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여행을 갈 때 구매하는 항공권에는 출발시각과 도착시각이 적혀져있다. 하지만 실제로 항공기를 탑승해보면 해당 시간보다 빠른 경우가 대부분인 경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항공편을 탑승하기 전에 마중나오시는 부모님께 "언제쯤 도착할거 같아요~" 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더욱 빨리 도착해 공항에서 보름달빵과 바나나우유를 구매해 K간식을 만끽하며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그렇다면 항공기가 예정시간보다 빨리 도착하거나 늦게 도착하는 경우는 왜 일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항공권을 구매할 때 나오는 시간은 실제 비행시간보다 더욱 넉넉히 잡아놓는다. 즉 승객이 탑승을 완료하여 Push back(토잉카 등으로 항공기를 뒤로 밀어 자력으로 Taxi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을 하고 활주로까지 Taxi를 하는 등의 모든 과정에 대한 시간을 산정해놓는 것이다. 이는 도착공항에서 역시 마찬가지인데, 도착지 공항의 항공기 트래픽으로 인한 Holding이나 착륙해서도 과도한 트래픽으로 인해 Taxi가 지연 될 수 있기 때문에 넉넉히 시간을 잡아 승객들에게 고지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항공권을 구입할 때 나오는 출발 시간은 그 시간쯤에 항공기 문을 닫고 Push Back을 한다는 의미로 보면 되겠다. 조종사들 역시 비슷한 개념을 사용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개념이 EOBT(Estimated Off Block Time)이다. 이 시간 개념은 Taxiway에서 항공기가 자력으로 이동 가능한 시점을 이야기하는데 조종사들은 한번에 정해진 Flight Time이 정해져 있고 이를 정확히 산정하기 위해 이 시점부터 정지하여 엔진을 정지하는 시간까지의 개념으로 사용한다.
그렇다면 실제 출발 시간은 어떤 개념일까. 더욱 복잡한 개념이 많지만 ETD, ETA, ATD, ATA 이렇게 4개만 알고계시면 된다. ETA는 최근 뉴진스의 노래로 익숙한 분들이 많으실텐데 ETD는 Estimated time of Departure 즉 출발예정시각이며 ATD는 Actual Time of Departure로 실제 항공기가 활주로에서 이륙을 한 시점을 이야기한다. 반대로 ETA는 Estimated Time off Arrival 즉 도착예정시각이며 ATA는 실제로 항공기가 활주로에 착륙을 한 시각을 이야기 한다. 결국 ATD에서 ATA까지의 시간이 실제로 항공기가 상공을 비행하던 시간이고 승객들이 알고 있는 Off Block Time은 실제 비행시간보다 길게 잡혀있기에 승객들 입장에선 "뭐야 왜 이렇게 출발안해"라는 반응과 "뭐야 벌써 도착했어?" 라는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Off block time을 이렇게 길게 잡아놓았을까? 여기엔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다. 대표적으로 날씨와 트래픽을 이야기 할 수 있는데 날씨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항공기는 비행을 하는 동안 항상 바람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수만피트 상공의 바람은 우리가 지상에서 겪는 바람보다 훨씬 강력하다. 우리도 흔히 알고 있는 편서풍이 영향을 주는 바람 중 하나이다. 편서풍은 지구의 자전으로 인해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바람이다. 이는 대류권 하층부에서 주로 보이는 중위권 30도에서 60도 사이에 나타나는 바람인데, 특히 한반도는 중위도 지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 편서풍의 영향을 항상 받을 수 밖에 없으며 편서풍을 배풍 (뒷바람)으로 가져가는 경우 항공기를 밀어주기 때문에 더욱 빨리 도착할 수 있으나 이를 정풍 (맞바람)으로 받는 경우 바람에 의해 Ground Speed(지상에서 측정한 실제 이동 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갈 때보다 더욱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된다.
