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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평리이평온 Sep 23. 2022

2-10. 몽케지 말앙 한저 다르라

불타버린 마흔 중년의 제주섬 치유기

10. 몽케지 말앙 한저 다르라          



제주에 온 후 나의 일상에 아이들의 학교가 들어왔다. 육지에서는 아이들 학교 운동장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빤히 보이는 학세권에 살았음에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아이들 대소사를 오롯이 아내에게 맡겼었다. 시간과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나들이를 겸해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등하교를 함께 했다. 학교로 가는 길은 십분도 걸리지 않는 짧은 길이었지만,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걷는 등하교길이 흥이 나는 모양이었다. 팔을 앞뒤로 씩씩하게 흔들며 뛰고 걷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힘이 솟았다. 등하교길에서 다른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자연스레 마주치며 친해졌다. 온평리의 작은 학교에는 60명도 되지 않는 아이들이 있었다. 우리처럼 다자녀로 구성된 가정이 많아 가구수로 치면 20~30가정 내외였고 온평리 원주민과 새로 육지에서 온 입도민의 비율이 반반 정도 되었다.     


7월의 어느 날, 학교는 금요일 저녁부터 1박2일간 열리는 열운이 가족캠프를 운동장에서 열었다. 전교생이 모여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포트락 파티로 캠프를 시작했다. 이튿날까지 아이들은 학교 곳곳을 누비며 여러 미션을 수행했고 운동장에 모여서는 명랑운동회를 열었다. 부모들은 삼삼오오 모여 신변잡기부터 자기네 살아온 인생스토리까지 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입도한지 얼마 안 된 신참내기였기에 우리 부부는 주로 듣고 궁금한 것을 묻는 시간이었다. 삼사십년 짧은 인생인데도, 이웃들은 어쩜 이리 파란만장한 사연들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네들의 제주살이 역시 우여곡절로 가득한지, 밤이 깊이 무르익는지도 모르고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우리 가족의 제주살이는 어떤 모양으로 흘러갈까? 한편으로는 살짝 걱정도 되었지만 기대감이 샘솟았고 먼저 입도하여 누구나 겪을 어려움을 먼저 견뎌낸 이웃들의 삶의 흔적을 좇을 수 있었기에 무척이나 유익한 시간이었다.  

   

전학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 이름을 다 알았고 누가 형제고 자매인지, 어디에 사는지를 빤히 알게 되었다. 인원이 작으니 재미있게 놀기 위해서는 누구나 어울려 놀아야만 했다. 부모로서 감격스러웠던 건 학교내 모든 선생님들, 하물며 교장선생님까지도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다 기억해주고 만날 때마다 살갑게 인사를 해 준다는 점이었다. 하교길에서 우연찮게 만났는데도, “아버님, 빈이랑 결이가 요망지네요”라고 칭찬해 주었을 때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관심과 사랑 안에서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어 무척 감사했고 안도했다. 남들에게 말은 ‘아이들을 자연 속에서 뛰어놀게 하고 싶어서 제주에 갑니다’라고 했지만, 사실 나름의 생각이 있는 아이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전학이었기에 늘 미안한 마음뿐이었는데, 낯선 환경에서도 아이들은 무럭무럭 잘 자라나는 것 같아 행복하고 기뻤다.



가을이 성큼성큼 다가온 개천절, 학교는 가을운동회(열운이 한마당 큰잔치)를 열었다. 작은 학교의 소박한 운동회였지만 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마을의 어른들도 함께하는 큰 잔칫날이기도 했다. 그래서 시대가 변했어도 여전히 많이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는 공휴일에 운동회를 개최한다고 했다.   

   

육지에 있을 때는 한 번도 함께 하지 못한 아이들 운동회였기에 아빠로서 기대감이 컸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내와 함께 점심에 먹을 김밥을 함께 말았다. 간식거리와 음료도 전날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봐 왔다. 네 살된 막내도 설렜는지 엄마가 깨우지 않았는데도 일찍 일어났다.     


학교 정문에 운동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다. 운동장에는 만국기가 펄럭였고 단상 주위로는 천막이 둘러쳐졌다. 유치원생부터 6학년 아이들까지 모두가 열운이팀과 혼인지팀으로 나눠 열띤 운동회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아이들 수가 많지 않으니, 열리는 종목마다 아이들이 모두 뛰어야 했다. 말 그대로 잘하나 못하나에 상관없이 모든 아이가 쉼 없이 뛰어야 하는 운동회가 열리고 있었다.





“엄마. 이전 학교에서는 달리기 한번 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많아 재미가 없었는데, 여기는 모든 종목에 다 나가니깐 엄청 재미있어!”     


큰아이의 말처럼, ‘바람처럼 번개처럼’ 달린 개인 달리기 종목이 끝나면 정성 들여 준비한 학년별 퍼포먼스가 열렸고 다시 전교생이 줄다리기로 힘을 겨뤘다. 목청 높여 신나게 노래하는 응원전 속에 학부모와 아이들이 릴레이로 달리며 미션을 수행하는 ‘달려라 황금마차’가 진행된 후 마을 어르신들에게 선물을 드리는 ‘대어를 낚아라’라는 이벤트 게임이 이어졌다. 유치원 아이들의 ‘체조하고 춤추자’, 고학년 게임 ‘무한도전 줄넘기 빙고’, 모두가 우산을 들고 춤추며 함께 어우러진 ‘오늘은 좋은 날’, 저학년 아이들이 펼친 ‘007 러닝맨’, 다시 유치원생들의 장애물 탈출 달리기 ‘빨래끝’, 고학년 아이들의 ‘당신은 어디 있나요’ 등등 운동장에서는 끊임없이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달리고 구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 역시 학부모들의 릴레이 달리기인 ‘청춘달리기’에 주자로 뛰게 되었다. 운동에 도통 소질이 없었지만 아이들 앞에서라면 뒤처지는 아빠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전력으로 달렸다. 열정만 앞서 다퉈 달리다가 발이 엉켜 다른 주자가 넘어지는 안타까운 일이 생겼지만 그래도 아이들 앞에서 1등으로 들어올 때 느꼈던 의기양양함이란! 지금까지도 짜릿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몽케지 말앙 한저 다르라(느리게 말고 어서 달려라)’     


마지막으로 운동회의 클라이막스인 전교생 이어달리기가 이어졌다. 유치원 동생부터 시작된 달리기가 6학년 형아 언니들까지 바통이 건네 지며 이어졌다. 10월의 파란 제주 하늘 아래 초록 천연 잔디밭과 황토색 우레탄 트랙 위에서 ‘열운이팀’과 ‘혼인지팀’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전력으로 뜀을 뛰었다. 아이들과 학부모 모두 달리기에 빠져들어 응원과 함성은 높아만 갔다. 특히나 우리 아이들인 결이와 빈이가 뛰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지고 “달려 달려”하며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운동회다운 운동회를 한 느낌이었다. 운동회가 파하고 귀가하자마자 가족 모두가 노곤함에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온평리의 밤이 스르륵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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