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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내음 Oct 22. 2020

우연한 행복

건반 위에 쓰다

피아노만 치고 살던 내가, 느닷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기조차 제대로 써본 적 없고, 카드 한 장을 쓸 때도 적절한 문구가 떠오르지 않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던 내게 일어난 일이다.


어느덧, 남겨진 시간보다 지나온 시간이 더 많아졌다. 세월이 흘러도 그리움이 옅어지거나 덜해지지 않았다. “고맙다”,“미안하다”, “사랑한다”는 표현조차 못하고 떠나보낸 순간들과 사람들을 떠올리면, 마음 한 구석이 아리고 쓰렸다. 내 안에 엉켜 있던 감정의 응어리들을 글로 풀고 싶었을까….




 미국으로 떠난 지 4년 만에 건강하던 엄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둘러 엄마를 보러 가려했지만. 이미 모든 것이 늦었다. 작별 인사조차 없이 엄마를 떠나보내야 했다. 영원할 것 같던 친구와의 작별도 떠올랐다. 그들이 떠난 후에야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심했는지 깨닫고 마음이 베인 듯 아팠다.


이별 이야기를 적기 시작하면서, 흐르는 눈물 때문에 글을 쓰기 힘들었다. 그러나 글이 마무리될 무렵, 아픈 기억과 상처가 글 속으로 옮겨지며 조금씩 작아져갔다.




 하얀 여백 위에 쓰이는 검은 글자는 희고 검은 피아노 건반과 많이 닮아 있다. 하염없이 건반과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우아해 보이는 것도 비슷하다. 손끝에 마음을 실어야 한다는 것, 잘해야 한다는 욕심을 버리고 힘을 빼야 한다는 점도 닮았다. 청중과 독자는 무대 위의 완성된 모습만 보지만, 그 순간을 위해 오랜 시간 틀어박혀 연습하고 원고를 쓰며 시간을 보낸다.


무대 위에서의 연주는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지만, 글쓰기는 끊임없이 지우고 다듬을 수 있어 좋다. 조금씩 나아질 수 있고, 쓰면서 계속 고칠 수 있다는 점에서 글쓰기가 좋다. 혼자 연주하는 것보다 청중이 들어주고 공감해야 좋은 연주가 되듯, 글도 누군가가 읽어줄 때 더 성의 있는 글이 된다. 끊임없이 연습하고 갈고닦아 최고의 연주를 보여주듯, 글도 끊임없는 수정과 퇴고의 과정을 거쳐야 좋은 글이 탄생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글쓰기는 나를 변화시켰다. 그대로의 나를 드러낼 용기, 상처도 후회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받아들일 용기가 생겼다. 내가 쓴 글이초라 하고 부족해 보일 때도 많지만, 글도 내 삶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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