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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글쓰기

100일 챌린지_Day 28

by 윤소희

맨 처음 <완득이>를 영화로 보았다. 그 후 <우아한 거짓말>을 읽었고, 마침내 <너를 봤어>를 읽고서야, 나는 비로소 김려령 작가에게 속삭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를 봤어.”


책 뒤편,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처음 소설을 쓴 동기는 매우 불온하다. 나와 직접 관련 있든 없든, 죽이고 싶은 사람이 많았고, 그래서 죽여야 했다. … 펜촉 살인으로 웬만한 공동묘지 하나쯤 채울 무렵, 나를 죽였다. 그리고 새 소설이 시작됐다. 사랑이다.”


할 이야기가 있는 사람만이 글을 쓴다. 그 이야기는 간절해야 한다. 나 역시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야기가 나를 글쓰기라는 고통의 길 위로 발을 내디디게 했다. 하지만 나는 소설 속에서조차 미운 사람을 죽이지 못했다. 심지어 미움을 표현할 용기도 없었다. 미움조차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내가, 사랑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담지 못한 채 변죽만 울리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제 원형의 이야기는 희미해졌다. 이야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간절함이 흐릿해졌다. 먹고살 만해졌고, 원가족을 떠나 나를 진심으로 애정해 주는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 적당히 평온하고, 적당히 사랑을 느끼는 환경에서 소설이 잘 써질 리 없다.


2.png 나는 문학적 복수를 꿈꾼다


최근, 다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솟아올랐다. 입술이 근질거리고, 가슴속 화산이 폭발 직전이다. 누군가가 나의 진심을 짓밟았을 때 느낀 억울함과 분노가, 펜 끝을 타고 솟구친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면 미안함으로 충분했을 것을, 변검술사도 아닌데 얼굴을 휙 바꾸며 뒤틀어 놓는 인간에게 나는 문학적 복수를 꿈꾼다.


간절함이 생겼으니, 나는 이제 글을 쓸 수 있을까. 이 감정을 글로 옮기는 것이 옳은 일일까. 생각해 보면, 글은 감정의 진실을 포착하는 장치다. 간절함과 분노, 억울함조차 솔직하게 받아들일 때 비로소 글은 생명을 얻는다.


글쓰기란, 단순히 생각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폭풍과 평온,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관찰하고 다듬는 행위다. 미워하고, 사랑하고, 분노하고, 후회하는 모든 감정은 결국 이야기로 정제될 때 독자와 공명한다.


김려령 작가의 말처럼, 수많은 ‘죽이고 싶은 당신’의 그림자를 지나서야, 우리는 나를 죽이고 사랑이라는 빛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지금 그 길 위에 서 있다. 간절함을 믿고, 칼 대신 펜을 들어 글을 쓰는 일. 그것이 나의 오늘이자 내일이다. 이 간절함이 사라지기 전에, 과연 나의 이야기는 글이 될 수 있을까.



WechatIMG8357.jpg 윤소희 작가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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