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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Mar 08. 2021

그녀의 얼굴에 똥칠을 했다 (1)

빼앗긴 순간

(이 매거진 내 모든 글은 '손바닥만 한 소설' 즉 콩트입니다. 실화가 아닌 허구입니다.)


“엄마, 나 왔어.”

어찌 된 일인지 방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엄마, 자?”

경란이 방문을 조심스레 열자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순간 경란은 얼굴을 찌푸리며 잠시 고개를 돌렸다. 눈이 휘둥그레진 경란은 방 안을 둘러보다 들고 있던 가방을 방 밖으로 집어던지며 소리친다.

“엄마! 내가 못 살아 정말. 엄마, 진짜 미쳤어?”

엄마가 바닥에 똥을 싸 놓고는 손으로 떡 주무르듯 주물러 벽이며 옷이며 온방에 똥으로 칠갑을 해 놓은 것이다. 경란이 한 손으로 코를 막고 창문과 문을 활짝 연다. 창문으로 들어온 싸늘한 바람에 온몸이 부르르 떨린다. 후다닥 튀어나간 엄마가 계단을 뛰어내려 간다. 경란이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 얼른 뒤따라 1층 거실로 뛰어내려 갔다.


“어때, 이쁘지?”

뭔가 뿌듯한 일을 마치고 부모의 칭찬을 기다리는 아이의 표정으로 서 있는 엄마. 경란은 그 뒤에 걸린 그림을 보고는 참지 못해 웃음을 터뜨렸다. 거실 벽에 떡하니 걸려 있던 그림은 여인의 초상화. 어딘가에 무연한 눈길을 보내고 있는 그림 속 여인은 얼굴 선이 곱고 눈매가 부드럽다. 언젠가 하루는 경란이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을 그림 속 여인의 작고 불그레한 입술에 가져다 대고 화들짝 놀란 적도 있다. 치, 그림일 뿐이야, 하며 인정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그래도 아름답다. 그리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 누군가를 닮았다. 그런데 방금 엄마가 그 얼굴에 똥칠을 한 것이다. 누구보다 화를 내야 하는데, 경란은 똥칠 한 여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웃어보는 그런 시원한 웃음이었다. 


“잘했어! 엄마 진짜 그림 잘 그리네.”

늘 짜증만 내던 경란이 웃으며 칭찬하자, 경란의 엄마도 어리둥절한지 눈만 꿈벅꿈벅한다. 

“엄마가 최근에 한 일 중에 젤 잘했어.”

경란이 엄지 손가락을 세워 보이자 엄마는 그제야 히죽히죽 웃는다. 


엄마를 욕실로 데려가 옷을 벗기고 몸에 비누질을 해서 씻기는 내내 경란은 그림에 대해 생각했다. 똥칠된 여인의 얼굴을 보고 놀라 그림 앞으로 뛰어갈 성호의 모습, 불 같이 화를 낼 성호의 모습을 그려 본다. 남편은 허겁지겁 자기 손에 똥을 묻혀서라도 그림 속 여인의 더럽혀진 얼굴을 닦아주려 할까? 결혼 후 자기 손으로 걸레질 한 번 한 적 없고, 양말 한 켤레 빨아본 적 없는 성호가 과연 그 그림에 묻은 똥을 스스로 닦을 것인지 경란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엄마 몽뚱이에 비누질을 여러 번 다시 하고, 똥 묻은 옷을 애벌빨래해 세탁기에 집어넣고, 고무장갑을 끼고 엄마 방에 묻어 있는 더러운 똥을 걸레로 닦아내는 그 모든 과정을 정성 들여 천천히 했다.


“지나가다 갤러리에서 한 점 사 왔어.”


2주 전쯤 성호가 거실 한쪽에 여인의 초상화를 걸었다. 그때 경란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지금이 한가하게 갤러리나 돌아다닐 때냐고, 더구나 돈 한 푼 벌어오지 않으면서 그림 같을 걸 덜컥 사들고 들어오는 게 말이 되냐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나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얘기를 꺼낼 수도 있었고, 저 그림 속 여자가 누구냐고, 아내로서의 질투를 담아 찔러볼 수도 있었겠으나 경란은 입을 다물었다. 

그림 속 여인이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경란의 눈에도 눈물이 고일만큼…….


**


경란의 손이 와들와들 떨려 글씨가 자꾸 삐뚤빼뚤해진다. 이마와 등에서 자꾸 식은땀이 흐른다. 


‘진희는 걸레. 학교에서 남자 선생들과 그렇고 그런 짓을 한다.’


‘미술 선생’이라 썼다가 경란은 ‘미술’이란 글자를 매직으로 덧칠해 지웠다. 화장실 문을 빼꼼히 열고 밖을 두리번거리던 경란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화장실 밖으로 튀어나와 쏜살같이 달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달렸다. 심장이 뛰는 소리에 세상이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고, 이미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이불을 여러 겹 덮었는데도 떨리는 몸이 진정되지 않았다. 경란은 이불속에서 자기 머리카락을 쥐어뜯기도 했는데, 실제로 머리카락이 몇 움큼 빠졌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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