" 가슴을 코끼리가 밟고 지나가듯이, 고통스러웠어"

" 등까지 방사통이 있는 걸 보니, 이건 협심증이구나"

" 세상에 스텐트 시술을 해야 하는 거야?"


그러나, 다행히도 협심증은 아니었다.

단순한 위경련이었다. ! (너무 앞서갔었다)

스텐트 시술이란?

막히거나 좁아진 혈관에 관을 넣어서 넓혀 주는 시술.


그리고 몇 달 후 결혼을 했고, 생각보다 아주 빠르게 첫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임신 중기 무렵부터 위경련이 자주 찾아왔다. 임신이 아니었다면, 진통제라도 맞을 수 있었지... 뱃속에 아이가 있으니, 주사도 맞을 수 없어서 가슴에 핫팩을 대고 그냥 참았다.(위경련이 오려고 하는 조짐이 보이면, 가슴에 핫팩을 대고 있으면 증상이 완화되더라)



그렇게, 첫째를 낳고 가끔의 약한 위경련이

찾아왔지만, 그냥 넘겼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렇겠지 뭐"


두 살 터울 둘째까지 낳고, 어느 날 왼쪽 아랫배와 옆구리 그리고 식후 소화불량이 너무 심했었다.

건강 염려증이 있던 나는 또 이상한 상상을 하며,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식후 등 통증, 소화불량, 옆구리 통증, 가스 참" 등등 이런 증상을 검색하니, 위암이란다. 또는 췌장암.


사실 우리 친정어머니가, 나 신규 대학병원 다니던 시절에 위암 O 기를 진단받아 우리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암의 가족력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더 예민했던 것 같다.

100일 된 둘째를  친청 엄마께 맡기고 동네 종합병원에 가서 복부 CT를 찍었다.



" 배 안 아팠어요? 소화는 잘 되던가요?"

" 담낭에 돌이 가득 찼어요. 담낭의 3분의 2가 담석으로 가득 찼어요. 수술합시다"


세상에나. 담낭에 돌이 한 개도 아니고 두 개도 아니고 3분의 2란다. 이것 때문에 복부 통증이 있었고 소화불량도 있었을 거란다.


" 아 그리고, 간에 뭔가가 보이네요. 이건 단순 양성 혹 같으니 그냥 평생 달고 살아요. 신경 안 써도 되는 거예요"


간에 혹이 있단다. 그런데 양성 혹이니 그냥 신경 쓰지 말고 살라고 하신다. 크기는 약 2CM 정도.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시니, 그냥 잊고 지냈고, 결국 나는 전신마취를 하고 담낭 제거술을 받았다.담석의 개수가 너무 많아, 쇄석술로는 제거할 수 없으니 담낭을 복강경으로 제거했다.


"그렇게 나는 쓸개없는 여자가 되었다"

담낭 제거술을 받은 후 소화도 잘되고, 컨디션이 너무 좋았던 어느 날, 갑자기 왼쪽 옆구리가 아팠다. 통증도 있었다.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건강에 예민한 상태였고 또다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 이번에는 규모가 큰 대학병원으로 가보자!"


우리 지역에서 규모가 제일 큰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보았다. 증상이 애매하니, 일단 복부 CT를 찍어 보자고 하셨다. 복부 시티와, 피검사를 하고 일주일이 지나고 검사를 들었던 날.


" 간에 종양이 보여요. 크기는 2CM 정도, 그런데 모양이 불분명합니다. 조직 검사를 해봅시다"


덜컥 겁이 났다.

 "분명히 동네 병원에서는 별것 아니라고, 평생 가지고 살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는데??일단 조직 검사 예약을 해두고 나오는 길. 불길하고 무서워서 진료 기록이 있는 진료 차트를 의무기록실에서 떼어 봤다.



" R/O : LIVER CANCER "


가진단, 간암.......

가진단은 아직 확실히 진단을 내린 것은 아니나, 의사가 검사 전에 추측하고 있는 질환이다. 내가 간암이란다. 물론 가진단 이기는 하지만, 일단 간암이라는 의학 용어를 본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었다.


하필 나는 그날 이브닝 출근 (오후 출근 1시~10시) 근무가 예정되어 있었고, 출근을 해야 했다.

내가 그 병원 의무기록실에서 차트를 떼어보고, 나와서, 내 직장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괜찮아. 조직 검사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암이야?"

" 유명한 명의들은 CT에서 모양만 봐도 암인 줄 안다잖아. 그치. 암처럼 보였으니, 암이라고 했겠지?"


40분 운전하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면서, 나는 울기 시작했다. 아 뭐야 진짜, 우리 둘째가 이제 100일이고, 우리 큰딸은 네 살밖에 안되었는데.


