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끝자락,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는 또다시 짓궂은 선택을 했다. 올해의 단어는 'Rage bait'.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분노 낚시'쯤 되겠다.
사람들의 화를 돋우기 위해 일부러 만든 엉터리 영상이나, 편 가르기를 부추기는 제목 따위를 일컫는 말이다. "플라스틱 빨대를 쓰는 당신이 지구를 망쳤다"며 기후 위기를 개인의 도덕적 책임으로 몰아가거나, 복잡한 국제 정세는 쏙 빼놓고 "세금으로 난민을 먹여 살린다"며 '불공정함'만 자극하는 식이다.
작년엔 디지털 과잉으로 뇌가 썩는다고(Brain rot) 경고하더니, 올해는 아예 대놓고 "너희 지금 화내고 있는 거, 다 낚인 거야"라고 놀리는 듯하다. 옥스퍼드가 연속으로 던진 이 두 단어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니, 무엇을 당하고 있는가.
런던의 펍이나 마트에서 영국인들을 관찰하다 보면 이 단어가 왜 여기서 나왔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곳의 '분노 낚시'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타블로이드 신문, 예컨대 '더 선(The Sun)'이나 '데일리 메일(Daily Mail)'을 닮았다. 말도 안 되는 기사 제목을 보며 "Rubbish(쓰레기 같군)!"라고 혀를 차면서도, 사람들은 그 내용을 안주 삼아 하루 종일 툴툴거린다.
이곳에서 Rage bait는 일종의 '불평을 위한 장작'이다. 낚인 줄 알면서도, 씹고 뜯는 재미를 위해 기꺼이 미끼를 무는 것이다. 겉으로는 차분해 보여도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나?"라고 비꼬는 그들의 태도는 은근히 공격적이다. 분노마저도 냉소적인 유머로 소비하는, 지극히 영국적인 풍경이다.
반면, 내 스마트폰 속 한국의 풍경은 '뜨거운 냄비(Pot-boiling)'처럼 펄펄 끓는다. 한국에서의 '분노 낚시'는 소위 '조회수를 쫓아다니는 사이버 레커'들이 주도한다. 우리는 누군가 던진 미끼를 무심코 넘기지 못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말과 함께 순식간에 달아오르고, 댓글 창은 정의를 구현하려는 전쟁터가 된다. 영국의 분노가 식은 홍차처럼 씁쓸하다면, 한국의 분노는 너무 뜨거워서 가끔은 팩트를 확인하기도 전에 화부터 내고 본다.
사실 나라고 다를까. 옥스퍼드의 발표를 보고 콧방귀를 뀌었지만, 며칠 전 나 역시 '낚시'에 걸려들 뻔했다. 인터넷에서 "586 세대가 대한민국의 집값과 사다리를 다 걷어찼다"는 글을 본 순간이었다. 복잡한 맥락은 사라지고, 모든 화살표가 한 방향으로만 향하는 그 문장을 읽는 동안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여 장문의 반박 댓글을 달 뻔했다. 내 불안을 건드린 미끼를, 나 역시 덥석 물 뻔한 것이다.
옥스퍼드의 선정 결과를 보며 나는 묘한 피로감을 느낀다. 영국의 은근한 비꼬기에도, 한국의 뜨거운 정의감에도 지쳐버린 탓일까. '좋아요'와 조회수를 위해 내 감정이 누군가의 수익 구조 안으로 흘러 들어갔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우리는 분노를 주체적으로 선택했다고 믿지만, 대개는 이미 놓여 있는 미끼에 반응했을 뿐이다.
도대체 이 시스템은 왜 이렇게 잘 작동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늘날 세대는 분노를 '안으로 삼킬 이유'가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불안정한 일자리, AI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통제되지 않는 미래, 그리고 무엇보다 노력과 결과의 연결이 느슨해진 사회. 비교할 대상은 늘었는데 책임질 수 있는 결정권은 줄어든 상태다.
이런 순간들 앞에서 슬픔이나 좌절은 오래 머물러야 하는 감정이다. 반면 분노는 빠르다. 설명이 필요 없고, 방향만 정해주면 된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야”라는 생각은, 불안한 개인에게 잠깐의 위안과 소속감을 준다.
Rage bait는 바로 이 지점을 건드린다. 거대한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우리의 불안을 분노로, 무력감을 공격성으로 바꿔주는 아주 편리한 장치다. 그러니 디지털 미디어는 낚시를 했다기보다, 갈 곳 잃은 분노에게 '가장 쉬운 배출구'를 깔아준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은 끝까지 가지 못해 뇌가 썩어가고(Brain rot), 감정은 가장 쉬운 형태로 폭발하는(Rage bait) 시대. 생각은 오래 머물지 못하고 분노만 빠르게 반응하는 이 세계에 우리는 너무 익숙해진 건 아닐까.
낚싯바늘이 난무하는 디지털 바다에서 나는 오늘 조용히 로그아웃을 택한다. 영국인들처럼 "쓰레기네" 하고 웃어 넘기 든, 한국인처럼 정의감을 불태우든, 결국 내 감정을 미끼로 던져주고 싶지는 않다. 분노 대신 창밖의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이 소란스러운 두 나라 사이에서 내가 찾은, 작고 느린 평온이다.
이번 글은 연말의 흐름에 맞춰
〈영국과 한국 사이〉 정기 발행일보다
하루 앞당겨 전합니다.
남은 하루,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 천천히 한 해를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속도보다 감각을,
반응보다 선택을 조금 더 믿으며
함께 건너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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