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말하려던 날, 남편이 나를 찍어 눌렀다

소설 '당신이 치약을 짜는 방법' 2화

by 윤소희

('당신이 치약을 짜는 방법' 1회를 먼저 읽고 오시면 좋습니다)


그동안 허리가 아픈 적은 없었다. 며칠 전 엄청난 무게에 깔려 짓눌리지만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키가 평균보다 작고 마른 나와는 달리 남편은 키도 덩치도 크다. 남편은 185라고 계속 우기지만, 남편의 키는 아무리 봐도 187,8은 된다. 결혼할 때 2인용을 살까 4인용을 살까 한참 고민한 끝에 산 4인용 식탁이 남편과 둘이 앉으면 2인용 식탁처럼 작게 느껴진다. 남편은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로 운동깨나 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운동신경이 둔하고 순발력이 부족한 편이다. 덤벙거릴 때가 많아서 그 큰 덩치로 종종 크고 작은 사고를 친다.


그날도 그랬다. 식탁에 마주 앉아 남편은 커피를, 나는 민트 잎을 띄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편은 뭔가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 큰 몸을 움직여 돌발행동을 잘 하는데, 얘기 도중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벌떡 일어서다 팔꿈치로 머그잔을 건드렸다. 살짝 건드렸을 뿐이지만 머그잔이 테이블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걸 본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머그잔을 잡지는 못하고 바닥에 넘어졌다. 남편은 쨍그랑 소리에 놀라 뒤돌아 보다 넘어진 내 몸에 발이 걸려 내 위로 덮치듯 쓰러졌다. 쌀 한 가마니 무게가 넘는 남편이 내 위로 넘어졌으니, 허리가 부러지지 않은 게 기적일지 모른다. 처음에는 통증보다 놀란 충격이 더 컸는데, 시간이 좀 흐르니 허리 통증이 극심해졌다. 엉덩이와 다리까지 저렸다.


2.png 머그잔이 넘어지며 테이블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혹시… 터진 치약 튜브도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요?


쏙 들어간 배 위에 두 손을 얹은 채 의사에게 물었다. 의사는 자신이 사용한 비유를 내가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만족했는지 빙긋 웃으며 나를 안심시켰다. 산모 중 디스크 환자도 많고, 자연분만이 안 되면 제왕절개도 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3.png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건 넘어지기 하루 전날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건 넘어지기 하루 전날이었다. 넘어지던 날 남편과 마주앉았을 때 실은 그 이야기를 꺼내려고 적당한 타이밍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남편이 나를 찍어 누르듯 넘어지는 바람에 갑자기 망설이게 된 것이다. 남편이 넘어진 건 실수가 분명할 텐데도 왠지 께름칙하다. 이틀 전 밤에 보았던 남편의 기괴한 모습이 자꾸 머리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한밤중에 갑자기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잠이 깼다.


(다음 화에 계속)




WechatIMG9455.jpg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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