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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Mar 11. 2024

아무렇게나 결혼하지 않는 것

결혼

여자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남편들은 마음속에 여러 개의 방을 갖고 살죠.
정말 소중한 것은 자기만의 방에 몰래 담아둬요.


남편에 대한 의심을 전혀 하지 않았던 나는 배신감으로 그동안의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어요.


남편과 대화가 자꾸 겉돌아요. 남편의 마음을 알고 싶은데, 짐작할 길이 없어요. 무슨 말을 걸어야 할지 머뭇거리다 결국 돌아서고 말죠.



'happily ever after... 그들은 결혼해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는 동화 속의 문장은 현실에서 왜 그리 어려운 걸까. 이혼율은 점점 높아지고, 이혼하지 않고 사는 부부들 중 많은 부부가 외롭고 고독하며 심지어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앞에 인용한 대화는 하루 동안 스치며 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말을 받아 적은 것이다. 


"할머니, 오랜 세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신 비결이 뭐예요?"
할머니는 꽃향기가 나는 향수를 손목에 살짝 뿌리며 대답했다.
"아무렇게나 결혼하지 않는 것!"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나 보다. 
"아무렇게나 결혼하지 않는 것, 그것만 알면 된단다."

잭 캔필드 - <혼자인 사람들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중


이렇게 간단한 걸 생각해 본 적 없다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연애할 때는 몰랐다가 막상 결혼하기로 결심하고 나면 상대방의 몰랐단 점들을 발견하며 갑자기 머리가 아뜩해진다. '이쯤에서 도망가 버릴까?' 하다가도 다음 순간, 이미 돌려 버린 청첩장이니, 예약해 놓은 예식장이니, 맞춰 놓은 예복 등이 떠오르면서 '만약 이 사람이 아니면 나중에 이혼하면 되지' 하며 그냥 밀고 나간다. 얼마나 아찔하고 위험한 생각인가. 사실 그 후에 이어질 불행한 결혼 생활로 인한 상처나, 결국 이혼해 받게 될 끔찍하고 심각한 타격에 비하면, 파혼으로 인한 경제석 손실이나 창피함 따위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에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아무리 결혼 준비가 한창이라도,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고 덮어놓고 진행하지 말고 마지막 순간까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 사람이 정말 내가 평생을 함께해도 좋을 사람일까. 결혼 하루 이틀 전에 상대에게도 지금이라도 그만둘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배우자가 평생 나와의 결혼을 후회하며 산다면 내 삶도 행복할 수 없는 거니까. '미친 짓' 같이 들리지만, 결혼에 대한 결정은 그 정도의 위험과 비용은 감수해야 할 정도로 중요하다.



마침내 배우자를 선택해 결혼을 결정했다면, 그 순간부터는 부모를 떠나야 한다. 떠나라는 말이 물리적 거리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부모에게 예의 없이 행동하라는 말도 아니다. 결혼한 순간부터 온전히 독립해 부부가 한 팀이 되라는 얘기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부모의 의견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결국 배우자의 의견을 가장 중요시해야 한다. 부모와 배우자의 의견이 대립할 때, 배우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 물론 부모도 인간인지라, 막상 자녀가 자신의 말 대신 배우자의 말을 따르는 걸 경험하면 섭섭하고 서운하겠지만, 그래도 그게 옳다. 



결혼을 하고 나면, 내 아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놀라게 되고, 남편의 예상치 못한 점들 때문에 힘들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건 나 혼자 겪는 일도 아니고, 나와 배우자가 맞지 않는 사람이라서도 아니다. 한 퍼즐의 볼록 나온 부분과 딱 맞으려면 다른 퍼즐은 오목 들어가야 한다. 참 신기하게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퍼즐 조각처럼 딱 맞추며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게 결혼이다.


정리정돈을 잘하고 깔끔한 사람은 항상 뭔가를 흘리고 다니는 사람과, 택시 기사처럼 길을 훤히 아는 사람은 나처럼 동서남북도 분간 못하는 길치와 만난다. 이 가게 저 가게의 우윳값이 얼마 차이 나는지 정확히 하는 사람은 나처럼 숫자에 0이 한두 개 더 붙어도 눈치 못 챌 정도로 가격에 둔감한 사람과 결혼한다. (우리 부부 얘기다)


사랑이 퐁퐁 샘솟을 때는 서로의 이런 다른 점이 매력으로 보이겠지만, 어느 정도 배우자에게 익숙해지면 이 모든 '다름'이 '틀림'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보통 성격 차이라고 말하는 것들, '왜 아무 데서나 방귀를 뀌는 거야?' '사랑한다며 왜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해?' '그렇게 돈을 개념 없이 써 대니 우리 돈이 모이지 않는 거지.' '시간만 나면 TV 앞에 멍하게 앉아 있는데 무슨 발전이 있어?' 등등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가 배우자의 결점으로 보인다.