또 다른 바람은 제트기류를 말할 수 있다. 제트기류 역시 서풍이기에 편서풍과 같은 것으로 생각 할 수 있으나 생성원리와 바람이 부는 고도 등이 다르다. 제트기류는 계절에 따라 고도와 속도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항공기의 순항고도인 30000ft 이상에서 만날 수 있는 50kts이상의 바람을 이야기 한다. 제트기류는 항공기의 운항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풍속 자체가 상당히 빠르기 때문에 운항 시간의 변화가 더욱 크게 느껴질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서쪽으로 가는 경우 예상 도착 시간보다 대부분 일찍 도착하게 되며 동쪽으로 갈 경우 서쪽으로 갈 때보다 확연히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체감하게 한다. 필자의 경험상 미국의 LA에 갈 때보다 LA에서 돌아올 때의 시간이 더 소요되었으며 필자의 친구 중 유럽에서 거주하는 친구 역시 한국을 올 때가 더욱 빠르고 유럽으로 돌아갈 때가 더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영국항공에서 일반적으로 6-7시간이 소요되는 뉴욕-런던 노선을 5시간여만에 주파한적이 있다하니 제트기류는 항공기의 운항에 큰 영향을 끼치는 녀석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트래픽은 무엇을 뜻할까? 트래픽은 말 그대로 항공기의 통행량을 이야기 한다. 즉 항공기의 통행량이 많은 공항 및 해당 상공에서는 지연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자 여러분도 제주도는 많이 방문해보셨을 것이다. 김포-제주 항로는 통행량이 어마무시하게 많은 구간이지만 제주국제공항에서 가용가능한 활주로는 단 하나뿐이다. 즉 하나의 활주로로 항공기들이 이륙과 착륙을 병행해야 하기에 지상활주 허가를 받았다 하더라도 지상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상당히 긴 공항에 속하며, 도착시에도 까딱 잘못하면 Holding(해당 공항의 트래픽 및 다른 이유들로 인하여 공중의 한 지점을 선회하도록 만든 절차)으로 까먹는 시간이 상당한 공항 중 하나이다. 이보다 더욱 심한 공항 중 하나가 일본의 후쿠오카 공항인데, 후쿠오카 공항은 일본내에서도 많은 국내선 항공기들이 취항하는 공항이며, 한국 및 인접 국가들에서 오는 국제선 편수도 많은 공항이기에 항상 트래픽이 많은 공항이다. 후쿠오카 공항 역시 국내선과 국제선 터미널 사이에 있는 단 하나의 활주로를 이용해 항공기가 이착륙을 하는 공항이기에 밀려드는 트래픽들로 인해 조종사들 입장에선 정신을 살짝 놓았다간 관제사가 이리 보내고 저리 보내고 홀딩까지 시킬 수 있는 무시무시한 공항 중 하나이다. 이러한 공항들은 이륙 할 때 지상활주의 순번이 늦어져 딜레이가 될 수도 있으며, 착륙을 한 후에도 지상 활주 하는 항공기들의 순서에 따라 한 지점에서 오래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필자 역시 김포국제공항에 접근하던 도중 관제사의 지시를 받고 하강을 하던 도중에 기장님이 "그 고도 맞아? 다시 한번 확인해봐."라고 말씀하셔서 "Confirm descend to 0000?"이라고 관제사에게 물어봤다가 관제사가 갑자기 "Turn left heading 180 descend and maintain 0000."이라고 아예 항로에서 빼버려 도착 시간이 10분정도 딜레이 되었던 적이 있다. 서울접근관제소는 김포국제공항과 인천국제공항을 같이 관제하는 국내에서도 매우 바쁜 곳이기에 관제사님 입장에선 "아 바빠 죽겠는데 쟤 뭐라는거야."라고 생각 했을 순 있겠다. 다행히 필자가 처음에 readback 한 고도가 맞았기에 기장님은 "아 그렇다고 이걸 이렇게 빼냐~"라며 애교섞인 불만을 토해내셨지만 말이다.
오늘은 항공권 예매시 적힌 시간과 실제 비행 시간이 다른 점에 대해 알아보았다. 기다림이란 지루한 일 일지 모르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새로운 여정의 시작에 대한 설레임을 더욱 증폭시켜주는 시간인 것 같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새로운 여정, 미래에 대해 꿈을 꾸고 기다려왔던 만큼 더욱 찬란하고 멋진 풍경들이 발 아래 언젠간 꼭 펼쳐졌으면 좋겠다. 자 그럼 이번 한 주도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Have a safe f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