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희 Apr 01. 2024

내가 믿어주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꿈

낭만이란? 사전에는 '실현성이 적고 매우 정서적이며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 상태, 또 그런 심리 상태로 인한 분위기'라고 정의되어 있다. 낭만의 사전적 의미는 전혀 낭만적이지 않지만, 열 살 때 나는 이미 낭만을 알아 버렸다. 낭만이 실현성이 적다는 사실뿐 아니라, 현실에 의해 쉽게 좌절된다는 것마저도. 학교 무용부에서 1년쯤 발레를 배웠을 때였는데, 나는 계속하고 싶었지만 부모의 반대에 부딪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주장을 펴 본 것이었지만,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단식 투쟁이라도 할 생각이 있었지만, 소질이 없으니 그만두라는 말에 끝까지 고집부릴 명분을 잃었다.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아 마치 장엄한 레퀴엄을 듣듯 '백조의 호수'를 감상했다. 수없이 들었기 때문일까, 틀자마자 튀기 시작한 LP판.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못 박은 엄마의 말에 묵묵히 순종하며, 낡은 LP판에 작별인사를 고했다. 폐허 꼭대기에서 춤을 추다 마지막으로 몸을 던지는 오데트처럼, 내 생애 첫 낭만은 그렇게 몸을 던졌다.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내 꿈이 검은 바다에 처연하게 몸을 던졌다.



첫 번째 꿈은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한 꽃봉오리째 댕강 하고 목이 잘렸지만, 그때 나는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꿈이 없는 삶이 왜 지루하고 권태로운지 알게 된 것이다. 겨우 열 살에.


그녀는 꿈을 실현하지 못하게 막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는 것을 퍼뜩 깨달았다. 그 꿈들이 실현될 수 없을 거라고 믿을 때, 그리고 운명의 바퀴가 돌고 돌아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그 꿈들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변했을 때. 후자의 경우 더럭 겁에 질려 출구를 알지 못하는 길에, 미지의 위협들로 가득한 삶 속에, 익숙한 것들이 영원히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가능성 속에 감히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바꾸길 원한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변함없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파울로 코엘료 <악마와 미스 프랭> 중


내 꿈이 좌절된 이유가 부모의 반대라고 믿어왔지만, 이제는 안다. 실은 스스로가 꿈이 실현될 수 있다는 걸 믿어주지 않았다는 걸. 누군가 '넌 아직 다리 찢기도 못 하잖아'라고 할 때, 나는 '이제 겨우 열 살이고 겨우 1년밖에 안 해봤다고, 아직 닳아서 버린 토슈즈가 한 쌍도 안 된다'라고 나의 꿈을 변호할 용기가 없었다. 세상의 모든 발레리나가 태어날 때부터 유연한 몸을 갖고 태어나는 건 아닐 텐데도. 물론 타고난 재능이 있다면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쉽게 꿈을 실현할 수 있겠지만, 결코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안다. 발레리나 강수진도 하루에 열아홉 시간을 연습하며 한 시즌당 토슈즈를 250개쯤 갈아치웠다고 한다.



여기가 끝이고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할 때
그 사람의 예술 인생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다
-강수진


부모의 반대에 직면했을 때, 나 역시 거기가 끝이라고 생각했다. 발레리나로서의 예술 인생은 그렇게 끝이 난 것이다. 고장 난 '백조의 호수' LP판과 함께.



꿈이 뭐냐고 묻는 게 바보 같은 질문 중 하나가 되었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것들을 욕망해도 이루기 어려운 시대에 꿈은 사치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사회가 채찍을 무섭게 때리고 획일화를 강요할수록, 오히려 그걸 견디고 나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꿈이 꼭 있어야 한다. 세상의 손가락들이 한 가지 방향만 가리키고 있다 해도, 실은 수많은 길이 존재한다. 고속도로처럼 넓고 반듯한 길이든, 숲 속의 오솔길처럼 좁지만 아기자기한 길이든, 내가 선택한 길이 가장 좋은 길이다. 설사 선택을 후회하고 다시 되돌아와 몇 년쯤 흘려보낸다 해도 결코 낭비가 아니다. 꿈을 가슴에 품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정하던 그 모든 시간이 소중하다. 꿈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내팽개치고 일류 대학을 나와 선망하는 직장에 들어가면 뭘 하겠는가. 거기에 내가 없는데. 나는 사라지고 내 껍데기만 존재하는데.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할까 두려워 포기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설사 가장 두려워하던 그 일이 일어난다 해도,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조금 또는 꽤 많이 돌아가야 할 테지만, 그걸로 절대 인생이 끝나지 않는다. 실패나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결코 경험해 보지 못했을 값진 경험들을 하게 될 테고, 내 삶에 그만큼 깊이가 생긴다. 시도하지 않는 것이 죄지, 완벽하지 못한 것은 죄가 아니다. 피 흘림과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꿈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건 초고는 정말 엉망이라는 것. 상당 부분 도려내거나 다시 써야 한다. 엉망인 초고라도 편집과 퇴고를 통해 좋은 원고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삐뚤빼뚤, 절룩절룩 걸어간다 해도 절대로 부끄러워하거나 비관할 필요는 없다.


