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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Feb 04. 2021

자학하지 마요. 당신이 자학할 때 마음이 아파요.

'자살대교' 위에서 만난 청년

(이 매거진 내 모든 글은 '손바닥만 한 소설' 즉 콩트입니다.)


'밥은 먹었어?' 

'잘 지내지?' 

'세월 참 빠르다' 


못 먹었다, 네 눈엔 이게 잘 지내는 걸로 보이냐? 너한텐 빨리 흘러간 세월이었겠지, 난 하루가 천년 같다. '자살대교'라고 불리던 이 다리에 잔뜩 써 놓은 글씨 때문에 속에서 불이 난다. 


'아무튼, 다 그런 거지 뭐.' 


유일한 희망이던 하나밖에 없는 자식새끼가 10년도 못 살고 뒈졌는데, 다 그런 거냐, 이게? 


'자살대교'라는 이름의 '마포대교'


아이가 옥상에서 몸을 던진 지 열흘이 지났다. 깜둥이라고 따돌림을 받으며 외톨이로 지냈던 딸. 내 피부를 더 닮아 별 탈 없이 커줄 수 있을 거라 내심 기대했는데, 아빠가 흑인이라는 소문이 났던 모양이다. 곁에 있지도 않은 애 아빠 따위가 왜 소문으로 남아 아이를 괴롭히는지… 아이 얘길 들을 때마다 열불이 났지만, 다 내 죄다.  


2주 전쯤 아이가 꼬물거리는 강아지를 집에 데려 왔다. 길거리에서 파는 병든 강아지는 비틀거리는 꼬락서니가 며칠 가지 못할 것 같았다. 웬 강아지냐고 화를 내며 물었다.  

"'잡종'이라고 놀려서…" 

갖다 버리라고 소리를 지르려던 참이었는데, 아이의 말을 듣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강아지가 꼭 내 아이 같다.  

"엄마는 일 하느라 바빠서 돌볼 틈이 없으니, 그럼 네가 잘 돌봐야 해." 

단단히 주의를 주는 걸로 그냥 눈감아 주기로 했다. 


아이는 한 이틀 정성 들여 우유를 먹이고, 손톱만큼 싸놓은 오줌, 똥을 휴지로 닦으며 강아지를 정성스레 돌봤다. 갓 들어간 학교 생활이 여전히 고달팠을 테지만, 그런대로 잘 이겨내는 듯 보였다.  


문제는 남편이 갑자기 들이닥친 밤이었다. 사나흘씩 사라졌다가 예고 없이 불쑥 나타나 술 취한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남편. 제 새끼도 아닌 딸을 아껴준다 싶어 함께 살기로 했던 건데, 모든 게 나의 착각이었다. 맨 정신일 때는 딸아이에게 아이스크림도 가끔 사주고 품에 안고 얼러주기도 하는데, 술만 취하면 '드러운 깜둥이 새끼' 하며 아이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때마다 나는 그 우악스러운 손아귀에서 아이를 빼내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했고, 온몸에 멍이 들도록 맞고 나야 고요가 찾아왔다. 그런 남편이 그날 밤, 낑낑 거리는 강아지를 가만 둘 리 없었다. 강아지를 안고 울고 있는 딸아이의 따귀를 세차게 갈기자, 딸아이가 나동그라지며 강아지를 놓쳤다. 그 사이 남편은 강아지를 집어 있는 힘껏 바닥에 내동댕이쳤고, 강아지는 '깩' 소리마저 처량하게 배터리 다 닳은 고물 장난감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아이는 실성한 사람처럼 '꺅꺅' 소리를 지르다 결국 기가 넘어가듯 자리에 쓰러졌다. 아이의 볼을 때리고 찬물을 머리에 끼얹자 겨우 정신을 차린 아이는 눈동자의 초점을 잃었다. 다음날 일도 나가지 못하고 하루 종일 아이 옆에 있었다. 아이는 먹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고 공허한 눈으로 허공만 응시하고 앉아 있다. 그다음 날마저 일을 쉰다면, 입에 풀칠조차 할 수 없는 처지라, 그런 아이를 놓고 일을 나갔다. 


그날 아이는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난 아이가 몸을 던져 죽었다는 사실 보다… 그 어린것이 죽기 위해, 그 높은 곳을 찾기 위해, 하루 종일 먹지도 못한 몸으로 반 시간 이상을 걸어 남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를 찾아갔다는 사실이 더 서러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편하게 올라가 쉽게 떨어져 죽을 수도 있는 그런 아파트에는 평생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하고 그렇게 갔다는 게 더 서러웠다.  


속에서 열불이 났다. 이제 다리에 써 놓은 글씨 따위 읽지 않기로 한다. 그건 그들만의 희망인 거다. 쓰레기 같고, 걸레 같고, 다 짓뭉개진 내 인생에 희망 따위는 없다. 


물 한 모금만 주세요. 


시퍼런 강물을 한참 응시하고 있을 때다. 어느 순간 강물에 시선이 빨려 들어가듯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조차 까맣게 잊고 있을 때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보니 앳되어 보이는 청년이 서 있다. 흰색 셔츠에 오래 입어 길이 잘 든 청바지 차림의 청년은 얼굴이 참 맑다. 욕이라도 실컷 퍼부을까 싶어 고개를 들었는데,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알지도 못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젊은 청년의 시선과 마주쳤는데, 왜 가슴이 울컥하는 걸까?  마치 '내가 다 알고 있으니, 실컷 울어도 돼.' 하고 어르는 것 같다.  


