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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슈맘 Jan 02. 2021

아이 둘 맡기고 6년째 임금동결 중! 엄마 미안해요.

친정엄마는 사랑입니다

2021년 새해가 밝았다. 

12.31일 마지막 밤을 교촌치킨, 맥주와 함께 보내고 오늘도 늦잠을 잤다. 일어나 보니 아침 10시.

새해라서 눈이 일찍 떠질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

후다닥 부은 얼굴로, 아이들에게 한복을 입혀서 양가 부모님께 새해 인사를 드렸다



"어머니, 아버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예전 같았으면 "일찍도 전화한다" 하셨겠지만, 이제 며느리가 잠이 많다는 걸 아셔서 그런지, 뭐라고 하지 않으셔서 다행이다.


친정 부모님께도 영상 통화를 드렸다


"엄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우리 애들 잘 부탁해요"


나도 참 주책이지. 새해 인사를 하고 갑자기 울컥해서 눈물이 날뻔했다  


우리 친정어머니는 큰아이를 돌전부터 6년째, 둘째 아이를 태어났을 때부터  돌봐 주고 계신다. 

사교적이고, 사람 만나기를 즐기고, 외모 가꾸기와 이쁜 옷 입기를 좋아하는 우리 엄마, 아이 둘을 봐주시면서, 친구들도 덜 만나고, 매일 힘들어 하시는게 눈에 보인다. 


12.31일 마지막 날

이브닝 근무(10시 퇴근) 후 친정에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엄마 내일이면 한 살 더 먹는다 그치?"

"이제 엄마가 60세 되는 건가?"


"응 그렇지, 이제 나도 60이네. 세월 빠르다"


언제까지나, 젊고 이쁠 것 같던 우리 엄마가 벌써 60세라니.. 앞자리가 6으로 바뀌니 마음이 이상했다. 나이는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많아지게 되지만,

왠지 내가 아이 둘을 맡겨서, 엄마가 더 빨리 늙는 것 같았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큰 아이가 6개월쯤 되었을 때, 친정 근처로 이사를 왔다.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복직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때부터, 나는 친정에서, 쌀이며, 반찬이며 가져다 먹으며 빈대처럼 빌붙는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교대 근무하는 큰딸이 안쓰러워서, 항상 국이며 반찬이며 해다 주셨고, 집 청소도 가끔 해주셨다. 


" 너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구나"

" 친정엄마 도움받는 거 진짜 감사한 거야"

" 잘 해드려야 돼"


주변 지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도 안다!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고, 천운이었고,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잘 해드리고 있지만, 뭔가 부족한 건 사실이다. 


큰아이가 돌쯤 될 무렵, 나는 복직을 했고,

교대 근무하는 우리 부부 틈 사이에서, 친정어머니는

혼란스러워하셨다. 집에 오면 사위 눈치가 보인다고, 아이들 데리고 친정에 가셨는데, 나의 출근시간이 뒤죽박죽이다 보니, 엄마도 그 패턴을 따라가기 쉽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렇게 체계도 잡히기 않아 어수선하게 큰 아이를 봐주던 어느 날.. 둘째가 생겨버렸다.

복직한지 몇 개월 안되어, 계획에도 없던 둘째가 생겨버려서, 민망한 상황이었다.


" 엄마, 미안해"

" 둘째가 생겼어"

" 내가 용돈 많이 챙겨드릴게요. 미안해"


나는 그렇게 양심도 없이, 둘째도 은근슬쩍 맡아 달라고 했고, 용돈을 올려 드린다고 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첫째 아이 하나 맡길 때도 백만 원

둘째 아이 둘 맡길 때도 백만 원

"6년째 동결"


우리 큰 아이를 봐주시기 전에 다른 일을 하셨었다. 지금 내가 드리는 돈의 두 배는 더 버셨지만, 손주를 위해서 그 일을 포기하셨었다. 

둘째가 생기고 나서, 너무 죄송스러웠고, 그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서, 용돈을 더 드리겠노라.. 말씀드렸지만, 


매년 우리 신랑과 나의 월급은 거의 변화가 없는데,

아이가 둘이 되니,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가더라. 그래서 더 챙겨드리지 못했다. 