내 배우자만 이상한 사람이라서가 절대 아니다. 배우자의 다름이 틀림으로 보이고 견디기 힘들어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결혼 한 커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바로 '그 순간', 어떻게 해나 가느냐에 따라 이후의 결혼 생활의 행불행이 갈라지게 된다. 그 순간에 남편은 아내가 열어 볼 수 없는 자기만의 방을 만들고, 그 방에 자신만의 철학이나 고민뿐 아니라 아내 몰래 하는 도박이나 주식 투자, 심지어 외도의 대상까지 넣을 수 있다.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결혼을 해도 두 사람이 적당히 버무려져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함께 살아가는 거니까. 하지만 아내와 절대 공유하지 '않는' 또는 '못하는' 것들이 늘어가고, 또 그 내용들이 경계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분명 문제가 된다.



어떻게 하면 그 순간을 지혜롭게 잘 넘길 수 있을까. 언젠가 어느 노부부에게서 들은 비결은 날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둘이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얘기를 한다는 거였다. 매일 이야기하는 시간은 달라지지만, 노부부는 최소한 10분 이상 그날 있었던 일이나, 들었던 생각을 두서없이 이야기한다고 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쉬운 일이 살다 보면 어려워질 때가 있다. 아내는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지는데 남편은 자정이 넘어야 잠자리에 든다든지 하는 사소한 이유로 대화에 종종 실패하게 된다.


대화의 채널을 유지하기 쉬울 때, 그것이 어려워지기 전에 잘 지켜야 한다. 어떤 커플도 처음부터 그게 어려웠던 건 아니니까. 처음 사랑을 할 때는 대화를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오히려 시간이 부족할 테니까.


결혼의 위기는 대개 각자 인생의 위기와도 맞물린다. 사업에 실패한다든지, 누군가에게 사기를 당해 재산을 탕진한다든지, 누군가에게 엄청난 배신을 당한다든지, 사고를 당해 장애가 생긴다든지,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는 등 고난과 실패를 경험할 때가 바로 결혼 관계에도 금이 갈 수 있는 위험의 시기다. 자존감에 금이 가고 상처 입고 떨고 있을 때는 위로랍시고 던진 말 한마디조차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을 쪼개놓을 수 있으니까. 남편과 아내를 향한 모든 마음과 정성이 귀찮은 부담이 아니라 위로와 행복이 될 수 있도록 말 한마디 건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더구나 상처 입은 배우자에게는. 그럴 때는 백 마디 말보다는 한 번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이 더 힘이 될지 모른다.



아무렇게나 결혼하지 않는 것!


이 말을 한 할머니의 뜻에는 심각한 고민 없이 되는 대로 배우자를 선택한다거나,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음에도 결혼을 강행하는 것만 경계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꽃향기 나는 향수를 손목에 살짝 뿌리는 할머니의 사소하지만 몸에 밴 자연스러운 동작에 그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아무렇게나 결혼하지 않는 것!


결혼을 할 때도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되지만, 매일매일 결혼 생활을 해나갈 때도 절대 아무렇게나 하지 않는 것! 할머니는 그 얘기를 하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고약한 노네날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이임에도 자신의 체취를 향기롭게 유지하기 위해 꽃향기가 나는 향수를 살짝 뿌리는 할머니라면 나이가 들어도 오래도록 남편의 사랑을 받지 않았을까.



남편이 힘들다고 할 때, 아내가 아닌 세상의 다른 여자라면 어떻게 대꾸할까? 아내가 헤어스타일을 갑자기 바꾸었을 때 세상의 남자들은 어떤 반응을 할까? 아내가 갑자기 글을 쓰겠다고 덤빈다면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만약 배우자가 아니라 연인이라면 떨어져 있는 낮 시간 어떤 내용의 메시지를 아내에게 보낼까?


잡은 물고기에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고약한 농담도 있지만, 결혼식을 올렸다 해서 절대 끝이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 결혼은 시작된다. 매 순간 아내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남자, 남편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여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내 배우자는 세상에 하나뿐인 매력적인 배우자가 되어줄 것이다.



배우자가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반드시 내가 먼저 할 것. 나는 훌륭하고 멋진 배우자니까.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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