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집들은 왜 저녁에도 커튼을 닫지 않을까?

보여주기와 살아가기 사이

by 양수경


나에게 손님 초대는 늘 '사건(Event)'이었다. 한국에서 누군가에게 "언제 밥 한번 먹자"라고 하면, 나는 즉시 '공연 기획자'모드로 전환된다. 일주일 전부터 메뉴를 고민하고, 며칠 전부터는 그 음식에 어울릴 그릇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한다.


손님이 오기 사흘 전부터는 가족을 동원해 대청소를 시작한다. 이때 나는 거의 화장실 CIS요원이 된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 올을 족집게처럼 찾아내고, 물 한 방울 없는 건식 욕실인 척 수도꼭지를 거울처럼 닦아낸다.


요리 실력이 부족할 땐 배달 앱을 켜지만, 들키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배달 온 찜닭을 우아한 도자기 그릇에 옮겨 담고, 플라스틱 용기들은 쓰레기통 깊숙한 곳에 꾹꾹 눌러 '암매장'한다. 완전 범죄를 꿈꾸며.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렇게 공들여 숨기고 꾸몄는데, 눈치 없는 손님은 꼭 내가 옮겨 담은 그 배달 음식을 가리키며 말한다. "어머, 이건 비법이 뭐예요? 오늘 먹은 것 중에 제일 맛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생각한다. '그거.... 00 찜닭 주방장님 비법인데.....' 완벽한 호스트가 되려 애쓸수록, 나는 내 집에서 점점 더 연기자가 되어 간다.


손님이 오는 날, 우리 집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기보다 잠시 머물다 갈 '모델하우스'에 가깝다. 집이 휴식처가 아니라 또 다른 '평가의 공간'이 되어버린 탓일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집 문을 걸어 잠그고 밖에서 만나는 쪽을 택했다. 세련된 카페나 맛집이 편했다. 그곳에서는 적어도 서로의 적나라한 생활을 숨길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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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의 손님 초대는 전혀 달랐다. 그들에게 초대는 '이벤트'가 아니라 '생활'의 연장이었다.


영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집 근처 골목에서 이웃 '멜로디'가 나를 불렀다.


"지나가던 길이면 차 한잔하고 갈래요?"


예고 없는 초대였다. 그녀의 집 현관에는 비 갠 숲에서 뛰어놀다 온 아이들의 흙투성이 장화가 뒹굴고 있었고, 주방 싱크대엔 아침에 먹다 남은 시리얼 그릇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순간, 집에 두고 나온 내 설거지가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라면 부끄러워서 문을 열어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멜로디는 아무렇지 않았다. 쌓인 접시들 옆에서 태연하게 티포트를 꺼냈다. 식탁 한 켠을 행주로 쑥 닦아내고 찻잔을 내려놓는 그녀에게는 묘한 '자연스러운 뻔뻔함'이 느껴졌다.


우리는 햇볕이 드는 컨서버토리(Conservatory, 유리 온실)로 자리를 옮겼다. 소파 위에는 아이들이 벗어 둔 옷가지가 널려 있었지만, 멜로디는 그것을 치우는 대신 내 무릎에 따뜻한 담요를 덮어주었다.


"오늘 해가 참 좋죠?"


그 집에는 잘 정돈된 인테리어 대신, 사람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온기'가 가득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손님을 위해 완벽하게 세팅한 우리 집에서는, 주인인 내가 오히려 소파 쿠션 하나 흐트러질까 봐 늘 긴장하고 있었는데, 어질러진 남의 집 거실에서 나는 무장해제가 되었다.


담요를 덮고 정원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동안, 나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속마음까지 털어놓고 있었다. 영국 생활의 서로움, 아이 키우는 막막함..... 집안의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대신, 그녀는 자신의 틈을 보여주었고 그 틈 사이로 내 마음이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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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집에서 무장해제를 경험하고 돌아오는 길, 그제야 우리 동네의 창문들이 눈에 들어옸다.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동네는 1930년대에 지어진, 창문이 밖으로 돌출된 '베이 윈도(Bay window)'집들이 많다.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거실이 마주 보고 있는 구조다.


한국식 아파트 습관이 남아있는 나는 밤이면 이중 커튼을 빈틈없이 친다. 낮에도 얇은 레이스 커튼을 드리워 밖에서 내 실내가 보이지 않게 가린다. 밤에 불을 켜면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게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밤 산책을 하다 보면 놀라운 풍경과 마주한다. 대부분의 영국 집들이 저녁에도 커튼을 활짝 열어두고 있다. 노란 조명 아래서 아빠가 신문을 보고, 아이들이 거실 바닥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부부가 와인을 마시는 모습이 길가는 사람에게 속속들이 다 보인다. 마치 스크린 속 영화의 한 장면처럼.


처음에는 의아했다. 이 사람들은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걸까?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그들은 자신의 일상을, 자신이 사는 공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집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룸'도 아니고, '사회적 성취를 증명'하는 공간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가장 '나'답게 쉬어도 되는 곳. 그러니 굳이 가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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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바비큐 파티도 그랬다. 한국 식이라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준비하고, 주인은 고기를 굽고 치우느라 대화에 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의 호스트는 준비자이자 참석자다. 소시지 몇 개와 빵, 시판 패티를 구워 놓고 주인도 맥주병을 든 채 손님들과 섞인다. 초대받은 사람도 빈손이 민망해 비싼 선물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자신이 마실 음료수나 가볍게 나눠 마실 와인 한 병이면 충분하다. 서로에게 '의무'를 지우지 않으니, 만남 자체가 '휴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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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남편의 주재원 발령으로 막 영국에 도착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낯선 땅에 떨어진 긴장감이 수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친구는 한인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다며, 근처 카페에서 잠깐 보자고 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냥 우리 집으로 올래? 지금 바로. "


전화를 끊고 거실을 둘러보았다. 바닥에는 아이 장난감이 흩어져 있고, 소파 쿠션은 눌로 있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30분만 있다가 와!"라고 소리치고 미친 듯이 청소기부터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청소기를 멈춘 채 그대로 두기로 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아이 장난감을 발로 쓱 밀어놓고, 대신 그 시간에 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먼지를 닦아내는 시간 대신, 낯선 곳에 떨어져 불안해할 친구의 얼굴을 더 오래,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우리 집은 좀 어수선해. 하지만 너를 반기는 내 마음만은 언제보다 완벽해.'


어둑해지는 저녁, 나는 거실의 커튼을 활짝 걷었다. 영국의 집들처럼, 나도 친구를 향한 내 마음의 커튼을 닫지 않기로 했다. 완벽하지 않은 나의 일상이, 그리고 우리의 온기가 창밖으로 따뜻하게 새어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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