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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여행하는 12가지 방법

5. 섬 속의 섬여행

by 온평리이평온
비양도가 보이는 협재해변 1.jpg


한라산이 여러 오름을 거느리듯 제주도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섬이라 올망졸망한 작은 섬을 여럿 품고 있다. 성산 일출봉 너머에는 소가 누운 듯 우도가 황금빛 게으른 하품을 하고 있고, 서귀포 앞 태평양에는 지귀도, 섶섬, 문섬, 범섬 같은 무인도들이 푸른 바다 위로 보석처럼 점점이 뿌려져 있다. 바람 많은 모슬포 아래로는 일출이 예쁜 형제섬과 싱그러운 보리밭이 장관인 가파도, 최남단 마라도가 제주 부속 섬의 정점을 이룬다. 서쪽 자구내 포구 앞에는 와도를 비롯한 차귀도가, 비췻빛 협재 바다 위로는 마치 소설 어린 왕자에 묘사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모양의 비양도가 제주의 바다를 다채롭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뭍의 남해와 제주도 사이 그리움이 깃든 바다 위로 낚시꾼들이 찾는 작은 섬 관탈도와 추자군도가 푸른 파다 위로 오롯이 솟구쳐 있다.


큰 섬 제주도의 여러 곳을 여행해 봤다면, ‘섬 속의 작은 섬’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떠할지! 제주에서 맞이할 수 있는 특별한 여행을 떠나 보자. 이 글에서는 제주의 부속 섬 중에서 매력이 톡톡 터지는 인적 드문 작은 섬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가파도 마을.JPG


▢ 추자도

큰 섬에 살지만 작은 섬이 그리울 때가 있다. 배지근한 제주 음식에 입맛이 길들어 졌지만 알싸한 남도의 음식이 당길 때가 있다. 바다를 늘 바라보지만 큰 바다를 건너고 싶을 때가 있다. 하루 내내 걷다가 낯선 섬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제주에서는 추자도에 간다. 쾌속선으로 한 시간이면 제주항에서 추자항 부두에 접안 할 수 있지만, 육지에서도 마찬가지라 제주보다는 뭍의 자연과 풍습이 자연스레 배어 있는 섬이다. 면사무소와 학교, 가게들이 밀집한 상추자도와 더 큰 섬 하추자도가 연륙교로 이어져 있는 추자도는 ‘조기’와 ‘나바론 해안길’, ‘낚시의 성지’로 유명하다. 영화 ‘나바론 요새’에서 이름을 따온 나바론 절벽은 오금이 짜릿하게 당길 정도로 바다 위에 아찔하게 솟아있다. 수직으로 깎아 올린 암벽을 바투 오르는 스릴감과 정상에서 다다르면 펼쳐지는 파란 남해가 선사하는 평안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해안길을 걷고 나면 추자도가 자랑하는 조기 백반을 먹는다. 기후변화로 인해 ‘영광굴비’로 유명하던 황금 조기는 이제 추자도 근해에서 많이 잡혀 이 섬의 대표 산물이 되었다. 드센 파도가 치는데도 갯바위에서 쉼 없이 챔질을 하는 강태공 역시 많은 이 섬은 볼거리, 먹거리가 많아 소개하고 싶은 게 많지만, 특별히 ‘정난주와 아들 황경한’이 이별한 땅으로 기억하고 있다. 약관의 나이에 장원급제했던 황사영이 ‘백서’ 사건으로 능지처참을 당했던 조선 후기 신유박해 때, 그의 아내이자 다산 정약용의 조카였던 정난주는 ‘관비’로 신분이 격하되어 제주도로 귀양 보내진다. 그리고 귀양길 중 잠시 정박한 추자도에 갓 난 아들 황경한과 눈물의 이별을 하고 만다. 평생을 관노비로 살면서도 이웃들을 자상하게 품어 ‘서울 할머니’로 칭송이 자자했다던 정난주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생이별을 했던 황경한의 인생은 얼마나 기구했을까? 질곡의 삶에서 인동초를 피워 올렸던, 그래서 후대에 이르러 순교자로 추앙된 모자의 삶을 추자도 예초리 바닷가에 세워진 ‘눈물의 십자가’를 통해 바라보면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통찰이 바다의 짙은 쪽빛이 되어 가슴 한편에 진하게 배어 나오는 것 같다.


