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제주에서의 가만한 하루. 내창과 폭포의 언저리에 앉다
살다 보면 세상 모든 게 가시가 되어 나를 옥죄는 순간이 있다.
옴짝달싹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숨도 쉬지 못할 만큼 막막한 심연의 바닥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만 같은 그런 도시에서의 순간.
어떻게든 얽어맨 밧줄을 풀어내야 한다.
상처받지 않겠다고 마음에 철벽을 둘러보지만, 생채기 난 마음을 보듬는 일은 여전히 아리기만 하다.
이럴 때면 차라리 ‘바롱바롱’ 삶의 틈새를 내어보면 어떨지.
사납게 틈입하는 바람을 누그러뜨리고, 감정의 범람을 막아주는 마음속 ‘고망’을 만들어 주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가만한 하루를 제주에서 보내는 것.
가만한 틈을 찾기 위해 제주에 왔지만, 제주 역시 부산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나 보다.
사람은 침묵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각양각색의 웃음꽃이 만개한 시끌벅적한 공항에서 외로운 나는 마치 이방인 같다.
하지만 웃음은 전염되어 내 얼굴에도 미소가 누룩처럼 번진다.
외로움과 미소라는 양가적 감정이라니.
좀체 갈무리할 수 없는 마음을 간직한 채 게이트를 나선다.
여행자는 택시를 기다리는 긴 줄의 꼬리가 되던지, 둔중한 여행용 캐리어의 바퀴를 끌며 렌터카를 찾으러 버스를 탄다.
그리고는 또 다른 벅적거림에 이끌려 바람이 될 것이다.
제주 섬 곳곳으로 여행자들은 스며든다.
물론 이 소란은 돈과 시간을 주고 사는 것이기에 연인 사이 도란도란 밀어처럼 꿀이 떨어지는 것이지만, 외로운 나는, 하지만 행복하기로 작정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냥 둥둥 떠 있고 싶다면, 오늘만큼은 간단없이 유영해야 숨을 쉴 수 있는 푸른 등 고등어가 아니라 깊은 밤 수직으로 몸을 세우고 깊은 잠에 빠져드는 큰 고래가 되고 싶다면, 세상에서 하찮을지라도 존재가 잊히지 않도록 부단하게 몸을 바삐 움직여야 했던 어제의 나와 결별하고서는 아무런 것도 하지 않는 가만한 순간을 부여잡고 싶다면, 나는 외로울지라도 이곳을 찾을 테다.
한라산에서 발원하여 제주 동서남북 곳곳으로 스며든 물줄기가 이루어 낸 흔적.
폭포와 내창 옆 가장자리에 앉아 내 상흔을 고요 속에서 감싸 안을 수 있도록.
▢ 엉또폭포
제주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맑은 물줄기가 낙하하는 3개의 큰 폭포를 찾아갈 수 있다.
수려하고 경치가 굉장한 만큼 여행자가 많이 찾는 정방폭포와 천지연폭포, 천제연폭포가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거 알아? 나이아가라, 이구아수, 빅토리아 폭포와 버금가는 폭포가 제주에 또 있다는 걸?’
누군가의 엉뚱한 흰소리에 피식 웃다가 혹해 엉또폭포를 찾아 나서서 허탕 치길 삼세번, 결국 나는 만났다.
세계 4대 폭포라는 수식어가 허언이 아닌, 우렁차게 쏟아져 내리는 어마어마한 물줄기를, 탁류가 거침없이 쏟아져 내리는 장관을, 낙폭보다 더 높게 솟아오른 물보라 속에 퍼져가는 선명한 무지개를.
용암이 흐르다 성기게 굳은 제주의 ‘내창’은 쉬이 물이 스며들기에 웬만한 폭우가 아니면 늘 메마른 건천으로 남기 일쑤다.
