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구구절절 와이키키 찬가
어릴 적,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파아란 하늘빛 무울이 든다는 동요를 들을 때마다 나는 나만의 바다를 속으로 그리곤 했다. 캔버스에 가로선을 죽 긋고, 위쪽은 파란색, 아래쪽은 초록색인 거다. 세룰리안 블루의 하늘과 비리디안 그린의 바다로 이루어진 담백한 세상. 마치 마스 로스코의 그림처럼 절제된 이 풍경은 나 혼자 간직한 상상 속의 그림이었다. 왜냐하면 그 동요의 가사는 ‘바다는 초록색, 하늘은 파란색’이라며 서로 다른 색을 지정하고 있었고, 그건 어린 내가 아는 상식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내가 본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로 새파란 색이고 바다는 하늘은 두 개는 겹친 듯한 진한 파란색이었으니까. 이렇든 저렇든 둘 다 파란 계열에 속했고, 초록빛 바다라는 건 문학적 허용이라고만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홍보 책자나 엽서,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연두색 바다가 담긴 이미지를 접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하나 같이 눈이 시릴 정도로 형광빛이었고 묘하게 생명력을 느낄 수 없었다. 경쾌하게 움직이는 자연이라기보다는 잘 만든 사탕 조각처럼 보여 오히려 가짜 같았다. SNS에 올라오는 여행지의 사진들도 감흥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어릴 적 자주 갔던 야외풀장의 바닥 색이 저랬던 것 같기도 하고. 포트폴리오 사이트에서 본 3D 작업물의 과장된 컬러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바다는 역시 파란색이어야 했다. 끝없이 잠겨들 것만 같은 짙고 푸른 파란색. 평생을 동해 바다에서 피서를 보낸 한국 토박이에게 어쩌면 당연한 생각이었다. 내게 초록빛 바닷물이란 추상미술이나 또는 트루먼쇼의 조형물 정도에 불과했다. 와이키키 비치를 보기 전까지는.
하와이에서의 둘째 날은 묘하게 맑았다. 묵직한 구름들이 떠 있었지만 그마저 점점 걷히고 있었고 햇살은 용케 그 사이를 피해 얼굴을 내밀었다. 나와 Y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수영복을 입고 호텔을 나섰다. 유명하다는 무스비 맛집에서 무스비를 하나씩 사들고 우리는 곧장 와이키키 비치로 향했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 아침-바다-수영.
오전 9시였다. 이른 시간에도 바닷가엔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흐린 날씨 탓에 태양빛이 선명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바다를 즐기기엔 충분했다. 사람들은 해변에서 사진을 찍거나 벌써부터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우리도 그중 하나가 되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그때 파도소리가 이렇게 길게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와이키키 비치의 파도는 거의 수평선에서부터 달려오는 것만 같았다. 저 멀리서 물살을 올린 파도는 골을 만들며 해변가 깊게 들어왔다. 그 우아한 흐름에 시선을 뺏기다 보면 어느새 발끝 바로 아래에서 하얗게 부서지곤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 정신을 차려보면 새로운 파도가 해변가에 다다라 있었다. 어떤 기계나 구조가 와도 따라 할 수 없는 깊고 아름다운 반복이었다. 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돌림 노래 같은 파도 소리를 들으며 처음으로 감격했다. 아무래도 여기가 천국인 것만 같아.
나와 Y는 해변가에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곧장 무스비부터 꺼내 들었다. 본격적으로 수영을 즐기기 전에 요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무스비는 ‘감싸다’는 뜻의 일본어에서 온 단어로, 밥과 스팸을 쌓은 뒤 그 가운데를 김으로 한번 감싼 일종의 주먹밥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하와이에서 일본식 초밥을 만들어 먹던 일본인들이 어업이 금지되자 생선 대신 스팸을 넣으면서 만들어진 음식이라나. 그러니 스팸 무스비는 존재한 지 불과 백 년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문화 먹거리인 셈이다. 원래 스팸 통으로 밥을 찍어내고 딱 그만한 크기의 스팸 슬라이스가 그 위에 올라가기 때문에 살짝 길어야 하는 게 정통인데, 우리의 무스비는 랩으로 꽁꽁 싸매진 바람에 동그란 주먹밥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감싸져 있으니 오히려 더 ‘무스비’에 어울린다고 할 수도 있겠지.
