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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Mar 18. 2024

불멸의 사랑은 이별 없는 사랑이 아니다

이별

열다섯 살 소녀였을 때, 첫사랑이 찾아왔다. 잘생긴 미혼의 불어 선생님쯤을 마음에 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작달막한 키에 두꺼운 안경을 쓰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들까지 있는 도덕 선생님을 좋아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일등으로 등교해 선생님 책상에 편지를 올려놓았다. 저녁마다 동전을 한 움큼 쥐고 공중전화로 달려가 전화를 걸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답니다.) 이룰 수 없는 짝사랑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의 흔들림을 보았다. 짝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순간, 바로 상대의 마음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열 다섯 소녀는 그 사랑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사랑이 이뤄지면 깨지고 부서질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극장에 갔다. 프랑스 시인이자 극작가인 장 콕도 탄생 백주년 기념으로 그의 모노드라마인 <목소리>가 무대에 올랐다. 사랑하던 상대로부터 버림받은 한 여자가 전화통화를 통해 죽어가는 사랑을 이해하고 구해보려고 절절히 쏟아내는 기나긴 독백을 들었다. 언제 끊길지 모르는 전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떻게든 이별을 막아보려고 내뱉는 여인의 처절한 목소리.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겼음을 알리는 신호음이 들렸다. 여배우의 독백이 더 이상 들리지 않고 무대의 불이 꺼졌다. 볼을 타고 한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 않은 채, 내 소중한 첫사랑을 어두운 무대에 두고 돌아 나왔다. 1년쯤 뒤, 딱 한 번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차갑고 냉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줄 수 있는 나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잔인한 말일지 모르지만, 세상에 영원한 사랑은 없다. 영원을 위해 노력하는 사랑만이 있을 뿐이다. 특히 젊은이들이 품는 기대와 로망을 처참히 짓밟는 말을 잔인하게 하는 이유는, 영원한 사랑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만 비로소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백일홍은 초겨울까지 오래도록 핀다. 일일초는 이름처럼 매일매일 피고 진다. 빅토리아연꽃은 낮에는 피지 않고 밤에만 핀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놓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빛깔과 향기로 피고 지는 시기도 다른 꽃들처럼, 모든 사랑은 독특함을 지닌다. 사랑이라는 한 이름으로 부르기는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사랑은 세상의 어떤 다른 사랑과도 같지 않은 유일무이한 특별한 사랑이다. 모든 사랑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끝이 있다는 것.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한 꽃이라도 꽃이 필 때가 있으면 분명 질 때가 있다. 간혹 사람의 수명보다 오래 피는 꽃도 있고, 꽃이 져도 그 메마른 뿌리를 담고 있는 화분마저 소중히 하며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랑도 있어, 우리가 영원한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가진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랑은 우리의 기대보다 빨리 진다.



사랑에 빠진다는 말은 자기 안의 가장 고상하고 무한한 가치가 있는 존재를 다른 누군가에게 투사하는 것을 뜻한다. 사랑에 빠진다는 의미는 대부분 자신이 지니고 있는 신의 이미지를 상대방에게서 발견할 때의 체험을 말한다.

로버트 존슨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중


어느 날 내 방 창가에 날아든 새처럼 우연히 찾아온 사랑은, 마찬가지로 언제든 훌쩍 내 곁을 떠날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 역시 나처럼 자유로운 영혼이기 때문이다. 특히 벼락에 맞은 듯 한순간에 사랑에 빠져버린 경우라면, 흐드러지게 핀 화려한 벚꽃이 쏟아지는 눈발처럼 땅에 떨어지듯 한순간에 지고 만다. 사랑에 빠진다는 건 상대의 진실보다는 내가 보고 싶은 이상적인 이미지를 투사해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구름 위로 떠 있던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비눗방울처럼 그 이미지가 톡 하고 터져 버린다. 그래서 특히 젊은 날의 폭풍처럼 격정적이고 황홀한 사랑이 더 빨리 끝난다.



사랑은 만남보다 헤어짐이 중요하다. 어차피 헤어질 테니 아무렇게나 사랑하라거나, 사랑에 대해 비관적이거나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라는 말이 아니다. 사랑을 할 때는 매일 그날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 하지만, 사랑이 지는 시점이 왔을 때 사랑의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 끝이 추하면 전 과정이 추해진다. 한때 내 모든 걸 걸었던 사랑을 그렇게 모욕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마무리를 잘해야 소중했던 내 사랑을 영원히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말이 소리를 갖기 시작한 순간부터 씨실과 날실이 얽혀 짜인 직물처럼 두 사람의 인생은 얽힌다. 어떤 이별이든 갈가리 찢어지는 아픔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어미 잃은 강아지처럼 처음에는 헤어짐을 인정하지 않고 사랑을 되찾기 위해 울부짖다가, 무기력하게 고개를 떨구고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땅에 웅크리고 있게 된다. 꽃이 시들어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는 그 애도의 과정마저도 화려하지는 않아도 처연하고 숭고한 아름다움이 있다. 사랑이 떠난 뒤에 충분히 슬퍼해야 한다. 슬픔 안에 머무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말아야 한다. 슬픔이란 내가 누군가를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해 보았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감정이니까



