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tic) 장애
여섯 살 민에게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이사를 가고 싶은지, 유치원을 옮겨도 되겠는지… 진환이 회사를 옮기면서 비행기로 두 시간 넘는 거리의 도시로 이사를 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새로운 도시는 늘 어두침침했다. ‘스모그’니 ‘미세먼지’니 하며, 늘 마스크를 껴야 했다. 답답하다. 어쩌다 민이 마스크를 끼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면 스쿨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수영은 큰일 난다고 펄펄 뛰며 화를 냈다. 아파트 단지에 넓은 공원도 있고 좋은 놀이터도 있지만, 밖에 나가서 놀아도 되냐는 질문에는 거의 한결같이 ‘공기가 나빠서 안 돼’라고 수영은 대답 했다. 답답하다.
새로 이사한 집 가까이에는 한국 유치원이 없다. 한국 유치원에 전화해서 물었지만, 너무 멀어서 스쿨 버스를 보내줄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하지만 수영은 이 도시에서는 운전을 할 수 없다. 민은 형 준과 함께 집 가까이에 있는 국제 학교 유치원에 들어갔다. 학기 중간이라 다른 아이들은 이미 끼리끼리 플레이 그룹이 지워져 있었고, 새로 온 아이에게 살가운 관심을 보여주는 친구는 없었다. 만4,5세 되는 아이들에게 그런 배려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 지도 모른다. 민은 혼자 놀았다. 가끔 민을 부르거나 말을 거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못 들은 척 하고 그냥 혼자 놀았다. 스코트랜드 억양이 강한 선생님의 영어는 알아듣기 힘들었다.
“쟤는 말 못해!"
영어로 또 중국어로, 아이들은 대놓고 민은 말을 할 줄 모르는 애라도 놀렸다. 민은 답답했다. 수영이 ‘수다쟁이’라고 놀릴 만큼 재잘거리는 걸 좋아하는 민이였다. 민은 아이들이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들었지만, 못 들은 척 했다. 민은 한 학기 내내 혼자 놀며, ‘벙어리’로 지냈다.
새 학기, 새 학년이 되며 반이 바뀌었다. 새로운 담임 선생님이 민에게 “이름이 뭐니?”하고 묻자, 민 곁에 있던 아이들이 “쟤는 말 못해요.”하고 대답했다. 민은 대답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자꾸 킁킁거리지마, 버릇 돼."
어느 날 수영이 민에게 말하자 민은 화들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민은 수시로 코를 킁킁거리고 있었다. 이비인후과에서 검사를 하니 집먼지, 진드기에 대한 알러지성 비염이라고 진단이 나왔다. 집 안의 모든 창문은 꽁꽁 닫혀 있고, 거의 열리는 일이 없다. 환기를 시키지 못하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수영은 생각했다. 약 처방을 두 번이나 받아 먹였지만, 민의 킁킁거림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빈도가 높아져, 이제는 1분에도 두세 번씩 킁킁거린다.
이사한 지 1년쯤 지나자 민은 함께 노는 친구도 생기고 학교 생활에 제법 적응도 했다. 수업 시간이나 플레이 시간에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학교 선생님이 수영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수영은 감격해 학교에서 돌아오는 민을 힘차게 끌어안았다. 민이 좋아하는 갈비를 구우며 저녁 식탁을 준비했다. 이제 불행 끝, 행복 시작인 듯 했다.
토요일 오후.
잦은 출장으로 주말에도 종종 집을 비웠던 진환도 마침 쉬는 날이라, 오랜만에 온가족이 함께 집에 있다. 점심 먹은 뒷처리를 한 뒤 잠시 소파에 앉아 쉬던 수영은 갑자기 냉기가 훑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집안이 너무 고요하다. 모두 어디 있는 거지? 아이들 방 문이 살짝 열린 틈으로 들여다 보니 민이 자기 침대에 앉아 인형을 안고 있다. ‘민아’하고 부르려는데, 민이 갑자기 두 손을 들더니 열 손가락을 오므려 입 안에 넣는다. 이건 뭐지? 수영은 잠시 놀라 숨을 죽이고 계속 지켜본다. 민은 조그만 입 안에 억지로 구겨넣은 열 손가락을 잘근잘근 깨물기 시작한다. 한 30초쯤 그러다 손을 빼고 다시 인형을 들고 있다. 민은 목구멍에서 ‘음, 음’하는 소리를 낸다. 기침이나 가래낀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아니고, 정말 의미없는 소리를 수시로 내고 있다. 민이 다시 두 손을 든다. 이번에는 세수할 때처럼 두 손바닥을 펴더니 혓바닥으로 쓰윽 핥는다. 또 다시 ‘음, 음’ 소리. 수영은 머리가 갑자기 ‘띵’하며 어지러웠다.
