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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평리이평온 Sep 22. 2022

2-09. 승드래곤 투어 오픈

불타버린 마흔 중년의 제주섬 치유기

09. 승드래곤 투어 오픈          




9월.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 왔다. 맑은 날이 연이어 계속되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은 고온다습한 제주 한여름에 시들어 늘어졌던 나를 소생시키듯 폐부 깊숙이 시원함을 선사해 주었다. 

     

꽤 많은 가족과 친구들이 제주를 찾아왔다. 잊지 않고 연락을 주어 감사했다. 육지를 떠나 제주에 이주한 선배들 이야기에 따르면 이주민들에게 삼삼법칙이 있다고 했다. 제주에 온지 석 달, 그리고 삼 년 즈음에 다시 육지로 돌아가고픈 향수병 같은 게 찾아 온다는 것이다. 잘 이겨내면 계속 제주에서 사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예전 살던 곳으로 돌아간단다. 우리 가족이 입도한지 석 달, 딱 외로울 타이밍이었는데, 우리를 찾는 손님들 덕분에 향수병을 앓지 않았다.      


작은 시골집이었지만 가족들은 집으로 초대해 같이 먹고 같이 잤다. 친구들은 근처 호텔에 머물도록 하고 하루라도 일정을 함께 했다. 입도한지 오랜 시간이 지나 제주가 삶의 터전이 된 지금은 많은 돈을 준다 하더라도 못할 일이지만, 그때는 손님을 맞이하고 함께 여행하는 것이 좋았다.     


“제주 어디를 가면 좋을까요? 뭐가 맛있어요?”를 묻는 반가운 사람들에게 “승드래곤 투어”를 추천했다.


“제가 가이드 겸 사진기사로 동행할께요. 우리와 함께 여행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입도 석 달 된 햇병아리가 제주를 얼마나 안다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는지 부끄럽지만, 그때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아는 제주의 비경과 맛집들을 자랑할 수 있다는 게 무척이나 뿌듯한 일이었다. 더해서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곱게 사진으로 담아줄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했다.     



먼저 장모님과 처남 가족이 왔다. 아내의 절친 가족도 왔다. 큰누나 가족도 다녀갔다. 교회에서 함께 교사생활을 했던 박쌤 모녀도 다녀갔다. 친했던 회사 후배도 초대했다. 아이들 유치원 친구 엄마들이 아이들과 함께 제주를 찾아 아이들이 같이 어울려 놀기도 했다. 제주에 와서 우리를 잊지 않고 연락을 해주었다. 공항에 나가 비행기를 타고 오는 지인들을 기다릴 때는 마치 내가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마음이 설렜다.




왜 이리 제주 곳곳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새벽부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는 했다. 새벽 일어나 광치기 해변에서 성산일출봉 위로 솟는 일출을 본 후, 지미오름을 올라 올망졸망 보이는 종달리와 우도를 품은 동쪽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침을 먹고 두모악 갤러리나 자연사랑 미술관에서 김영갑과 서재철의 제주 사진들을 소개했고 표선의 제주민속촌도 볼 만 했다. 가시리 나목도식당이나 세화리 한아름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따라비오름을 올랐다. 남원과 위미로 내려가 한반도 지형 올레길을 걷고 영화 건축학개론의 배경이었던 서연의 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등산을 좋아하는 분들과는 한라산에 갔다. 다들 마음속 하켠에 한라산 정상에 오르고 싶은 욕구들이 있어 힘든 표정 없이 씩씩하게 올랐다. 귀가하는 길에 원앙폭포에서 발을 담근 채 잠시 쉬면 하루 걸은 피로가 싹 씻기곤 했다. 






비가 오면 우의를 입고 사려니숲길을 걸었다. 




때로는 서귀포를 지나 산방산이 있는 대정읍까지 가기도 했다. 폭포투어로 정방폭포와 천지연폭포, 천제연폭포를 거쳐 갯깍 주상절리와 동굴을 다녀왔다. 차로 올라갈 수 있는 군산 정상에서 시원한 전망에 탄성을 질렀다. 사계해변과 송악산 둘레길에서 제주의 가을을 만끽했다.     




일이 바빠서 여름휴가도 못 갔다는 회사 후배가 단 하루 휴가를 내어 제주에 왔다. 하루내 일을 마치고, 밤 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석 달 동안 나는 변했는데, 회사는 여전한 모양이었다. 회사의 인사과장을 맡고 있는 그의 어깨엔 피곤함이 가득 앉아 있었다. 예전 내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난 이 후배보다 일을 처리하는 그릇이 작아서 항상 피곤했었다.     


그에게 휴식이 되고 싶었다. 흑돼지구이가 맛있는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고 한천과 바다가 만나는 용연다리 근처 방파제에 앉아 일렁이는 밤바다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다. 바다는 지치지도 않는지 깊은 심연에서 토해내는 파도더미를 끊임없이 방파제로 몰아 붙였다. 9월의 밤바다가 불어내는 바람은 시원했다. 큰 물고기들이 펄떡펄떡 뛰어올랐다. 중국 단체 관광객이 묵는 저렴한 시내 호텔을 잡아 같이 하룻밤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창가 멀리 이호 테우 바다가 보였다. 후배는 바다를 보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아침을 먹고 쪽빛 바다가 펼쳐진 협재해변에 갔다. 해수욕장이 아닌 부둣가 등대 앞에 걸터앉아 한참이나 바다를 바라보았다. 청아한 바다는 빨갛게 실핏줄이 터진 중년의 시큼한 눈에 생기를 가져다 주었다. 해녀할망들이 하는 식당에서 뿔소라와 멍게 등 해산물을 먹었다. 오후에는 같이 금오름에 올랐다. 바닷바람만큼 시원한 오름의 바람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굼부리를 한 바퀴 돌며 멀리 한라산부터 서쪽 바다까지 파노라마 사진을 찍었다. 후배의 핸드폰에는 한라산과 제주의 넓은 들이 여러 장의 사진으로 뭉게뭉게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애월 한담해변의 봄날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후배와는 회사에서 커피 친구였다. 일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눈 신호를 보내서 종이컵 두 개와 맥심 봉지 커피 두 개를 챙겨 회사 옥상에 가곤 했다. 달콤쌉싸름한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며 회사와 상사의 뒷담화로 스트레스를 풀고는 했다. 이제는 함께 카페에 앉아 해가 뉘엿 기울어 애월의 비취빛 바다를 은빛으로 물들이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여러 상념들이 스쳐갔다. 휴직 후는 어찌할지, 다시 육지로 올라가 복직해야 할지 아니면 회사를 관두고 제주에서 새로운 일을 시직해야 할지, 어떤 삶을 살아야 행복할지.....      


마음은 복잡했지만 그래도 이날의 오후는 그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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