그래서겠지? 일 년에 딱 몇 차례, 한라산에 들이친 잿빛 비구름이 한 뭉텅이의 큰비를 쏟아부어야만 엉또폭포는 비로소 터진다.
‘터졌다’는 표현은 과할까?
아니다.
엉또폭포를 본 사람들은 모두 다 당연하게 폭포가 터졌다가 말한다.
늘 쓸쓸한 풍경으로만 남아있던 절벽 위로 지축을 흔들며 쏟아 내리는 물길을 바라보면 기회를 얻지 못해 침묵하던 맹장이 전장에서 뿜어내는 ‘역발산’의 용맹을 보는 것 같아 복잡미묘한 마음이 밀려온다.
일 년 중 손에 꼽을 정도만 터지는 이 폭포를 전망대에 비스듬히 기대 물보라를 뒤집어쓰며 한참을 바라본다.
신비롭다.
엉또폭포는.
세차게 떨어져서 굉음을 만들어내고 하얀 물안개를 피워 놓더니, 휩쓸어 가서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는다.
사람이 아닌 자연의 소란은 왜 이리 고요라는 여운을 함께 남기는 걸까?
귀청 떨어질 것 같은 요란의 뒤안으로 느닷없이 엄습하는 적요 앞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마음속 어디선가 세미한 제주말이 들려온다.
"내불라게(내버려둬)." 잔걱정으로 눅눅하던 마음이 한결 산뜻해지고, 이 말을 곱씹는 동안에는 나를 옥죄던 시름들이 흐물흐물 사라져간다.
"기영저영 살다보민 다 살아진다. 살다보민 베롱한 날이 온다게."
폭포가 주는 위로다.
촉촉하던 내 눈빛도 ‘베롱베롱’ 빛이 난다.
▢ 무수천
차량이 밀려들어 서쪽으로 산개하는 길목이라 언제나 요란스러운 평화로 아래를 가로지르는 ‘내창’은 고요하다 못해 이상하리만큼 검은 심연처럼 적막하다.
무수천(無愁川).
근심이 사라져버리는 곳.
이곳에는 한라산에서 발원해 바다까지 흐르다 지쳐 고인 물웅덩이가 있고 파이고 닳아 시간 흐름의 상흔이 굽이친 편평한 바위 더미가 무정형으로 놓여 있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내창’으로 내려가는 길에 잡목이 무성하나 용기를 내어 한 걸음씩 찾아들면 제주는 이방인에게도 기꺼이 자신의 은밀한 속내를 내보여 준다.
‘도동도동’ 뜀뛰기를 하며 앉기 좋은 자리를 찾고는 바위 언저리에 앉는다.
굳이 서귀포 깊은 숲에서 연다는 ‘멍때리기 대회’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저절로 멍의 세계로 빠져든다.
상념이 사라지는 순간 ‘내창’은 조용하게 말을 걸어온다.
‘네가 가득 안고 있던, 어깨를 진득하게 누르고 있던 삶의 무게를, 근심의 봇짐을, 그거 짊어지고 있어봤자 쓸데없다고, 벗어 버리라고, 나에게 쏟아내라며’ 든든하고 널찍한 어깨를 기댈 수 있도록 내어준다.
‘내창’ 가장자리에 앉아 두 손만으로 가려질 것 같은 작달막한 하늘에서 손가락 사이로 검날처럼 부서지는 햇빛의 파편에 녹아내리는 오후의 한때, 근심은 저절로 사라진다.
그냥 웃음이 난다.
하하하하! 허허허허! 호호호호! 내가 타고 온 렌터카 번호판 앞자리 웃음소리가 울림이 되고 굴레가 되어 돌아온다.
‘웃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에요!’ 일곱 살 아이가 옅은 밤 아빠 팔베개를 베고 고사리손으로 수염 거뭇한 아빠의 뺨을 쓰다듬으며 해주었던 귀한 충고가 이내 얼굴에 스며든다.
그래! 맞아! 웃어야 사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