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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콜과 구공탄 Jul 22. 2023

말 그대로 욕 ‘들은’ 이야기

사람, 존중, 그리고 소통

“수고하십니다”

“네.. 고맙습니다”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는 무척이나 지쳐보였지만, 자신이 하는 일을 성실히 해나가고 있었다. 어떻게 그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건넨 한 마디에 그는 역시나 지쳐있는 목소리로 하지만, 덤덤히 감사의 말을 전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오랜만에 나의 회사는 신축 현장을 벗어나 이곳 큰 병원에서 의사를 한다는 인도 사람의 3층짜리 집으로 출동했다. 벽지를 뜯고, 샌딩을 하고, 필러를 채우고, 페인트를 옮기고... 거의 100년은 되보이는 듯한 고풍스러운 집에 물씬 풍기는 인도 특유의 분위기를 아랑곳 하지 않고, 뜯고, 찢고, 채우고, 붙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점심 시간을 지나 일하던 중 다른 작업팀이 도착한 듯 했다. 각자 영역이 있기에 나는 그냥 내 일에 집중을 하고 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집중력을 와장창 깨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둘러보니 우리 팀원 모두가 그 소리에 신경이 쓰이는 듯, 어이없다는 듯 허허 하고 웃기만 하는 분과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투로 내게 말을 건네는 분도 계셨다. 아마 방금 도착한 그 작업팀이었던 것 같은데, 도대체 이렇게까지 할만한 일인가? 


 "야 이 18 baby야, 일을 그따위로 밖에 못 해!!! 때려쳐라, 때려쳐, 이 ㅂㅅ baby같으니!!"

 "그 나이 처먹도록 이거 하나 못 해? 조금만 더 땡겨서 붙여야지. 아니 그쪽 말고 반대쪽. 에이구 ** baby."

 "진짜 일 ㅈㄴ 더럽게 못 하네." 


 보통 낯선 이가 있으면, 웬만해선 그렇게 목청껏 누군가에게 욕을 하지는 않는다...고 나는 본다. 작업 중이었으니 술에 취했을리 없고, 딱히 그렇게 욕 먹을만한 상황도 아닌 것 같았다. 기가 죽어보이긴 했지만,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그 청년은 아무 대꾸도 없이 사장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의 지시를 이행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하는거지? 저 사람은 무슨 잘못이길래 저런 쌍욕을 들으면서도 일을 하고 있는거지?'


 아마 나와 함께 일하던 팀원 모두가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에 의구심과 동정심을 갖고 있었나 보다. 쉬면서 한 마디씩 한다. 


 "아니 저렇게 욕 먹어가며 어떻게 일을 해?"

 "저 친구 뭐 잘못 한 것도 없는거 같은데 왜 저러지?"

 "최 부장, 그러니까 잘 해. 나도 내일부터 저렇게 가르칠 수 있어ㅎㅎ"


 마지막은 나의 사수가 실제로 내게 건네신 농담이긴 하지만, 나는 저렇게 욕 먹지 않고, 실수가 허용되고, 도전이 인정받는 업무 분위기에서 일하고 있어 얼마나 감사했던지 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더랬다. 동시에, 그 청년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대신 나서서 그 사장에게 한 소리 하고 싶기도 했다. 꼭 이런 식으로 일을 시켜야 되나요, 당신 아들이 어디서 이런 대접 받으면 어떨거 같으세요?! 언감생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소 귀에 경읽기일 것 같았고, 후에 그 청년이 더 심한 직업적 학대(?)에 시달리게 될 것 같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어 그냥 집어치웠다ㅠㅠ 그래도, 그 청년에게 뭔가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 친구가 뭘 그리 잘못 했단 말인가?!


 내가 느꼈던 그 사장의 욕지거리들은 딱 이정도였다. 


 "난 사장이고, 넌 직원 나부랭이야. 까라면 까!!!"


