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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담 일지] 7회 차

내가 뭘 잘못했나

by 우주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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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상담 이야기(엄마)에 이어서, 왜 이렇게 내가 바쁘게 움직이는지를 얘기 나눴다.

방학 때도, 새벽 6시에 일어나 영어 공부하고, 인강 듣고, 운동하고 하루를 꽉 채워 사는 삶을 살지 않으면 '오늘 하루 수고했어'라는 이야기를 듣는데도 죄책감을 갖게 되는 나..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는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나에게는 두 살 터울에 오빠가 있다. 오빠는 남자고 첫째라는 이유로 부모님의 기대와 부담감을 받으며 자랐다. 그래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나보다 훨씬 더 컸을 것이다. 성적이 떨어지면 바로 혼나고, 맞기도 했었으니까. 그것에 비해 나는 상대적으로 딸이고, 둘째라는 이유로 공부 못한다고 혼났던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부모님은 나를 비교적 자유롭게 키웠는데, 내가 좋아서 공부한 케이스라고 생각하셨다.


그런데 가끔 부모님이, "너는 네가 원해서 공부한 거야"라고 말할 때면 발작 버튼 눌리듯이 화를 냈었다. 언쟁을 하다 보면, 부모님 말이 맞았다. 부모님이 나한테 공부하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신 적은 별로 없었다.


다만, 공부를 안 하거나 성적이 부모님 기대치에 못 미치면 오빠를 혼냈던 모습을 본적은 많다. 혼을 내고 나서 엄마, 아빠가 우리의 양육 방식 문제로 싸우다가 어두워지는 분위기가 뚜렷하게 기억난다.


- 엄마가 달그락달그락 그릇이 부딪히는 (깨질 듯) 소리를 내며 설거지했던 모습

- 아빠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모습

- 밥을 갖다 주면서 밥그릇을 던지듯 툭툭 던지는 소리

- 그러다가 아빠가 상대적으로 나를 덜 혼냈는데, 그러다 보면 왜 딸만 예뻐하냐며 그 문제로 다투셨던 모습


나는 아직도, 큰 소리에 굉장히 민감하다. 상대방의 얼굴 찌푸리는 모습에도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다.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하게 된다.


나는 공부를 안 해서, 성적이 떨어져서 혼날까 봐 무서워서 공부했다기보다는 언제 집안 분위기가 어두워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할 일을 '알아서' 잘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불시에 숙제했어?라고 물어봤을 때 '아니요ㅠ'라고 말하면 분위기가 더 안 좋아질 테니, 숙제를 미리 해두는 것, 그것이 어린 내가 우리 집 분위기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운이 좋은 건지, 성적이 따라와 줘서

나는 내가 욕심이 많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 원해서 공부를 하고 끝내 원하는 것을 성취해 내는 아이로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2. 정확히 말하면 내가 불안에 떨면서, 하루를 꽉 채워 사는 건 엄마, 아빠의 잔소리 때문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무엇인데,, 그건 엄마, 아빠의 직접적인 잔소리 때문이 아니라 내가 우리 집에서 봐오던 풍경에서 내 살길을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니 누구를 탓하기도 뭐 하다.. 그래서 너무 답답했다. 차라리 누구의 잘못이라면 가서 따지고, 사과를 받아내고 툭툭 털어내고 싶은데 그럴 대상이 없으니까.


상담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물론 맞고 혼나는 아이도 힘들지만, 혼나지 않는데 그걸 지켜보는 아이도 힘들죠. 혼나면 그러고 끝인데, 그 상황을 지켜보는 아이는 언제 또 혼날까, 분위기가 안 좋아지지 않을까, 계속 불안하고 마음 졸이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거든요.

정말 맞다. 물론 오빠도 많이 힘들고 스트레스받았을 것이다. 공부를 못한 것도 아닌데, 첫째 아들이라는 압박감과 부담감을 견뎌내면서 평생을 잘 살아왔으니까. 그런데 그걸 지켜보며 마음 졸이던 어린 나의 삶도 항상 불안했었다.


3. 나는 상담을 하며 습관적으로 '내가 너무 복에 겨워서 이런 상담을 받고 있나' 생각하게 된다. 당장 먹고살 걱정을 안 해도 되니 나에 대해 탐구하고 싶어지는 건가 해서. 당장 오늘의 밥값, 휴대폰 비용을 낼 걱정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오늘 내 마음이 편한지의 여부를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자꾸 은연중에 드러내니 어제는 상담 선생님께서 '그건 아니죠. 절대적 빈곤, 부유, 편안함은 없어요.' 그게 또 OO 씨의 힘듦을 인정 안 해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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