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챌린지_Day 29
요즘 출판계는 이상한 풍경을 보여준다. 독자는 줄고 있는데, 신간은 하루에도 백수십 종씩 쏟아진다.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다고 느껴질 정도다. 책 쓰기와 출간은 이제 특별한 도전이라기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시도하는 이벤트가 되었다.
나 역시 그 흐름에 발을 담갔다. 몇 권의 책을 냈지만, 돌이켜보면 졸작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누군가 글을 쓰고 싶다고 물으면, 나는 여전히 “책은 꼭 한 번 써보라”라고 말한다. 글쓰기가 주는 기쁨과 배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쓰기보다 더 먼저, 더 깊게 권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읽기다.
내가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끊임없는 독서였다. 해외 배송비를 아끼지 않고 책을 사들였고, 읽고 나누며, 집안의 벽들을 책으로 메웠다. 지난 몇 년간 중국 전역으로 1,000 권이 넘는 책을 나눔 했고, 3~4백 권쯤 읽을 때마다 한 권의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내 글의 뿌리는 언제나 읽기였다.
이승우 작가는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읽은 사람만이 쓴다.
잘 읽은 사람이 잘 쓴다.
물론 많이 읽는다고 반드시 잘 쓰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잘 쓰는 이들이 대부분 탁월한 독자인 것은 분명하다. 나 역시 책을 거의 읽지 않던 시절에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조차 없었다. 독서량이 연 100권을 넘어서자 처음으로 글을 쓰고 싶어 졌고, 200권을 넘기자 정기적으로 출간이 가능해졌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은 단순한 양적 축적을 넘어선다. 책을 고르는 눈이 생기고, 서로 다른 분야의 책들이 내 안에서 연결된다. 무질서하게 흩어진 지식이 별자리처럼 이어지는 순간을 여러 번 경험했다. 양이 질을 낳는 순간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읽고 싶은 책이 많아질수록, 다독과 속독의 유혹이 커진다. 책장을 넘기는 손은 빨라지지만, 사유는 점점 얕아진다. 그때 깨달았다. 글쓰기의 토양은 ‘얼마나 많이 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읽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요즘 내가 고전이나 명작을 정독하고, 이미 읽었던 책들을 재독·삼독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뉴저지에서 활동하는 이수정 작가와 온라인으로 북토크와 강독을 진행한 경험은 이 점을 더욱 확신하게 만들었다. 신춘문예와 각종 공모전에서 연이어 당선된 그의 창작 비밀은 다름 아닌 ‘명작을 제대로 읽어내는 힘’이었다. 『노인과 바다』, 『죄와 벌』, 『어린 왕자』 같은 작품을 수십 번 곱씹어 읽은 힘. 내가 들은 『노인과 바다』 강독이 벌써 37번째라니, 좋은 문장이 좋은 독서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명확히 보여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지금껏 해온 다독이 쓸모없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다만 이제는 한 단계 더 정교해져야 할 때다. ‘많이 읽기’에서 ‘깊이 읽기’로, 속도에서 되새김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마침 올해 들어 ‘고전 함께 읽기*’를 진행하고 있다. 한 문장을 붙들고 천천히 읽으며, 함께 사유의 층위를 쌓아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책 한 권을 끝까지 곱씹어 읽은 적이 언제였는가. 책장을 덮은 뒤에도 문장 하나를 붙들고 며칠을 살아본 적이 있는가. 글쓰기를 꿈꾸는 이라면, 이런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몇 년 후 나의 문장은 지금의 독서 방식에 달려 있다. 글을 쓰고 싶은 당신의 문장 역시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결국 읽는 대로 쓸 수밖에 없다.
*윤소희 작가와 함께 하는 '고전 함께 읽기' 4기: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강연 신청 및 상위 1% 독서 커뮤니티 무료입장
https://link.inpock.co.kr/sohee_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