서둘러 준을 눈길로 찾는다. 침대 옆 책상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다. 민과 달리 전학 첫날부터 바로 잘 적응해 수영의 시름을 덜어줬던 큰 아들이다. 역시 준은 집에서도 조용히 책을 보고 있는 모범학생이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수영이 민 때문에 잠시 놀랐던 가슴을 쓸어내리려는데, 준이 갑자기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한다. 시선은 줄곧 책에서 떠나지 않고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데, 마치 화장실이 급한데 억지로 참고 있는 사람처럼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잠시 일어나는 걸 멈추고 앉아 있을 때는 책상 밑에서 다리를 심하게 떨고 있다.
수영은 아이들을 결국 부르지 못하고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받은 충격이 컸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지? 설마 전에도 그랬는데 모르고 있던 걸까? 진환과 이야기해 봐야겠단 생각에 진환을 찾았다.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있는 진환.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다리를 떨고 있다.
“여보! 보기 흉하게 왜 다리를 떨고 그래?"
“내가 언제?"
어이 없다는 듯이 수영을 바라보는 진환. 눈을 쉴 새 없이 깜빡인다.
“당신까지 정말 왜 그래?"
수영은 마지막 방어선이 붕괴된 것처럼 침대에 주저 앉아 울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는 진환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멍하니 수영을 바라보고만 있다.
갑자기 수영은 가족 모두가 낯설게 느껴졌다. 정말 그동안 계속 그랬는데 몰랐던 걸까? 그후 수영은 아무 말 없이 가족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민은 여전히 가만히 혼자 있을 때 ‘음, 음’하는 소리를 냈다. 자려고 누워 있을 때도 의미 없는 ‘음, 음’ 소리가 나곤 했다. 손가락들을 입에 넣고 잘근잘근 깨물고, 손바닥을 자주 핥았다. 그리고 가끔은 옷 소매를 잡아 당겨 입에 넣고 빨기도 했다.
준은 여전히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수시로 다리를 떨고, 화장실 급한 사람처럼 안절부절 못하며 몸을 비틀었다. 특히 숙제로 문장을 외우거나 할 때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심하게 몸을 움직였다.
진환은 눈을 쉴 새 없이 깜빡였고, 가끔 긴장할 때는 코를 찡긋거리기도 했다.
목적 없는 괴상한 동작을 갑작스럽게 반복하는 가족들. 그 사이에서 수영은 외롭고 두려웠다. 그리고 막막했다.
저녁 식사 시간. 재잘거리는 아이들 소리에 대꾸도 없이 조용히 밥을 먹고 있던 수영에게 진환이 갑자기 말을 건다.
“손 좀 그만 물어 뜯어. 밥 먹는 시간까지 그래야겠어?"
화들짝 놀란 수영이 진환을 바라본다. 하지만 영문을 모르는 표정이다. 진환이 수영의 두 손을 잡더니 수영의 눈 앞으로 들이댄다.
“이거 봐. 하도 물어 뜯어서 여긴 피도 나잖아."
그제야 자기 손가락을 들여다 보는 수영. 손톱 옆의 굳은 살들을 언제 그렇게 물어뜯었는지 살점이 떨어져 피가 나는 곳들도 있다.
“그 동안 괜찮아지겠지 하고 일부러 말 안 했는데…” 진환이 잠시 뜸을 들인다. “당신 수시로 어깨를 으쓱하는 거 알고 있어?"
깜짝 놀란 수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거 봐, 지금도 그러잖아. 점점 빈도가 높아지더니 요즘엔 1분에도 몇 번씩 그래. 좀 심각한 것 같아."
어두운 표정으로 수영을 바라보는 진환. 갑자기 조용히 앉아 이상하다는 듯 수영을 바라보는 준과 민.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못하고 앉아 있던 수영이 손톱 주위를 다시 물어뜯기 시작한다.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자 마자, 물어뜯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엄습했다. 진환이 수영의 두 손을 잡아 내린다.
“여보, 애들도 보는데 빨리 고쳐야지."
수영의 가슴 속에서 울컥하며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그 뜨거운 기운을 참고 붙들고 있으려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씨발, 이 개 같은 #@%&*@$^&**@$%^"
틱, 틱틱, 틱틱틱, 틱틱틱틱...
목구멍까지 차오른 뜨거운 것들이 무섭게 쏟아져 나왔다.
오랜만에 맑고 따뜻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