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코닥 모멘트, 제주의 바다
코닥 모멘트(Kodak Moment)란 말이 있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최고의 순간을 뜻하는데, 코닥이라는 카메라 필름 브랜드를 알고 있다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표현이다.
제주에 입도한 지 벌써 10년. 외출할 때마다 거의 카메라를 들고 다녔으니, 오가며 많은 사진을 찍었음이 틀림없다.
대기가 맑아서 사물이 쨍한 날.
뭉게구름이 하늘을 수놓은 날.
석양녘 사위가 분홍빛으로 물든 날.
바다에 바람이 들이쳐 파도가 흉용한 날.
풍경이 좋아서 아무렇게나 셔터를 눌러도 작품이 되는 날도 있었지만 흐릿하고 밋밋해서 무미건조한 사진이 찍히던 날이 대다수였다.
그래도 마음이 동하는 대로 습관처럼 카메라를 들어 풍경을 응시하곤 했다.
특별하지 않더라도, 그래서 사진에 별다른 보정을 가하지도 않은 채 컴퓨터 폴더에 담겨만 있던 사진들.
어느 깊은 밤, 잠이 오지 않아서 진한 커피를 내려 홀짝이며 사진으로 담긴 그 순간을 들춰보니 형상은 나직한 울림이 되어 마음 곳곳에 야광주처럼 날아와 박혀 까만 밤을 밝힌다.
한갓진 기억의 한때.
검은 밤에 아롱이는 빛이 곱게 여울진다.
생각해보니, 특별한 순간이 아닌 내 인생의 평범했던 대부분의 순간이 사진으로 남기고픈 ‘코닥 모멘트’였나?
[제주를 여행하는 12가지 방법] 아홉 번째 이야기의 주제는 ‘제주 바당’이다.
제주는 사방이 온통 바다라 특별히 바당만을 사진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빛을 담다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뷰파인더로 응시하다 보면, 바다는 기꺼이 배경으로 다가와 주었다.
바다 사진을 고르려고 사진첩을 뒤적이다 보니 ‘바다 사진이 꽤 많구나’라고 느낀다.
그냥 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진이었을 뿐일 텐데, 깊은 밤 감성 어린 시선으로 이름을 불러주고 의미를 부여하니, 그날의 바다는 화사한 꽃이 되어 내게 새로운 코닥 모멘트가 되어 주었다.
물론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기에 그때의 바다 풍경은 실제로든 비유로든 다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언젠가 같은 자리에 돌아와 앉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가 지나온 시간의 마디마디들이 기쁜 추억으로 저마다의 마음에 옹이가 져 있기를 기대한다.
언제 나는 다시 사진기를 삼각대에 올리고 그 바다를 품에 안게 될까? 다시 이 자리에 설 때, 바다는 어떤 모습으로 파도치고 있을까.
▢ 석양의 바다(삼양해수욕장)
감수성 짙은 산골 소년이었을 때는 늘 망망대해를 꿈꾸었다.
황홀한 석양을 드리우며 수평선 아래로 또렷이 수그러드는 일몰을 보길 원했다.
제주에 와서 소원을 이뤘다.
해가 떠오르는 바다의 동쪽도 좋지만, 올빼미형인 나는 해가 지는 바다의 서쪽이 더 좋았다.
열정적으로 하루를 살게 해주었던 태양은 제 할 일을 다 한 듯 온갖 소란을 끌어안고 저 먼바다로 빠져들고 남은 고요함 속에 나직하게 침잠하는 주변의 분위기에 취해 저절로 안온해지는 기분이란.
게다가 오늘 밝힌 정열의 재를 사뭇 깡그리 태워버리듯 다시 붉게 달아오르는 골든아워를 맞이하고 있자면, 덩달아 달큼한 흥의 여운에 취해 컴컴한 밤의 배후를 배회하게 된다.
‘검은모래 삼양해변’에는 서핑보드 타는 청년들이 바다를 점점이 수놓고 있고, ‘이호해변’에는 붉고 하얀 두 마리의 말 등대가 붉은 바다 위에 더 붉은 점을 찍고 있다.