랩의 끝 부분을 조금 벗겨내 한 입 물자 익숙한 맛이 전해졌다. 내가 산 무스비는 장어 달걀 스팸 무스비였다. 흰쌀밥과 어우러지는 스팸과 달걀말이와 장어구이의 조합. 실상 특별할 것은 없는 구성이었지만 그만큼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일본과 하와이의 역사를 차근차근 씹다 보니 어느덧 구름이 완전히 걷히고 햇빛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강렬한 햇살이 바다 위에 쏟아지자 바다의 색은 전보다 다채로워졌다.
감히 단언컨대 살면서 그런 바다는 처음 봤다. 파도가 쪼개지는 해변의 끝자락은 새하얗게 반짝이며 거품을 일으켰고 모히또처럼 투명한 연두색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물결은 밝은 민트색이 되었다가 터키석처럼 반짝였고 또 에메랄드의 깊은 빛을 띠다가 끝내 벨벳 같은 청록색으로 이어졌다. 캔버스 위의 색소처럼 얄팍하지도 않았고, 네모난 엽서 속 스틸 마냥 정적이지도 않았다. 그 모든 색들이 한 바다에서 이어져 끊임없이 움직였다. 바로 그 바다가 태평양 먼 끝에서부터 달려와 파도를 일으키며 다채롭게 색을 변모해 내 발끝에 닿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홀려 멍하니 바다를 응시했다. 어떻게 이렇지. 물결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지. 아무리 수영을 해도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저 너머까지 온통 초록빛이었다. 초록빛이 아닌 다른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초록-색도 아닌, 파란-빛도 아닌, 초록, 그리고 빛. 싱싱한 생명력이 다채롭게 빛나는 초록의 물살에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린 시절 불렀던 그 동요가 말한 초록빛 바다가 바로 이런 걸 노래했던 걸까. 짧은 구절로는 결코 전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와이키키 비치의 해변은 동해 바다의 해수욕장처럼 수심이 얕지 않아서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발아래가 푹 꺼지곤 했다. 해안가에서 고작 일 미터 정도 들어간 곳에서도 발을 헛디디면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맘 놓고 물장구를 치거나 무턱대고 멀리까지 수영하기엔 위험했다. 안전을 위해서는 튜브를 꼭 끼고 들어가 물결 위에 동동 떠있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도 즐거웠다. 햇살이 고개를 내밀 때마다 눈부신 윤슬이 끝없이 이어졌고, 물감으로도 만들 수 없는 터키석 같은 바닷물을 내 손으로 갈라 물살이 생기면 매순간 벅차올랐다.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눈에 보이는 걸 믿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많은 걸 가진 것만 같았다. 그 아름다움의 일부가 된 것 자체만으로도 숨이 멎을 듯 행복했다.
그때의 느낌을 어떻게 정확히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어떤 그림으로도, 사진으로도, 문학으로도 이곳을 제대로 전달할 수는 없다. 표현하려 할수록 설명만 길어지고 구차해질 뿐이다. 초록빛 바다라는 노랫말이 절제된 최선의 표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결국 구구절절 묘사하게 되는, 말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는 바다가 여기에 있다. 그 누가 아무리 콧방귀를 뀐다 해도 이곳에 오면 결국 나처럼 감동을 받게 될 거다.
세상에. 겨우 와이키키 비치 하나로 하와이를 이렇게 사랑하게 되다니. 겨우 두 번째 날 아침인데.
아무래도 하와이는 지상낙원이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