물론 돈을 위해서 아이들을 봐주시는 건 결코 아니지만, 

그래도 죄송스러운 마음에, 조금이라도 더 챙겨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물론 보너스나 명절 상여금 나올 때는 당연히 챙겨드림)


이틀 전, 밤에 퇴근을 하고 아이들을 데리러 갔는데

엄마가 대뜸 말씀하신다


" 나 이제 힘들어서 애들 못 보겠다"

" 내년까지만 봐주고 장사나 하련다"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엄마에게 아이들을 맡길 수는 없으니.. 

알겠다고 대답했다. 마음이 콩닥콩닥 했다. 


내년까지만 봐주신다고?

그런 내 예상에 없던 시나리오인데?


언젠가, 우리 엄마 곁을 떠나 나 혼자 독립해야 할 날이 올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어제는 이브닝 출근을 하려고 아이들을 친정에 맡기러 갔었다. 요즘 부쩍 엄마 껌딱지가 된 네 살 둘째가 내 다리를 붙잡고 울기 시작한다.


"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

" 할머니랑 있기 싫어"


민망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래, 엄마인 나랑 같이 있고 싶은 상황은 이해가 간다. 그런데 왜 애꿎은 할머니는 싫다고 말하는 건지... 아이 봐준 공은 없다고, 신생아 때부터 키워준 할머니인데, 아무리 아이라고 해도 그렇게 말하면 서운할 법도 하다.


아차 싶었지만, 다행히도, 엄마는 둘째를 포대기에 업어 주시면서 (네살인데 포대기 좋아함) 

늦었으니, 얼른 출근하라고 억지 미소를 보이셨다. 얼마나 죄송스럽고, 민망하던지....


"나 사랑해 주는 건 고마운데, 할머니 앞에서 할머니 싫다고 하지 말아 줘 제발. 딸아.."


"엄마, 힘들지? 내가 삼교대 딱 1년만 더할게"

이 얘기를 한지가 6년째이다. 


사실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이니, 상황을 모면하려고 그렇게 말했던 것도 있다.


" 너희 어릴 때, 엄마가 일하고 싶어도, 아이 봐줄 사람이 없어서 일을 못 했어"

" 아빠가 생활비도 많이 안 주고, 엄마는 가난이 싫다"

" 젊을 때, 일할 수 있을 때, 바짝 벌어서 얼른 대출이나 갚아. 엄마가 알아서 할게" 


항상 이렇게 말씀하신다. 일할 수 있는 것도 축복이니, 엄마가 아이들 봐줄 수 있을 때 열심히 벌어서 대출 갚으라고... 세상 어디에도, 나를 이렇게 생각해 주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이제 7세가 된 우리 큰딸. 아직 한글을 잘 모른다. 사실 내가 끼고 가르친 적도 없을뿐더러, 조금의 핑계를 대자면, 한 달에 12번은 오후 근무에 5번은 야간 근무를 하니,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큰 딸 긍정이가, 한글을 기똥차게 읽고 쓰기 시작했다. 놀라웠다.


" 이 글자 어디서 배웠어?"

" 응 엄마 일 나갔을 때, 할머니가 알려주셨지"


나어릴 때도, 학구열이 넘치던 우리 어머니, 교재 하나 없이 스케치북에 글자를 써서, 한글을 가르치고 계신단다. 집안일에, 강아지 두 마리, 정년퇴직하신 우리 아빠 삼시 세끼 챙기면서, 손주 한글 공주까지..

내가 우리 엄마를 닮아서 슈퍼우먼인 것인가?


손주 둘을 보며, 점점 나이 들어가는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또 내 커리어를 포기하지 못해, 엄마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내가 답답하다.


초등학생이 되면, 일찍 하원하고, 손도 많이 간다고 하던데... 이제 슬슬 엄마를 놓아주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뭔가 막막하다.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보자.


작년과는 또 다른 나..

이제 큰 아이가 내년이면 초등학교를 가고

나도 서른 중반을 넘어간다. 


어릴 때도 그랬지만, 나는 아직도 "마마걸"이다

우리 어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나인데,

이제 독립을 할 때가 된 것 같아서, 겁이 난다. 


그런데 또 모르지, 이래 놓고

" 엄마, 우리 애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만 부탁해요"

이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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