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멀리 Oct 30. 2022

여자 둘이 하와이에 온 의미를 말하자면

#10 대단하지 않아서 민망할 정도인데요



하와이 일정은 자유여행이었지만 단어 그대로 온전히 자유롭게 다니는 여행은 아니었다. 5박 7일 중 사흘은 한국에서 미리 예약한 패키지와 액티비티로 차있었다. Y와 함께 혼신을 기울여 하와이에서만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와 업체를 고르고 고른 결과였다. 그중 내가 가장 기대했던 일정은 바로 카네오헤에서 즐길 수 있는 해양 스포츠들이었다. 실상 해양 스포츠보다는 카네오헤라는 곳에 가보고 싶은 욕심이 더 컸다. 카네오헤가 하와이의 몰디브라나. 하와이 만으로도 전 지구적 휴양지인데 거기에 몰디브라니. 좋은 것에 좋은 것이 더해졌으니 얼마나 대단한 곳이겠나 하는 마음이었다.


카네오헤는 오아후 섬의 동쪽에 붙어 있는 곳으로, 호놀룰루에서는 해안가를 따라 자동차로 40분을 달려야 도착하는 거리에 있어 따로 자동차를 렌트하거나 현지 픽업 업체를 예약해야만 갈 수 있었다. 우리는 카네오헤에 가기 위해 픽업까지 지원하는 액티비티 업체를 찾아보기로 했다. 상당히 유명한 관광지인 덕에 적지 않은 액티비티 업체들이 있었고, 참여할 수 있는 스포츠 종류도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씨워커, 튜브라이트, 모터보트 라이드, 발리볼, 윈드 서핑, 거북이 와칭, 스노클링……. 너무 많은 선택지에 오히려 쉽게 고를 수가 없었다. 웬만해서는 가평 계곡이나 해운대 바닷가에서도 할 수 있는 고만고만한 체험들이기도 했다. 하와이 바다의 밑바닥을 걸어보는 씨워커를 제외하면 말이다. 우주인 마냥 동그란 헬멧을 쓰고 바다 아래의 모래바닥을 걸어가는 광고 사진을 보고 나는 바로 이걸 하기 위해 카네오헤에 간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이후 오직 씨워커를 포함한 패키지만 고려했다. 마침내 우리가 결정한 패키지는 씨워커, 스노클링, 바나나보트. 씨워커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경험이었고, 스노클링은 카네오헤의 투명한 바다에서 한번쯤 해보면 좋을 것 같았고, 바나나보트는…… 영 할만한 게 없어 개 중에 나은 걸 고른 것이었다. 반나절 동안 세 개의 액티비티. 오전에 출발에 한낮이면 다시 돌아오는 구성이었다. 앞 뒤의 여행 일정을 고려해봤을 때 하루 전체를 카네오헤에서 보내는 것보다는 반나절을 짧고 굵게 놀고 오는 게 체력적으로 안전할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액티비티 예약 당일, 작은 밴 하나가 아침 일찍 숙소 앞으로 우리를 데리러 왔다. 밴 안에는 몇 명의 한국인이 벌써 타 있었다. 나와 Y가 탄 이후에도 밴은 네댓 명의 여행객들을 더 채운 후 카네오헤를 향해 출발했다. 오래된 밴 안은 좁았고 습했으며 원인을 알 수 없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벌써 바다에 흠뻑 빠졌다 나온 것만 같았다. 게다가 서로 이름도 모르는 관광객들끼리 너무 가까이 붙어 앉았기 때문인지 밴은 적막에 가까웠다. 음악 소리 하나 없었다. 때문에 제일 뒷좌석에 앉은 나는 그동안 사람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제일 앞 시트에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그다음 시트에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또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그리고 우리 옆에도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세상에. 여기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나는 Y에게 속삭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커플들 뿐이야!” 오직 우리만 빼고!

그렇다. 하와이가 이제 신혼여행으로는 유행이 지났다고 들었는데 꼭 그런 건 아니었던 모양인지, 이 좁은 밴 안에는 다섯 커플이 쌍쌍이 앉아있었다. (비혼이 대세라더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한단 말이야? 아니면 결혼도 하지 않고 하와이에 온단 말이야?) 조곤조곤 대화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이들의 공통점은 연인이라는 것쯤은 손쉽게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속삼임들은 사랑과 낭만보다는 졸림과 지침으로 가득했지만, 나는 다섯 신혼 (추정) 부부로 가득한 밴 안에서 기묘한 위화감을 느끼며 어서 빨리 카네오헤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패키지의 추가 인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엄마와 두 딸로 이루어진 가족이었다. 그렇지. 하와이가 꼭 커플의 성지는 아니잖아. 가족들도 오는 곳이라고. 마치 영화관에 빈 좌석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제일 뒤의 커플 좌석에 앉아버린 사람처럼, 나는 은근히 불편하지만 또 그다지 거리낄 것은 없는 마음이 되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선착장에 정박한 세일 보트는 상당히 낡은 외양에 내부에 있는 구조물도 꽤나 저렴해 보였다. 하지만 지난 며칠동안의 하와이 여행으로 낡고 오래된 것들에 적응된 덕에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능숙함이 쌓이고 말았다. 세일 보트 안에는 우리 패키지 그룹이 아닌 다른 여행객들도 꽤 대기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한 번에 여러 패키지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 같았다. 다른 팀이 바나나 보트를 하는 동안 우리 팀은 스노클링을 하고, 또 그 다음에는 다른 팀이 하지 않는 액티비티를 돌아가면서 하는 식이었다. 아무리 하와이의 메인 여행지라 하더라도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비슷비슷한 법이다.