추자도 짙은 바다.jpg
추자도 예초리 십자가.jpg



▢ 차귀도

제주 서쪽 자구내 포구. 바다 넘어 이국적으로 솟은 와도와 차귀도를 배경으로 포구에는 한치가 줄에 걸린 채로 먹기 좋게 해풍에 마르고 있다. 생이기정길을 걷는 올레꾼도, ‘하허호’ 번호판을 단 렌터카를 타고 제주를 한 바퀴 도는 여행자들도 포구에 멈춰 담백하게 구운 마른 한치를 씹고 나면 차귀도를 배경으로 사진 한 컷을 찍고 이내 사라진다. 문득 한때 사람이 살았지만 지금은 무인도로 남겨진 차귀도의 속내가 궁금해진다. 걸어보고 싶다. 다행히 차귀도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유람선이 포구에서 차귀도까지 주기적으로 다니고 있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차귀도는 지층이 비틀려 누웠다가 우뚝 솟았고 그래서 낭애가 생겨났고 야트막한 언덕이 있다. 십 분 정도 유람선을 타고 차귀도에 다다르면 한 시간 반 정도 섬을 걸을 수 있는 자유시간을 얻은 관광객들이 우르르 배에서 내린다. 그들이 섬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선착장 한쪽 바위에 걸터앉아 주위를 조망한다. 조용히 혼자 섬에 들어서니, 조릿대가 반겨준다. 예로부터 제주에서는 사람 사는 동네마다 조릿대를 심었다. 조릿대는 생필품을 엮어 만드는 소중한 도구였기에 조릿대가 무성하다면 사람이 살았다는 말과 등치가 된다는데, 역시 지금은 인적 끊긴 무인도지만 예전에 주민들이 살았던 집터가 포구 위 언덕에 자리를 잡고 있다. 집터와 부서진 돌집이 사그라지며 흔적을 남겼다. 상흔처럼 마음에도 묘한 감정이 흐른다. 뜻밖에도 섬은 야트막한 평원을 품고 있다. 억새가 지천이다. 차귀도에 흐르는 제주의 바람 역시 만만치 않아 억새는 바람보다 먼저 눕다가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늦가을이 되면 억새는 하얗게 태워 섬 전체를 노랗게 물들이겠지!. 하늘도 파랗고 바다도 푸르다. 원색의 세상이다. 등대를 향해 난 오솔길을 걷는다. 오솔길에 구속되지 않은 자유가 둥둥 떠다닌다. 무인도의 한낮 한때다.


차귀도 풍경.jpg
차귀도 등대 능선길.jpg



▢ 비양도

“나는 해넘이가 너무 좋아. 지금 해넘이를 보러 가요(생떽쥐페리의 어린왕자 중)”.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같은 모양의 비양도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넘이를 금능해변 한편에 앉아 바라본다. 비췻빛 바다와 어울리는 섬, 빨갛게 타오르는 저녁놀과 어울리는 섬. 제주의 풍경을 빛나게 해 주는 섬이 바로 비양도다. 비양도를 천년의 섬이라 부른다. 옛 문헌에 천 년 전 생겨났다고 해서 이렇게 부르는데, 지질학적으로는 옳지 않다고 한다. 한림항에서 도항선을 타고 비양도에 다다른다. 걸어서 오름을 오르고 해안도로를 한 바퀴 돌아보니 두 시간 정도 걸렸다. 몇 가구 살지 않는 작은 섬이지만, 방목 중인 염소 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햇빛 쪼개져 부서지는 은빛 바다 넘어 붕붕 잘도 돌아가는 신창 해안 풍력발전기와 장엄하게 솟은 한라산, 지척에 누운 금오름이 멋진 풍광을 자아내고 있다. 늘 제주섬에서 비양도를 바라보다가 비양도에서 제주섬을 바라보니 색다른 맛이 풍겨난다. 햇볕은 따가울 정도로 따사로운데, 바다는 햇살을 잘게 잘게 쪼개어 하늘을 더 푸르게 비춰주고 있다. 오름 정상에는 고풍스러운 하얀 등대가 우뚝 서 있다. 아마 매일 찾아오는 까만 밤마다 칠흑 같은 바다에 한줄기 이정표가 되어 줄 것이다. 높낮이가 심한 굼부리를 돌아 다시 포구로 돌아온다. 포구에서 자전거를 빌려 해안도로를 돌아본다. 코끼리 바위가 있고, 굴뚝 모양의 호니토가 바닷가에 우뚝우뚝 솟아있다. 젊은 섬이어서 그런가! 제주 본섬보다 돌은 더 검고 바다는 더 비췻빛이다. 마음에 담을 만큼 색이 짙다. 짙은 색은 오래 여운으로 남는다. 마치 어른이 되어 읽었던 ‘어린 왕자’가 어릴 적 읽었던 때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처럼.


비양도 오름 능선.jpg
비양도가 보이는 협재해변 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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