 내가 듣고, 본 광경은 사람들이 욕쟁이 할머니 국밥 집에서 욕과 국밥을 먹으려고 줄을 서는 이유와는 확연히 달랐다. 시간과 힘을 들여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에서 "더 처먹어, 이놈아. 그래가지고 부모가 너 낳은 보람이 있겠냐?! 깍두기 국물도 더 좀 처넣고." 같은 말은 분명 욕에 가까운 험한 말이다. 그런데, 내가 본 청년에게 사장이 퍼붓은 욕을 넘어선 욕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을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곳이 요즘은 생소해진 친근한 어른들의 표상일 수도 있고, 친절하지는 않은 듯 해도 친숙하게 챙겨주는 정의 상징처럼 느껴져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 마디로, 표현은 험해도 존중받고, 챙김 받는다는 느낌, 뭐 그런게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을 찾아가는 노력의 댓가가 아닐까? 반면에, 그 청년은 직원으로서, 인생 후배로서, 같은 사람으로서도 챙김은 커녕 존중도 못 받았고, 정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으며, 친근한 어른들은 개뿔, 어른이란게 고작 그렇지 라는 경험만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앞선다. 


 나도 고1 때까지는 입에 욕을 달고 살았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렇게까지 욕을 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어느 순간 몇 가지 경험을 하며, 느낀 바가 있어 금욕(?)을 한 뒤로,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전혀 욕을 하지 않고, 혼자 있을 때도 극한의 빡침과 스트레스가 있을 때만 아주 가끔 내적 욕받이를 불러 일으킨다. 물론, 너무 힘들고 그러면 아내와 얘기하다가 몇 번 욕이 나온 적이 있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금욕을 하게 된 것은 내가 한 욕으로 나는 시원할지 모르나 상대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나만의 기분을 욕으로 한 것이니 각자 자유가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자신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모습이라고 판단되었다. 단순히 입이 험해지는 차원을 넘어서서 내 말로 내가 정의되고, 내가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영어로 들은 메시지가 있는데, 거의 못 알아듣다가 딱 하나 알아들었던, 정말 인상적이었던 구절 하나가 이 생각과 이어진다. 


Junk In, Junk Out. (쓰레기가 들어오면, 쓰레기가 나간다)


 음식이든, 글이든, 말이든, 보는 것이든 전부 해당된다. 이 말을 들은 하루 종일 얼마나 내 맘을 휩쓰는지 아주 혼이 났다. 내가 지금 듣고, 보고, 먹고, 읽는 것이 쓰레기는 아닐까, 그래서 내가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쓰레기를 투척하는 것은 아닌가... 


 개인적으로, 욕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욕 테러피'라는 말도 있을까? 그런데 필요한 것이지만, 필수는 아니다. 그리고 욕을 할 수도 있지만, 안 하는게 훨훨훨~씬 낫다고 본다. 내 입으로 내가 말하는데 웬 참견이야 라고 말하기에는 그 파급력이 많이 크다. 내 의도와 상관 없이 쓰레기가 들어왔다면, 그것이 쓰레기로 배출 되지 않도록 정화하려고 애쓰는 것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아닐까? 열 받는다고 다 때려부수고, 힘들어서 죽고 싶다고 다 뛰어내리지 않는 것처럼, 스스로를 다시 붙잡고, 옆사람의 도움도 받으며 다시 중심을 세우는 것이 사람 아닐까? 


 안 된 마음에 쓰기 시작한 가벼운 글이 너무 무겁게 쓰여졌다. 아마 그 청년에 대한 안 된 마음이 정비례하여 반영된 것이지 싶다. 금욕 캠페인을 위해 쓴 글은 아니지만, 욕을 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 상실에 기인한 것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쓰레기를 들이지도 말아야겠지만, 쓰레기를 함부로 배출하도록 버려두어서는 안 되겠다. 그래야 같이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수고하십니다."에 "수고하십니다."라는 일상적인 답을 예상했던 내게 그가 나눈 "고맙습니다."는 말의 울림이 참 크다. 그도 크게 지쳐있던 것이 분명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짠하고, 안 된 마음이 점점 커진다. 부디 이번 주말에 그가 충분히 쉬고, 기분 전환을 하며, 자신을 잘 보듬고, 또 새로운 한 주를 힘차게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욕쟁이 사장 *이 또 지랄을 하더라도, 그는 그의 삶을 소중히 여기면 좋겠다. 


 "당신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익숙해지고, 능숙해질 겁니다. 화이팅하세요!!!^^"


20230719 16:40 ~ 20230722 12:52


사진: UnsplashJohn Came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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