"넌 내 꼴이 안 보여? 내 몸 다 뒤져 봐, 물 한 병 사 먹을 동전이라도 나오나."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고, 선한 눈매의 청년에게 애꿎은 화풀이를 해댄다.  

나한테 달라고 했으면 내가 줬을 거예요. 그럼 지금처럼 목마르지도 않았을 거고… 

아무 동요도 없는 평온한 목소리였다.  

"아까는 나한테 물 달라더니… 지가 무슨 물을 준다는 거야?" 

여전히 꼬여 있었지만, 아까보다는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다. 저 시퍼렇고 차가운 물에 몸을 던지기 전에 그래도 누군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듯했다. 가는 길이 외롭진 않겠다 싶고. 

내가 주는 물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텐데…

가슴이 사르르 녹을 만큼 부드러운 목소리다. 언제 누가 내게 이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넨 적이 있던가, 아무리 기억해 보려 해도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바짝바짝 말라 다 갈라진 논바닥 같던 내 맘에 단비가 스며든다. 나 보다 어릴, 이 청년 앞에 이대로 가슴이 무너져 내려도 좋을 것 같다는 어이없는 생각마저 스친다. 

"그런 물 있음 줘 봐. 밥 버느라 더 이상 몸 망가지지 않게… 그냥 그 물만 마시고 살란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많이 누그러져, 청년에게 내 신산한 삶을 한탄하고 있다. 말하고 나서 어이없다고 여기면서도, 어차피 마지막인 걸,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심정이었다. 

남편도 마셔야 해요, 같이 와요. 

"남편 같은 거 없어!" 

남편이란 말에 지난 며칠 간의 일들이 머릿속을 휙 훑고 지나간다. 방금까지 누그러졌던 가슴에 다시 불이 일었다. 

알아요. 다섯 명의 남자가 있었죠. 지금 그 사람도 남편은 아니고… 

주문에라도 걸린 듯 다섯 명의 남자가 또렷이 떠 올랐다.  


열여섯 살. 평소 좋아하던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숙직실에 따라 들어갔다가 가슴을 더듬으며 교복 단추를 풀려는 손길에 놀라 있는 힘껏 걷어차고 뛰쳐나왔다. 그날 이후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고, 식당과 커피숍 등을 전전하며 일을 했다. 


부모동의서 없이 미성년자가 취업하는 건 불법이라 감옥에 가야 한다고 협박하는 사장이 무서워 찍 소리도 못 내고 순결을 내주었다. 사장이 한 일을 알고 그 밑에 일하던 놈까지 내게 몸을 요구했다. 


스물두 살, 단 한 번 사랑이 있었다. 가슴 설레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랑. 두 사람의 사랑이 무르익자, 그는 내게 잠자리를 요구했고, 사랑하는 이에게는 진실을 얘기해야 할 것 같아, 그 자리에서 나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어쩐지 얼굴이 굳어져가던 그는 갑자기 거칠게 내 옷을 벗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정을 하더니,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더러운 년." 


더 이상 사랑 따위 하지 않겠다고 맘먹고 직장과 집만 왔다 갔다 하며 몇 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사료 공장, 제지 공장을 떠돌며 일하는 흑인 노동자. 어눌한 한국말로 사랑을 고백하는데, 난 어느 누구와도 다시 엮이고 싶지 않아 거절했다. 

"내가 깜둥이라서 싫어요?" 

한국 사람들 깜둥이란 이유로 공장에서 일할 때도 수시로 폭행하고, 사장이 임금 체불하는 일도 다반사라고, 전철이나 버스에도 자기 옆은 더럽다고 아무도 안 앉으니 서서 간다고 한숨 쉬며 얘기하는 그에게서 내 모습을 보았다.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동거 생활에서 딸아이를 얻었고, 딸아이가 두 돌이 되기 전에 그는 일 하다 사고로 죽고 말았다. 불법체류자라 해도 산재 보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해서 알아보았지만, 유사 휘발유 제조를 하는 불법 회사였기에 보험금 한 푼 받지 못했다.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살 길이 막막했을 때, 손을 내민 사람이 바로 지금의 남편, 아니 그나마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으니, 남편은 아니다. 


"자학하지 마요. 당신이 자학하고 있을 때 마음이 아파요." 
 



난 청년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전히 맑고 고요하며 깊은 눈이다. 마치 그 모든 순간에 함께 있었다는 듯 말하는 청년의 말에 갑자기 다리가 풀리며 눈물이 쏟아졌다. '자학'이라니… 내게 그렇게 말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럽고 불결하다고 침 뱉거나 피했을 뿐. 내가 자학하며 더 깊은 수렁으로 삶을 몰아넣은 거라는 걸 알아봐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학'이란 그 한 마디에 꽉 차 있던 물꼬가 트인 듯 설움에 북받친 눈물이 쏟아졌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청년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고 또 울었다. 그 청년은 가만히 두 팔로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한참을 울고 또 우는데,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꼈다. 나 혼자인 듯 외롭고 무서웠던 지난 삶의 순간순간마다 혼자가 아니었단 생각이 갑자기 스쳤다. 누군가 내가 자학하는 걸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고, 그 순간 분명 함께 울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고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갑자기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되었다. 그냥 그거 하나면 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타는 듯하던 갈증이 가시고 가슴속이 시원해진다.  

'이건 가요?'  

소리 내어 묻지 않았지만, 부드럽게 날 응시하는 그의 눈동자는  

'그렇다' 

고 말한다. 


난 '자살 대교'가 변해 '생명의 다리'가 된 그곳에서, 그렇게 그를 만났다.    



* (요한복음 4:7-30)을 소설 형식을 빌어 재구성해 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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