다려도 아래로 숨을 죽이는 북촌의 일몰은 어떠한가?
창꼼 바위 너머 보이는 동그란 세상으로 바다는 핏빛보다 검붉게 피어오른다.
▢ 바람의 바다(온평리)
태풍이 온다고 했다. 밤새 웅웅대며 창문이 떠는 소리를 듣다가 이른 아침, 슬리퍼를 끌며 해안가를 걸었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온평리 바다 위에서 뛰놀고 있었다. 바다는 거칠게 숨을 쉬었다.
태풍 때문에 고개를 돌리기 어려웠던 나도 발롱대며 숨을 내쉬어야 했다.
그렇게 포구까지 걸어갔다.
다행히 아직 비는 오직 않는다.
카메라를 들어 날뛰는 바다를 찍는다.
먹빛 구름도 하늘에 짙고 낮게 드리웠다.
저 먼 소실점부터 시작된 파도가 끊임없이 뭍으로 몰려왔다.
검은 바위에 세차게 부딪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흔적 없이 사라진다.
사진기의 세팅에 따라 담기는 바다의 질감도 달라졌다.
조리개를 열수록 파도는 쪼개지고 알알이 흩어질 것이다.
감도를 낮추고 조리개를 바짝 조인다면 거친 물살도 포근한 이불처럼 현무암 바위 위를 덮어주겠지?
ND필터를 끼워볼까?
지금 내가 느끼는 바다 이미지를 하얀 인화지에 그려낼 수 있을련지.
바다가 너울대는 여름이었다.
▢ 한낮의 바다(한담해변)
게으른 나의 오후만큼 바다도 게으를 수 있을까?
늘 파도로 넘실대던 바다도 불현듯 늦은 잠을 청하는 때가 있다.
일렁이기만 하던 파도도 잔잔한 자장가 곡조처럼 살랑살랑 흔들거리는 한낮의 바다.
그 위로 햇살은 잘게 부서져 내려 반짝이는 윤슬이 된다.
나는 이 바다가 좋다.
십 년 전 제주에 처음 내려왔을 때 윤슬의 바다를 처음 만났다.
아마 한담해변 어디쯤 작은 카페의 통창 너머로 펼쳐진 바다였을 것이다. 눈이 부셨는데, 쌓였던 피로가 얼굴에 가득했던 그 시절, 윤슬의 반짝임은 꿈 같은 단잠처럼 번져나 ‘와랑와랑’ 넘치는 생기를 불어넣던 것이다.
그때부터 한낮의 바다에 가면 나도 숨을 고르고 해변 한구석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형제섬을 품은 사계리의 바다와 뜨거운 햇볕을 따사롭게 반사하던 추자도의 바다가 코닥 모멘트처럼 떠오른다.
그 바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최고의 휴식이었다.
▢ 고요의 바다(조천리)늘상 바람이 불어오는 바다라도 잠시 숨을 죽일 때가 있다.
그때 바다는 고요해진다.
조천 방파제에서 스러지는 해의 여운을 즐기고 있었을 때, 올레 17코스를 무념무상으로 걷고 있을 때, 서부두 방파제에서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있었을 때, 외도 요트 선착장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을 때, 함덕 서우봉을 느릿느릿 산책하고 내려와 해수욕장에 다다랐을 때, 바다는 특별히 고요했다.
생각해보니 바다가 고요했던 게 아니라, 까무룩 내 마음에 고요가 찾아왔던 것 같다.
마치 달리기에 푹 빠져들어 기계처럼 팔을 흔들고 무릎을 앞으로 내딛는 때처럼 말이다.
단지 바다는 마음을 담은 큰 그릇이었나?
마음이 심란할 때면 느닷없이 찾아올 고요의 때를 기다리며 바다를 찾는다.
일렁이는 바다야!
파도가 쪼개지는 바다야!
내 마음도 잘게 부수고 요동치게 만든 후 다시금 잔잔한 고요를 가져다주렴.
나는 안식이 필요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