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하고 싶어요.
1. 지난 금요일에는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왔다. 지난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에서 선생님께서 괜찮아졌다고 말하셨던 부분이 이제는 도움이 필요 없다고 얘기하는 것 같아서 두려워졌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괜찮아지면 그런 부분에서도 더 마음이 편해질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러니 또 안심이 되었다.
2. 다시 또 불안감이 올라오는 주말이었다. 그래도 분명한 건 내가 지난겨울방학 때 보다 마음이 많이 괜찮아졌다. 이렇게 내가 마음이 조금 나아질 수 있었던 건, 신이 있다면 (독실하진 않지만, 성당에 다녀요)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가게 해달라고, 맡길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이다. 내가 아무리 뭔가를 하려고 애써도, 하지 않으려고 떼써도 나에게 맞는 길이 아니면, 조금은 돌아가더라도, 세상 속에서 보이는 좋은 길은 아니더라도 뜻이 있겠지 하고 맡기고 싶어졌다. 내가 생각하고,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거에 너무 지쳐버렸었다. 하루 종일 울면서 이런 바람을 기도한 지 한 두 달이 됐나. 그때부터 내 마음은 좀 편해졌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내가 아무리 애써서 뭔가를 성취하려고 해도 내일 죽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되려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일 년, 3년, 5년 뒤를 생각하면서 전전긍긍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때 내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나의 고민이 의미가 없고 아깝게 느껴졌다.
3. 사실 나는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죽을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아니다. 건방진 생각일 수 있고, 시한부 인생을 사는 누군가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지만, 그만큼 나는 힘들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게. 고민도 너무 버거웠고. 그래도 내가 건강한 음식을 먹는 편이고,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있어서 내 장기는 괜찮지 않을까 해서 장기기증도 신청해 놨다. 나보다는 생명을, 본인의 몸을 더 소중하게 여길 사람에게 가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펑하고 이 세상이 터지면 한 번에 죽는 일을 상상해 본다. (오늘 우울이 심한 날인가 극단적인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혹시 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4. 오늘따라 노르웨이가 너무 가고 싶다.. 내가 정말 일로 힘들었을 때 유학휴직을 하고 노르웨이로 석사를 하러 다녀왔다. 거기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 위로를 받았고, 나처럼 고민 많은 도플갱어 같은 친구를 만나 아 내가 이 친구를 만나러 노르웨이까지 왔구나 생각마저 들었었다. 내가 질문하면 노르웨이로 답해주는 분위기가 나를 노르웨이 사람으로 받아주는 것 같아 감사했다 (노르웨이로 한국인 입양인들이 많아서 생김새가 달라도 노르웨이인을 확률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 뒤로 나는 한국에 와서 외국인이 한국말로 길을 물어보면 영어로 대답 안 하고 한국말로 대답한다. 간섭을 하지 않아 무심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무심함 마저도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이니 차별받는다고 느끼지 않아도 됐던 노르웨이 생활이 그립다.
5. 일요일이라 월요병 때문에 우울한 건지, 큰 결정을 앞두고 있어서 무기력해지고 우울한 건지 잘 모르겠다. 왜인지 그냥 다 내려놓고 싶은 밤.. 내일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았으면. 나만 죽으면 엄마가 힘들어지니까, 그냥 내가 원래 없던 딸이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