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을 잇다
"피아니스트의 발은 발레리나처럼."
드뷔시의 피아노 곡을 처음 배울 때, 지도 교수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슨 말이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때 교수님은 말없이 피아노 앞으로 다가가 연주를 시작했다. 한 페달, 두 페달, 때로는 세 페달을 동시에 밟고 떼는 그의 발동작은 발레리나의 발끝처럼 가볍고도 민첩했다.
수십 년간 피아노를 연주해 왔지만, 페달링은 여전히 어렵다. "발로 밟는 게 아니라 귀로 밟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페달링은 섬세하고 예민한 귀와 발의 민첩성을 요구한다.
피아니스트는 페달을 통해 음을 부드럽게 연결하고, 풍부한 음색과 화려한 다이내믹을 표현하며 연주의 완성도를 높인다. 페달을 깊게 누를지, 반만 누를지, 아주 조금만 누를지, 어디서 페달을 바꿔야 할지 연주자가 정해야 한다. 페달을 너무 오랫동안 밟으면 음이 지저분하고 불협화음이 생기지만, 밟아야 할 부분에서 페달을 떼거나 너무 자주 바꾸면 음이 이어지지 않고 끊어질 수 있으므로.
사람과의 관계는 마치 음악의 페달링과 같다. 타인과 연결된 페달을 너무 오래 밟으면 불협화음이 생기고 너무 자주 떼면 관계가 소원해질 수 있다. 작곡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페달링을 해야 곡이 아름답게 울리듯, 누구와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페달링의 방식도 달라진다.
상대방은 그럴 생각이 없는데 내가 일방적으로 페달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는 상대방이 떼기를 원하지 않는데 내 멋대로 페달을 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멋진 화음과 풍부한 하모니를 위한 첫걸음이다.
“나를 친구로 생각하기는 하니?”
늘 연락을 먼저 해오던 친구가 어느 날 예상치 못한 말을 불쑥 건넸다. 돌이켜보면 나는 모든 관계에서 늘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었다. 먼저 베풀거나 사랑을 준 적이 없었다. 연락을 먼저 하기보다는 연락이 오면 받고, 만나자고 하면 약속을 정했다. 늘 곁에 있을 것 같던 그 친구가 차츰 멀어지는 것을 보며 뒤늦은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너무 오랫동안 그 친구에게서 페달을 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삶 속에서 나는 페달링을 배운다. 결국, 삶이라는 일상도 무대 위의 연주와 같다. 우리는 이 무대에서 희로애락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며 살아간다. 인생이라는 큰 음악을 조화롭게 연주하기 위해, 오늘도 삶의 페달을 조율한다. 나와 상대방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때로는 길고 부드럽게, 때로는 발레리나처럼 섬세하고 가볍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