카네오헤의 대표적인 액티비티인 스노클링이 진행되는 샌드 바로 향하는 길이었다. 아침식사로 주어진 도넛 하나와 따뜻한 커피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패키지 가이드가 우리에게 지나가던 말로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커플이에요?” 나는 그 말 뜻을 단박에 이해할 수 없어 되물었다. “네?”  그러곤 곧장 Y를 돌아보았다. 이게 무슨 질문이냐는 표정으로. 한국에서 예약한 액티비티 패키지가 이제 와서 커플 할인 따위가 있을 리는 없고. 이게 내가 이해한 그 뜻이 맞니? Y는 나와 정확히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게. 우리는 다시 가이드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단호한 대답과 함께였다. “아니에요.” 우리의 얼떨떨한 반응에도 가이드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 그럴 수도 있지. 편하게 말해도 돼요. 나는 열려 있으니까. 하와이가 그렇잖아.” 대수롭지 않은 어투였다. 우리가, 네, 사실은 커플 맞아요, 라고 당장이라도 정정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걸요. “진짜 아니에요. 저희 그냥 친구예요.”


대체 Y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그런 생각을  걸까. 그에게 나와 Y 보여준 것이라고는 그저 같이 밴을 타고 와서 시덥잖은 대화를 하다가 세일 보트에 오른 것뿐이었다. 내가 동성친구들에게 스킨십이 과한 편도 아니고, Y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번이고 구구절절 말하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있어 유난히 각별한 친구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와 Y 사이에서 어떠한 이상 기류를 느낄 여지가 있었느냐 하면, 단언컨대 일말의 스파크조차 없었기 때문에 그가 우리를 커플로 추측한 이유를 조금도 어림 잡을  없었다. 왜일까? 그저 젊은 여자들이 둘이 함께 왔다는  때문에? 그것도 하와이에 단둘이  리는 없으니까? 어쩌면 패키지여행까지 신청해서? (저기 모녀들도 있잖아요!) 아니면 마침  머리카락의 길이가 어깨에 닿지 않는 숏컷인  그의 판단 착오에 영향을 끼친 요소  하나인지도 몰랐다. (참고로 Y 어깨에 닿는 단발이었다. 이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우리를 오해한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단둘이’ ‘하와이’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 오직 그 이유 뿐이었다. 살면서 성소수자로 판단된 경험  가장 당황스러운 근거 바로  순간 생겨났다. 하와이에 단둘이 여행 오는 게 뭐 어때서요. 하와이 주법에 친구들끼리 여행 말라는 조항이 있기라도 한가요.


도대체 하와이란 어떤 땅일까. 다들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오고 무엇을 찾아가는 걸까. 여자 둘이 놀러 온 걸 연인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그 낭만과 상상의 근원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냥 산호초를 보고 바다 수영을 하고 파인애플을 먹기 위해 시간이 맞는 친구와 하와이에 왔다는 건 아무래도 너무 안일했던 걸까?


하지만 그런 하와이 여행도 있는 걸 어떡하란 말인가.


가이드의 질문에 잠시 놀라긴 했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그가 대수롭지 않게 대화를 건넨 덕분에 우리도 별 의미를 두지 않고 넘어갔고, 그 이후로도 가이드는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고 또 농담도 던지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후 나는 그가 한 질문을 종종 떠올리게 됐다. 그 질문은 그때의 당혹스러움과는 다른 이유로 나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나의 태도와, 생각과, 가치관에 대해서. 타인이 개인의 성지향성과 다르게 판단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적절한 건지, 그 순간 당황했던 내 태도가 알맞았던 건지. 화들짝 놀라거나 의문을 표하지 않고 우아하게 부정의 뜻을 드러내는 방법은 없었던 건지. 다른 이들은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할까. 다른 예시라고는 한정적이다. 이런 경우가 많지는 않을 테니까. 생각해보면 많은 소수자들이 이런 불편함을 너무도 평범하게 (하지만 당연하지 않게) 감수하고 있을 테다. 어쩌면 그 질문에 적지 않게 당황한 것만으로도 나는 얄팍한 태도로 세상을 대하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때 대수롭지 않게 툭 던지듯 말했던 가이드의 태도는 어쩌면 그 나름의 배려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건, 아주아주 긴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느끼는 섬세함이었다.


이전 09화 산이 좋느냐 바다가 좋느냐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