꿈이 조롱당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누가 봐도 바로 실현될 것 같다면 그런 걸 우리는 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남들에게는 내 꿈을 비웃거나 조롱할 자유가 있다. 내게는 세찬 비난과 조롱의 비바람으로부터 내 꿈을 지켜내야 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 



대학교 4학년 때,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후 친한 친구 한 명과 가족을 제외하고는 비밀로 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별로 예쁘지도 않고, 목소리도 좋지 않고, 말도 잘 못 하고... 불을 보듯 훤했다. 내가 아나운서가 될 수 없는 101가지 이유라는 책도 누군가는 금방 쓸 수 있으리란 걸. 사실 쏟아지는 비난과 조롱의 화살을 받으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꿈을 위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을 존경하지만, 내게는 그만큼의 용기는 없었다. 말에는 엄청난 힘이 있어 누군가의 꿈 하나 죽이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니까. 그래서 내 꿈을 지키기 위해 비밀이라는 소극적 방법을 택했다. 여기가 끝이라고 꽃봉오리를 자르는 일마저 나 자신의 선택이 되어야 후회가 없다. 



첫 직장이었던 방송국을 3년 만에 그만두었다. 그로 인해 인생의 쓴맛도 알게 되었고, 자신을 겸손하게 돌아볼 수 있는 계기도 되어 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때를 돌아보면, 한 우물을 파기 시작했을 때 최소한 물이 나올 때까지는 팠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큰 결정을 내릴 때 좀 더 멀리 보는 안목을 가졌더라면 하는 미련과 함께. 평생 직업을 단번에 알아보기는 어렵고, 또 평생 한 가지 직업만 가질 필요도 없으니, 지금 이 순간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있다면 새로운 일에 도전하라고 격려하고 싶다. 단 지금 직장이 있다면, 사표를 던지기 전에 데드라인을 정하고 차근차근 준비하라는 현실적인 조언도 하고 싶다. 치열한 고민 없이 열정만 앞서면 반드시 상처를 입고 고생을 하게 되어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꿈을 좇는 일이 불가능하거나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꿈을 한쪽 구석에 접어두는 일이 더 힘든 일인지 모른다. 열두 살에 처음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지만, 곧 덮어 버렸다. 글솜씨도 없는 데다, 작가는 어른들이 기뻐하는 직업도 아닌 것 같아서. 스물다섯 살에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를 읽고 새벽마다 모닝페이지를 쓰면서 잠깐 글 쓰는 맛을 보았지만, 사는 일이 녹록지 않아 또 덮어 버렸다. 미국에서 MBA를 하고 컨설팅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군가 컨설팅 몇 년 한 후에 뭘 할 거냐 물었다. 벤처 캐피털에 들어가겠다거나 다국적기업으로 옮기겠다거나 등의 대답이 오고 갔다. 내가 소설을 쓰고 싶다고 대답한 순간, 엘리베이터 안의 뜨악한 표정들이 선명히 기억난다. 



서른여덟 살 가을이 되어서야 겨우 첫 소설을 탈고했으니, 정말 오래오래 돌아온 셈이다. 여전히 갈 길은 멀고, 타고난 재능이 없다는 건 점점 더 명백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 꿈을 응원해 주고 싶다. 꿈을 덮어두고 사는 일은 훨씬 더 괴로운 일이니까. 살아보니 진정한 보상은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외부에서 되돌아오는 몫이 없어도,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이 헛되지 않고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면, 그것만으로 진정한 보상이 된다. 더 이상 기쁨을 누릴 권리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 여전히 내가 소설가가 될 수 없는 101 가지 이유쯤은 거뜬히 댈 수 있지만, 그런 상황이나 조건들과 관계없이 나는 소설을 쓰는 기쁨을 계속 누릴 것이다. 


나에 대해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겠지만 '내가 언제 행복한가?'라는 질문은 생각보다 어려운 질문이다. 자기만의 목소리와 색깔을 찾는 건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열세 살의 내가, 서른두 살의 내가, 마흔 살의 내가 계속 달라지니, 끊임없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신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나를 가장 강렬하게 움직이는 건 뭔가? 내가 가장 즐겁게 하는 일은? 살면서 기쁨과 즐거움을 가장 많이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 내가 정말 살아있구나, 하고 느끼게 해 준 일은 무엇이었나?


내가 믿어주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나의 꿈.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믿어 주자.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강연 신청 및 상위 1% 독서 커뮤니티 무료입장


https://link.inpock.co.kr/sohee_writer


이전 18화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면 자신을 던져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