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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Feb 19. 2024

사랑한다면 주파수를 먼저 맞춰 주세요

공명

아무 말 없이 그저 한 공간에 함께 있었을 뿐인데,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된 듯한 느낌이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방송국에서 방송을 전파에 담아 송신하는 것처럼, 사람은 자신의 고유한 이야기를 신호에 담아 내보낸다. 대부분은 주파수를 맞추지 못해 내 신호를 읽어내지 못하고 심지어 신호가 있는 줄도 모르고 넘어가겠지만, 누군가 주파수를 잘 맟춘다면 내 고유한 이야기와 감정까지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다.


모든 개인은 자신의 내적 세계에 관한 정보를 널리 전파한다. 밀도를 가진 물체가 전자기적 방출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듯이, 한 개인의 정서적 유인자들은 변연계적 기질에서 방출되는 후광으로 그 자신을 드러낸다. ... 변연계가 자유롭게 감지하도록 허락한다면, 여러 가지 멜로디들이 몰개성적인 정지 상태를 관통하기 시작할 것이다. 반응, 희망, 기대, 꿈 등의 개인적 이야기들이 주제 속에 녹아들 것이고, ... 듣는 사람의 공명이 증가하면, 그는 상대방이 자신의 개인적 세계 안에서 보고 있는 것을 함께 보고, 그 속에서 사는 느낌이 어떤지를 감지하기 시작할 것이다.

토머스 루이스 / 패리 애미니 / 리처드 래넌 <사랑을 위한 과학> 중



이 책은 각각 생화학, 수학, 심리학을 전공한 후 의대에서 정신의학을 연구한 교수들이 사랑을 과학적으로 풀어놓은 책이다. 사랑을 하고 또 헤어지면서 겪게 되는 많은 불가사의한 일들에 과학적 근거가 있음을 보여준다. 사랑을 하며 겪는 수없이 많은 기적에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마법에 걸리거나 속고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공감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은 자신이 전파에 담아 보낸 이야기가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뿐 아니라 스스로도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박물관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이런 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안정된 누군가가 다가가 주파수를 맞춰 공감해 준다면, 그의 어둡던 세계에 한 줄기 빛이 들어가게 된다. 그 빛이 어두컴컴했던 그의 내부를 비출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많은 보물을 찾게 될 것이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할 때, 특히 임상이나 상담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다.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말하고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줄고 마음의 평화를 찾는 상담이나 심리치요의 과정이 마치 마술처럼 신기해서 매료되었다. 물론 잘 훈련된 상담가나 심리치료사가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돕기 때문이지만, 분명 상담의 많은 부분은 함께 있어 주고,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에서 그 효과가 나타난다.



처음 사랑에 빠질 때는 번개가 치듯 번쩍하며 가슴에 뭔가가 꽂힌다. 온몸과 마음이 열병을 앓는 듯, 하루 종일 가슴이 두근거리고 온갖 정서적 자극과 흥분으로 가득해진다. 이런 사랑에 빠지는 흥분은 잠깐이면 지나간다. 황홀한 사랑의 순간은 아쉽지만 영원히 붙들어둘 수는 없다. 짧게는 몇 초에서 길게는 몇 년까지 지속 기간은 다 다르지만,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진정한 사랑은 사실, 그 달콤한 순간이 지나간 후에야 비로소 시작된다.



설레고 흥분되는 자극의 시간이 지난 후, 진정한 사랑을 만들어가는 건 두 사람이 연주하는 듀엣과 비슷하다. 두 악기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음색을 이해하고, 상대가 연주하고 싶어 하는 박자나 리듬, 톤도 이해해야 한다. 사랑 역시 서로를 알아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주파수에 맞추고 새롭고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듯 상대를 읽어나가야 한다. 좋은 독자는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고정관념을 버리고, 책이 보여주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특별한 세계를 읽어 나간다. 이때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 성급하게 판단하다 보면 텍스트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내가 만들어 낸 엉뚱한 상상의 결과물만 보게 될 수도 있다. 사랑한다면, 감각과 영혼의 문을 모두 열어 놓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어 나가야 한다. 그럼 어느 순간 내가 상대 안에, 상대가 내 안에 들어온 듯 공명하는 걸 느낄 수 있다.



사랑은 생리 작용의 영향력을 서로 주고받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보다 더 깊고 엄밀한 연결이 수반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변연계 조절을 통해 서로의 감정, 신경 생리 작용, 호르몬 수치, 면역 기능, 수면 리듬, 안정 상태 등을 조절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 파트너를 잃은 사람이 자신의 일부가 사라졌다고 말할 때 그것은 생각보다 더 정확한 말이다. 신경 활동의 한 부분은 살아 있는 다른 뇌의 존재에 의존한다. 그것이 없으면 그를 구성하고 있던 전기적 상호 작용이 변화를 겪는다.

토머스 루이스 / 패리 애미니 / 리처드 래넌 <사랑을 위한 과학> 중


사랑을 하면 두 사람의 뇌가 마치 한 사람의 뇌처럼 작용한다니,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이란 표현이 단순한 은유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신체적인 질병을 앓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헤어짐은 갑자기 정전이 되는 것처럼 다시 냉혹하고 어두운 세상에 내동댕이쳐지는 것과 다름없다.



어미를 잃은 강아지는 쉴 새 없이 배회하고, 주변을 구석구석 검사하며 짖어댄다. 문을 긁다 그마저 소용없다고 생각되면 납작 웅크린 채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 사람도 사랑하는 이를 잃으면 내부에서 불안이 증폭되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그마저 소용없다고 생각되면 먹기도 싫고 세상에 대해 무관심해진다. 혼자 있고 싶고, 세상이 어둡게 보인다. 하나였던 관계가 찢어지거나 부서진 것이니 아프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헤어지는 과정의 심각한 상처를 생각하면 사랑하는 일에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헤어질 게 두려워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안될 일이겠지. 사람은 사랑을 하고 또 받아야 온전히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존재다. 아기들에게 충분한 영양분과 좋은 옷,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해도 손을 잡아주거나 얼러주고, 속삭여주고, 다독거려 주고 안아주는 상호작용을 해주지 않으면 결국 생존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사랑은 생존에 필수다. 어쩌면 음식이나 잠자리보다 더 중요하다. 



세상에는 사랑의 능력이 부족해 상대와 주파수도 잘 못 맞추고 공명하지 못하는 상처 입은 영온이 참 많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사람들끼리 마주치면 때로 서로에게 상처만 입히고, 더 움츠러들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불안정한 사람과도 공명하며 안정감을 줄 수 있는 품이 넓은 사람이 되고 싶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말없이 꼭 안아줄 수 있는 품이 넓은 사람이.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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