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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내음 Oct 24. 2024

무릎 위의 애벌레

삶의 변주곡

버스가 연희동을 지나 서대문 구청을 막 지날 때, 차창 밖으로 낯익은 거리가 펼쳐졌다. ‘아마 저쯤이지.’ 눈대중으로 메모와 약도를 떠올리며 위치를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근처에 삼거리가 있어야 했지만, 어디를 둘러봐도 가늠되지 않았다. 버스 창밖으로 높고 낮은 건물들이 이어졌다. 버스 안에는 졸고 있거나 바깥 풍경을 쫓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버스가 덜컹거리면서 규칙적인 박자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다음 정거장에서 버스가 멈추자, 나는 서둘러 내렸다.

 어릴 적 살던 옛집을 찾아가는 길이다. 가을 햇살처럼 투명한 기억 속의 동네에서, 세월 앞에 무심한 돌계단과 현대식 마트로 변한 버스 종점 앞 구멍가게가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숨이 턱에 찰 즈음, 골목 끝 언덕마루에 도달하자 발아래로 펼쳐진 동네가 한눈에 들어온다. 신축 건물과 빼곡한 상점들로 그 시절의 정겨운 거리 풍경은 사라졌지만, 애써 지난 추억들을 주워 마음속 퍼즐을 맞춰본다.


‘여기는 뽑기를 즐겨하던 하나네 구멍가게. 저기는 학교 갈 때 들리던 제일 문방구, 저곳은 세탁소가 있던 곳일까.’




기억을 더듬다 보니,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누르스름하게 변한 흑백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여릿여릿 떠오른다. 구멍가게 앞에서 종일 앉아 있었던 봄날의 오후는 무시로 나를 아이였을 때로 데려간다. 말수가 적은 편이었던 나는 가게 안을 살피며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이 기웃거렸다. 온통 세상은 호기심 천국이었을 때니까. 학교 갈 때마다 친구들과 문방구 순례하였고, 예쁜 책받침이나 연필을 사는 날은 종일 기분이 하늘을 날았다. 세탁소 김 씨 아저씨는 내가 지나갈 때마다 수증기를 내뿜으며 “치익 치익 “ 소리 내며 다림질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김 씨 아저씨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느라 세탁소 앞을 맴돌았다.


골목길 언덕 아래로 피아노 선생님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흰 바탕에 알록달록 사탕 무늬가 그려진 원피스를 입고 있다. 우리들의 ‘인생 사탕’이었던 미제 깡통 속의 빨강 노랑 초록 사탕이 그려진 사탕 무늬 옷은 보기만 해도 새콤달콤한 맛이 느껴지며 기분까지 상쾌하게 해 준다. 언덕 아래 집에 살던 선생님은 종종 사탕 무늬 옷을 입고 나타나서 피아노 치기 싫어하던 우리의 마음을 달콤하게 녹여주었다.      


“사탕 옷 선생님이다!”


먼저 발견한 동생이 크게 소리쳤고, 골목길에서 놀고 있던 동생과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비탈진 골목길을 경쟁하듯 후다닥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달리기에 소질이 없던 나는 동생을 따라잡으려다 균형을 잃고 넘어져서 길바닥에 고꾸라졌다. 엄마가 새로 사준 분홍 나팔바지는 흙바닥에 찢어지고 하얀 속살을 드러낸 무릎에서 선홍색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놀라서 달려온 선생님이 나를 업고 근처 병원으로 달려갔고, 선생님의 예쁜 사탕 옷은 순식간에 빨갛게 물들어 버렸다.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시간이 흐르며 상처가 아물고 딱지가 떨어졌지만, 무릎에는 선명한 흔적이 남았다. 쭈글쭈글하고 톡 튀어나온 모양이 마치 애벌레처럼 보였다. 언니와 동생이 나를 ‘애벌레’라며 놀려댔다. 유난히 겁도 많고 소심했던 나는, 그 징그러운 애벌레가 내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고 점점 더 커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무릎 위의 애벌레를 들여다보는 비밀스러운 습관이 생겼다. ‘혹시 더 자라지는 않았을까’ 매일 모양과 크기를 관찰했다. 애벌레의 모습은 내가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과 자세에 따라 다양하게 변했다. 때로는 동그랗게 구부린 모양으로, 때로는 주름이 쫙 펴진 길쭉한 네모로, 또 어떤 때는 날개가 돋아나는 나비처럼 보였다.


내 무릎 위에 선명하게 새겨진 상처를 보며 속상해하던 엄마는 집을 나설 때마다 “천천히 내려가라”라는 말을 습관처럼 반복하셨다. 나는 그 말을 되새기며 천천히 골목길을 오르고 내렸다.




내 인생의 봄과 여름이 지나가고, 어느새 엄마 없는 스물여덟 번째의 가을을 맞는다. 골목길보다 더 넓고 큰 ‘인생’이라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무수히 부딪치고 넘어지며 애벌레가 수없이 껍질을 벗었다. 내 무릎도, 인생도 쑥쑥 자랐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가는 저녁, 골목길에는 주홍빛 노을이 살포시 내려앉기 시작한다. 유년 시절의 골목길 끝에서, 애벌레처럼 동그랗게 구부린 채 어두워져 가는 가을 석양 속에 홀로 앉아 있다. 치맛자락 사이로 언뜻 보이는 애벌레들. 한 마리는 가로로 놓여있고, 작은 애벌레는 모로 서 있다. 반질반질한 애벌레들이 탄생할 때마다 경사진 골목에서 나는 울었던가. 대문이 활짝 열리면서 엄마가 달려 나오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때는 그렇게 높아 보이던 대문도 지금은 그저 평지보다 조금 더 높다고 생각된다. 키가 자란 탓인지 모를 일이다.  

   

‘내 안에는 몇 마리의 애벌레가 살고 있을까.’      

여러 번의 허물을 벗으며 성충으로 변해가는 애벌레의 모습은, 삶 속에서 무수히 넘어지고 일어나며 조금씩 성숙해지는 나의 모습과 겹친다.


감추고 싶고 도려내고 싶었던 무릎 위의 상처는 시간이 흐를수록 옅어지지만, 사라지지 않는 그림자처럼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옷 속에 가려진 채로 눈에 띄지 않았지만, 애벌레들의 이어달리기는 여전하다. 어른이 되어도 나는 가끔 넘어지곤 한다. 무릎에 생긴 애벌레처럼 마음 안에도 몇 마리가 산다. 도시 복판을 막막하게 떠도는 날에는 옛집을 찾아 골목을 서성인다.


비로소 나는 넘어지고 고꾸라지며 삶을 배운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무릎 위의 애벌레는 지난날의 아픔이고 부끄러움이었지만, 그 시간만큼 겹겹이 쌓여 이제는 훈장처럼 내 무릎 위에서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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