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선 '까다로운 사람'이 대접받는다

by 양수경


나는 30년 넘게 ‘토종 한국인’으로 살았다. 내 몸에는 ‘좋은 게 좋은 거지’, '내가 좀 손해 보고 말지'라는 유교적 DNA가 깊이 박혀 있다. 한국에서 그것은 미덕이었다. 침묵은 신뢰였고, 참을성은 어른스러움이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내 배려를 ‘눈치껏’ 알아줄 거라 믿었으니까.


하지만 런던에 온 지 1년 만에 깨달았다. 이곳에서 고상한 침묵은 배려가 아니라 ‘만족함(Satisfaction)’ 혹은 ‘관심 없음’으로 번역된다는 것을. 영국은 ‘참을 인(忍)’ 자를 세 번 쓰면 살인 면하는 게 아니라, 완벽한 ‘호구’가 되는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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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에서 막 발령받아 온 친구 가족과 템스강이 보이는 멋진 식당(Harts Boatyard)을 찾았다. 채식주의자인 친구를 위해 신중하게 ‘구운 카망베르 치즈(Baked Gillot Camembert)’를 전식으로 주문했다.


그런데 테이블 위에 놓인 접시에는 치즈 대신 뜬금없는 ‘닭꼬치(Chicken Yakitori)’가 김을 뿜고 있었다. 명백한 주문 실수였다. 순간 우리 테이블에는 당혹감이 감돌았다. 직원을 불러야 하나,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 때 친구가 손사래를 쳤다.


“아유, 그냥 먹자. 지금 직원들 너무 바빠 보이는데 다시 해달라고 하기 미안하잖아.”

“그래, 다시 나오려면 한참 걸릴 텐데 흐름 끊기느니 그냥 먹는 게 낫겠어.”


우리는 ‘배려’라는 이름으로 ‘권리’를 포기했다. 채식주의자 친구는 샐러드만 깨작거렸고, 나는 식어가는 닭꼬치를 씹으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음식 맛이 아니라, 그 어색한 공기를 견디느라 체할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옆 테이블의 영국인 노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연한 아이보리 니트를 입은 할머니가 직원을 불렀다. 그녀의 스테이크 굽기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순간 긴장했다. 화를 낼까? 진상 손님처럼 보이면 어쩌지?


“Excuse me, I’m afraid this is not what I ordered.”

(실례지만, 이건 제가 주문한 굽기가 아닌 것 같네요.)

“I’m not happy with this.”

(전 이 요리가 만족스럽지 않아요.)


놀랍게도 그녀의 목소리엔 날 선 감정이 전혀 없었다. 차분했고, 심지어 입가엔 옅은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다. 직원은 즉시 정중하게 사과했고, 새 요리를 가져다주었으며, 계산서에서 해당 금액을 빼주겠다고 제안했다. 식당을 나갈 때 직원은 그 노부부에게 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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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는 직원을 배려하느라 제 돈 내고 눈칫밥을 먹었는데, 그들은 까다롭게 굴고도 오히려 더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들의 불평은 싸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계약된 서비스가 이행되지 않았음”을 알리는, 지극히 건조하고 이성적인 사실 확인(fact-checking)이었다.


나는 문득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평소엔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한없이 참다가,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컴플레인을 할 때면 늘 ‘참다못해 터져 버린’ 경우였다. 그러다 보니 내 목소리는 이미 평정심을 잃은 상태다. 눈꼬리는 사납게 올라가고, 이마는 나도 모르게 잔뜩 찌푸려져 있다.


“저기요, 지금 이게 뭐 하시는 거예요?”


떨리는 목소리엔 억울함과 분노가 뒤섞여 있다. 내 권리를 찾는 것인데도, 나는 마치 싸움을 거는 사람처럼 비장해진다. 영국과 한국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들에게 컴플레인은 **‘권리 주장’**이지만, 익숙지 않은 나에게 컴플레인은 늘 **‘감정싸움’**이 되어버린다.


그들은 화를 내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기술’을 알고 있었고, 나는 화를 내지 않으면 내 권리가 무시될까 봐 두려워하는 ‘방어 본능’을 가지고 있었다. 화를 내서 진상이 되는 게 아니다. 제때, 정확하게, 감정을 섞지 않고 말하지 못해서 호구가 되거나 진상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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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선단체(Charity)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나는 늘 ‘예스맨’이었다. 상사가 모호한 지시를 내려도, 방향이 중간에 바뀌어도 나는 웃으며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지금 따지면 예민해 보일까 봐’, ‘분위기 깰까 봐’. 그놈의 배려 때문에 불만은 내 속으로만 삼켰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시간 외 업무로 돌아왔다.


반면, 우리 팀엔 유난히 까다로운 제임스(James)가 있다. 그는 회의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는 법이 없다.


“이 기준은 언제 정해졌나요?”

“이게 바뀌면 제 역할도 달라지나요?”


처음엔 다들 그를 피곤해했다. 나도 속으로 혀를 찼다. ‘적당히 좀 넘어가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공기가 달라졌다. 중요한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상사는 나 대신 제임스를 쳐다봤다.


“제임스, 이 안, 문제 있어 보이나요?”


제임스는 일을 덮어놓고 좋다고 하지 않았다. 대신 기준을 앞에 꺼내놓고 구조를 짚었다. 그는 감정으로 싸우지 않고 조건으로 협상했다. 어느 날, 상사가 제임스에게 말했다.


“당신은 까다롭지만, 그래서 신뢰가 가요(I trust you).”


그 말이 회의실에 묵직하게 걸렸다. 나는 그날 노트북 귀퉁이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참아서 편한 사람이고, 그는 말해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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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사회는 ‘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Squeaky wheel gets the grease)’는 속담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곳이다. 이곳에서 침묵은 금이 아니라, 그냥 투명 인간 취급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착한 한국인’으로만 남지 않기로 했다. 어제는 카페에서 미지근한 카푸치노를 받았다. 예전 같으면 ‘식기 전에 빨리 마시자’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컵을 들고 카운터로 갔다. 심장이 쿵쿵거렸지만, 제임스의 차분한 눈빛을 떠올렸다. 입가엔 일부러 여유로운 미소를 띠었다.


“미안하지만, 커피가 너무 식었네요. 다시 만들어 주실 수 있나요?”


직원은 화를 내지 않았다. “Oh, sorry!”라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 커피를 건네주었다. 따뜻한 커피 잔을 쥐고 나오는 길, 런던의 잿빛 하늘이 조금은 맑아 보였다.


까다로움. 그것은 남을 괴롭히는 성격이 아니라, 나를 지키고 상대를 프로페셔널하게 대우하는 가장 정중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런던에서 ‘우아하게 까칠해지는 법’을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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