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사비크_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아퀴레이리에 며칠 머무는 동안 퍼핀과 고래를 보기 위해 하루에 두어 대쯤 있는 버스를 타고 후사비크까지 찾아갔다. 어떤 배를 타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 작은 배가 신속하게 고래를 찾아 움직일 수 있다는 말에 작은 배를 타기로 했다. 배 안의 좌석이 마치 말안장처럼 생겼다. 두 시간 반 동안 내내 딱딱한 안장 위에서 말 대신 파도를 타느라 엉덩이가 얼얼했다.
하늘과 바람과 바다와 나.
배에서 보낸 대부분의 시간, 우리는 파도를 가르며 달리고, 조용히 숨 죽이며 바다 위를 살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웨일 앤 퍼핀 왓칭'의 대부분은 기다림이었다.
몇 년 전 퍼핀으로 유명한 웨일스의 앵글시에 갔을 때, 퍼핀을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4~6월에만 찾아온다는 퍼핀을 7월에 찾았으니, 한 발 늦은 셈이었다. 그때 때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잔뜩 기대했던 몇 년 전에 한 마리도 볼 수 없던 퍼핀을 과연 후사비크에서는 볼 수 있을까.
기우였다. 우리는 '퍼핀 아일랜드'라고 불리는 작은 섬 주위로 새까만 파리떼처럼 모여 있는 수백, 수천 마리의 퍼핀을 보았다. 파리떼 같다고 묘사했지만, 어찌나 빠르게 날아다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작은 섬에 하얀 점처럼 뿌려져 있는 게 모두 퍼핀이라고 했다. 전 세계 퍼핀의 60%가 아이슬란드에 산다고 한다. 막연히 때를 기다리기보다는 가능성이 높은 곳을 찾아가는 것이 훨씬 나았다. 대부분의 관관객이 머무는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도 '웨일 왓칭' 배가 많이 있었지만, 성공 가능성을 볼 때 후사비크까지 온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10시 방향!
마침내 누군가 소리친다. 배에 탄 우리 모두는 그쪽으로 얼굴을 잽싸게 돌리고 탄성을 질렀다.
3시 방향!
소리에 맞춰 얼른 고개를 돌려야 한다. 조금만 지체하면 고래는 이미 물속으로 들어가 사라져 버리니까. 그 찰나의 기쁨을 위해 먼 길을 왔으니, 그 찰나의 순간을 잘 포착해야 한다.
"어디서 왔어요?"
독일인 가이드가 물었다.
"한국이요."
"와우, 정말 멀리서 왔네요. 비행기 얼마나 걸려요?"
"한국에서 카타르 도하로, 도하에서 프랑크푸르트로, 프랑크푸르트에서 레이캬비크로, 레이캬비크에서 아퀴레이리로..."
아퀴레이리에서 후사비크로 버스를 타고 온 시간이나, 내가 살고 있는 베이징에서 항저우로, 항저우에서 인천으로 돌아가야 했던 사정이나 시간은 (코로나 19 때문에 직항을 탈 수 없었다) 얘기하기도 전에 가이드 눈은 이미 동그랗게 커졌다.
그렇게 긴 시간과 많은 걸 걸고 이 낯선 땅에 왔다. 바다 위에서 일기예보대로 비가 오지 않기를 속으로 빌며 긴장하며 기다린다. 작고 귀여운 밍크고래를 만났다. 밍크고래가 내뿜고 간 숨냄새는 밍크고래의 모습보다 인상적이었다. 후사비크까지 오지 않았다면 밍크고래가 스컹크처럼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바다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마침내 거대한 혹등고래 (Humpbackwhale)가 나타났다. 사람의 지문처럼 제각각 개성을 지닌다는 고래의 꼬리마저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경이로운 순간들을 눈으로 포착했다. 후사비크를 잊지 못할 것 같다. 아주 멀리까지 오랜 시간을 들여 찾아왔기에 더욱 소중한 순간들을.
고래와 퍼핀을 함께 보고 싶다면 아이슬란드 후사비크로! 엉뚱한 곳에서 때를 기다리는 것보다 멀더라도 바른 곳을 찾는 편이 훨씬 낫다.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고, 2024년 심리장편소설 출간 예정.
강연 신청 및 상위 1% 독서 커뮤니티 무료입장, 1:1 글쓰기 코칭 신청
https://link.inpock.co.kr/sohee_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