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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내음 Oct 27. 2024

리스본, 세 자매 여행의 서곡

난생처음 세 자매 여행

무얼 입을까, 무얼 가져갈까.

큰 가방을 펼치고 마음이 한껏 부푼다. 무엇보다 나를 설레게 하는 건, 난생처음 떠나는 세 자매 여행이라는 사실이다. 오롯이 자매들끼리만 여행을 떠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언니가 리스본에서 열리는 학회에 같이 갈 수 있냐고 제안했을 때,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무조건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빛의 타일인 아줄레주, 노란 트램,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 속 의문의 여인과 저자를 찾아가는 배경이 되는 도시 ‘리스본’은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했다.     


세 자매는 각기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었고, 리스본까지 직항이 없어서 경유지인 암스테르담을 접선 장소로 정했다. 스키폴 공항에 도착하니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약속한 공항 근처 호텔의 회전문을 밀고 들어서며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설렘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하이, 언니들!”

“어머, 잘 찾아왔네!”

이미 로비에서 기다리던 동생의 밝고 낭랑한 목소리가 오페라의 서곡처럼 울려 퍼졌다. 인생이 한 곡의 오페라라면, 이번 여행에서는 어떤 막과 음악이 연주될지 기대됐다.     


다음 날 늦은 오후, 우리는 리스본 공항에 도착했다. 푸르스름한 어둠이 내려앉은 공항에서 미리 예약해 둔 유람선을 타기 위해 태주 강(Rio Tajo) 선착장으로 향했다. 대서양으로 흐르는 태주 강 위로 주홍색 노을이 보랏빛 강물에 번져갔다. 해 질 녘 강변의 풍경은 신비롭고 평화로웠다.  

 유람선 투어가 끝난 후, 거리에는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숙소를 찾아가는 일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우버를 부르려 했지만, 데이터 통신 문제로 연결이 되지 않아 초조해졌다. 그때 미소를 지은 소녀들이 다가왔다.


“도움이 필요하세요?”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워하며 상황을 설명하고 택시를 불러줄 수 있냐고 물었다. 소녀들은 많은 질문을 쏟아내며 우리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했다.


“어머나, 뭐 하는 거예요!”

갑자기 동생이 소리쳤다. 소매치기 집시들이 동생의 가방을 노리고 있었다. 평화롭던 태주 강이 흐르던 리스본은 그 두 얼굴로 첫인사를 건넸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어렵게 찾은 숙소는 상상과는 달랐다. 어두운 골목과 낡은 아파트형 호텔은 스산했다. 쇠창살로 된 아파트 문이 열리자, 우리는 서로의 몸에 기대며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실내는 썰렁했다.


“저 창문을 봐봐. 누가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아.”

동생이 겁에 질려 소리쳤다. 집시 사건이 떠오른 탓에, 커튼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그림자가 무서웠다. 결국 다음 날 다른 호텔로 옮기기로 결론을 내렸다. 세 자매라도 외모, 성격, 전공까지 너무나 다른 점이 신기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낯선 침대에 누웠다. 얕게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아침이 되니, 동네의 풍경이 달라 보였다. 맞은편 건물의 베란다에는 꽃이 가득했고, 공기에는 달콤한 빵과 커피 향이 감돌았다.

버스를 타고 호시우 광장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광장 주변에 앉거나 서성이며 북적였다. 수많은 지진과 화재의 시련 속에서도 잘 복원된 성 도밍고 성당은 비극의 상징처럼 서 있었다. 그리움과 한이 묻어나는 파두 음악이 금방이라도 들려올 듯한 골목길을 언니, 동생과 함께 오르내리며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오랫동안 꿈꾸던 영화나 소설 속 공간에 서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숙소 근처 식당에 갔을 때였다. 졸깃하고 부드러운 문어요리가 너무 맛있어서 요리사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더니, 요리사는 활짝 웃으며 감자요리를 서비스로 내주었다. 여유로움이 넘치는 사람들의 친절함 덕분에 우리는 리스본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의 만남은 더 특별했다. 처음 마주한 풍경 속에서 세 자매가 함께한 여행은 한동안 잊고 있던 빛바랜 유년 시절로 떠나는 추억여행 같았다. 그 시간은 해맑고 정답고 아늑했다. 아침이면 “무얼 입을까, 무얼 먹을까” 하며 한바탕 시끌벅적했고, 옷을 함께 입어 한 벌의 옷으로 세 벌의 효과를 보는 일도 자매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가방을 꾸리며 뒤돌아본다. 열흘간의 여정을 마치고 이제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먼저 리스본을 떠난 동생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보며 벌써 그리움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에휴, 이것도 놓고 갔네.”

“그러게 말이야, 언제 철이 들까.”


이 순간의 풍경이 꿈처럼 아련하게 느껴진다. 언젠가는 이 시간이 무척 그리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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