"다른 장기에 전이되지는 않았겠지?"

"어쩐지 요즘 많이 피곤하더라. 그럼 병가를 내야 하나? 아이들은 친정엄마가봐주시면 되니까"


그때 한참 이뻐 보이고 싶어서, 워터프루프 아이라이너를 하고 다녔는데, 병원 도착 후 얼굴을 보니, 세상에 사람이 아니었다.



" 수 선생님 제가 암이래요. 우리 애들은 어쩌죠?"


나는 때로는 친구 같고, 때로는 인생 선배 같은 존경하는 우리 수 선생님을 보고 엄청 울었다. 그날 일을 무슨 정신으로 했는지 모른다. "아닐꺼야" 말해주셨지만 아무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큰 병원 한 군데는 더 가보자. 해서 서울 아산병원  "간 명의"라는 교수님께 예약을 했고, 다행히 운이 아주 좋게도 3일 후 예약이 잡혔다.

아산병원은 생각보다 많이 멀었다. 왕복으로 네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 가는 길에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젊은 여성이기도 하고, 비형 간염 보균자가 아니지만, 일단 그쪽에서 암이라고 했으니 MRI를 찍어 봅시다"


그렇게 아산병원에서 MRI를 찍게 되었다.


"일주일 후에 결과 들으러 오세요"


아...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 후에 오라고?

나는 그 일주일 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몸무게는 무려 4킬로가 빠졌다. 병원 출근 내내 웃음을 잃었고, 온통 인터넷 검색만 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보면서 울기만 했다. 내가 이 어린아이들을 두고.... 수술을 받아야 하다니.


우리 병원 원장님들도 내 얘기를 알고, 걱정을 많이 해주셨다. 수 선생님도, 내 직장동료들도.

내가 웃음이 나지 않았지만 애써, 우리 환자들에게 친절하고, 살갑게 대하는 것을 보고 우리 후배가 나중에 얘기해 주었다


"선생님, 대단하세요. 그런 상황에서도 환자들에게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하신 거요"


내가 아픈 건 아픈 거고, 우리 환자들도, 치료받으러 왔는데 병원이 얼마나 낯설고 무서웠겠어.!

그러니까 간호사들이 친절하게 잘 해줘야지. 병원이란 곳은 원래 차갑고 무서운 곳이니까 말이다.


" 아니 무슨 의사가 암이라고 정확히 얘기한 것도 아닌데, 세상 다 산 것처럼 오버야?"

" 암이면 어때? 요즘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수술하면 되지"

"너무 미리 간거 아니야? 엄살은."


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닥쳐보지 않으면 모른다. 의사 차트에 간암.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는 순간. 아마 그때부터 아무것도 안 보일걸??? 사람은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나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


시티를 찍은 일주일 후, 아산병원 결과 들으러 가는 당일.   나는 거의 좀비의 상태였다. 못 먹어서 살은 쪽 빠졌지. 웃음은 잃었지... 왕복 네 시간 되는 거리를, 나 혼자 운전해서 병원까지 갔다.


" 암으로 보이지는 않아요. FNH라고 해서 젊은 여성들이 잘 생기는 양성종양으로 보이고요"

" 앞으로 6개월마다 크기 변화를 봐야 하니 CT를 찍읍시다. 걱정하지 말아요"


나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그냥 막 울었다. 그동안 했던 마음고생도 억울했고, 암이 아니라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다.


의사 선생님이 휴지를 뜯어 주셨다.

"울지 마요. 누가 보면 내가 울린 줄 알겠네"


내가 이렇게 따뜻한 교수님을 만난 것도 복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기쁘게 병원을 나왔다.


"엄마 나 암 아니래, 그냥 양성종양이래"

" 수 선생님, 스케줄 조정 필요 없겠어요. 저 괜찮대요. 내일도 출근할 수 있어요""여보, 나 괜찮다네.? 그동안 마음고생 미안했어"


지금도 글을 쓰다 보니, 그때 생각이 나서 막 눈물이 나려고 한다. 내가 일하는 병원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서 고군분투하는 환자들이 입원은 하지 않는다. 그냥 특정분야의 전문 병원이다. 하지만, 환자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그때의 사건 이후로 더 친절한 간호사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4세. 100일 된 아이를 보면서, 매일 울었던 그날들. 내가 만약 암이 아니라면, 나는 평생 우리 아이들을 위해 좋은 엄마로, 화내지 않는 엄마, 착한 아내, 효녀 딸로 살아가야지. 이렇게 다짐했었건만.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하지. 그때 일을 벌써 잊고, 그냥 예전처럼 살아가고 있다. 예전의 일들을 정리하면서, 그때의 마음 잃지 않고, 더 열심히 더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PS. 아프면 무조건 병원 가보세요. 내 건강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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