충분히 슬퍼하지 못하고 감정을 억압하고 넘어가면, 어느 순간 우울증이나 화병처럼 병적인 형태로 고통이 찾아올 수 있다. 헤어짐 뒤에 오는 어떤 감정도 억누르지 말고, 충분히 느끼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분명 힘든 과정이지만, 떨어진 꽃잎이 땅 속에 새로운 영양분을 주듯, 이별의 고통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고, 새로운 사랑의 위한 자양분이 되어 줄 것이다.


헤어짐은 분명 상처를 남기지만, 내가 상처받았다고 해서 상대를 저주하거나 상대에게 복수하는 건 옳지 않다. 이별 후에 분노하는 건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그 화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사랑하던 사람에게 복수의 칼을 겨누는 것만큼 추한 일은 세상에 없다. 자신이 사랑했던 상대를 더럽히고 비난함으로 결국 자기 사랑과 자기 자신까지도 모욕하고 하찮은 걸로 만들어 버리는 어리석은 짓이다. 꽃이 시들었다고 꽃잎을 갈가리 찢고 가지를 난자하는 건 자신의 불안정한 자아와 낮은 자존감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움이나 증오는 잠깐 도움을 줄 수는 있어도, 결국 아픈 상처를 칼로 긁어댄 것처럼 나중에 더 큰 흉터만 남는다.



만일 당신이 참으로 날 사랑한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게 된다. 만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세계를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나 자신도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중


건강한 꽃나무에서 싱싱한 꽃이 오래 피듯, 자아가 튼튼하고 성숙해야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고 존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을 믿듯이 사랑도 믿을 수 있다. 자기가 단단히 서 있어야 사랑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불안정한 자아로는 불어오는 모든 바람에 심하게 흔들릴 수밖에 없고, 낮은 자존감으로는 아무리 사랑을 받아도 그 사랑을 온전히 믿을 수 없어 사랑을 밀어낸다. 자아가 건강해야 이별 후 상처도 빨리 아물 수 있다.


철없던 시절, 나는 상대방에게 상처 주기 싫다는 이유로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거나, 마치 다시 사랑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듯 여지를 남겨 놓아 희망고문을 자행했었다. 잔인한 짓을 잔인한 줄도 모르고 저질렀던 것이다. 그때는 여지를 남겨 놓는 것이 상대를 위한 배려라고 착각했었다. 제대로 이별을 하지 않고 애매하게 피한 이별이 상대를 더 아프고 힘들게 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사랑이 식는 건 내 잘못이 아닐 수 있지만, 시든 사랑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는 건 내 잘못이다. 사랑의 꽃이 시들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비겁하게 달아나지 말고 제대로 이별을 고해야 한다.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들을 헤갈스럽게 늘어놓지 말고, 함께했던 아름다운 기억마저 모두 지워버리는 잔인한 말도 하지 말고. 그저 솔직하고 투명하게 식어버린 사랑을 고백하자. 이별의 아픔이 가시기 전에 섣불리 다른 사랑을 시작하는 것도 좋지 않다. 상처를 잊기 위해, 서둘러 다른 사랑을 찾아 위로를 얻으려 한 적 있는데, 결국 이어지는 사랑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더 큰 상처만 얻게 되었다. 상처가 아무는 시간, 떨어진 꽃잎이 흙 속으로 스며드는 시간은 모든 이별에 필요하다.


사랑에 한 번 크게 데어본 사람들은 다시는 상처받기 싫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내가 덜 사랑할 거라 부르짖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물론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가 되지만, 사랑을 주고 싶은 만큼 충분히 주고 충만히 사랑한 사람은 절대 후회가 없다. 그래서 사랑을 할 때는 모든 걸 걸고 사랑하는 이에게 남김없이 부어주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의 샘은 부어준다고 바닥을 드러내는 샘이 아니니까. 오히려 많이 부어주고 나면, 더 많은 사랑으로 채워진다. 바닥을 드러내어 더 이상 사랑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닌 걸 사랑으로 착각하고 퍼부어준 것일지 모른다. 사랑은 부어준다고 고갈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주지 않으려고 문을 꼭꼭 걸어 닫을 때 말라 버린다.



헤어짐이 아름다운 사랑은 외롭거나 힘들 때 언제든지 꺼내보면 힘이 되는 그런 소중한 추억으로 내 기억의 보퉁이에 남게 될 것이다. 불멸의 사랑은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이 아니라, 시들고 난 후에도 영원히 가슴에 남는 꽃이다. 지금 사랑의 꽃이 피어 있다면 하루라도 더 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물을 주고 보살펴 주자. 혹시 지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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