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쓰기

아이의 기록

by 흐린 뒤에는 맑음

아이와 함께한 글쓰기의 꽃은 일기 쓰기였다.


아이의 경험, 아이의 생각, 아이의 감정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을 뿐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장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글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도 문장이 어수룩하지만 아이의 생각은 그보다 성숙하게 자라났다.


어느 날인가, 일기를 쓰자고 함께 앉은 저녁이었다. 나는 문득 궁금해져서 오늘 교실에서 무엇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썼다.


"아이들이 시끄러워요"


아무 생각 없이, 나는 너의 친구들도 시끄럽냐고 물어보았다. 거기에 대한 답이 나에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친구가 없다. 아이들이 있어요. "


결국, 반 아이들 중에 친구는 없고 그 아이들은 그냥 아이들이지 자기 친구는 아니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무의식 중에 '너네 반 친구들'이라는 표현을 쓰곤 했던 나는 그날 이후 그 말을 쓰지 않는다. 친구와 그냥 아이를 구별하는 애한테, 무의미한 말이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는 후회가 한참 동안 나를 힘들게 하였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파악한 것보다, 아이가 표현해 주는 것보다 아이 안에는 큰 아이가 들어 있었다.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는 생각들 속에서 관계를 고민하고 상황을 정의하는 사고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이후, 나는 아이가 아픈 날 외에는 주말에도 일기 쓰기를 쉬지 않고 한두 문장이라도 쓰도록 하고 있다. 쓰지 않는 날에는 나와 짧게 오늘 일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니까, 일기 쓰기를 해보자.


저녁을 먹고 나면 대체로 긴장이 풀려서 피곤해하므로, 저녁 식사 준비 전에 이 활동을 하면 좋다. 그러고 나서, 일기장을 저녁 식사 후에 다른 가족과 함께 다시 보는 것도 추천한다. 복습도 되고, 아이와 이야깃거리도 생기고, 아이가 자랑을 할 기회도 생기며 다른 가족들도 아이의 하루와 발전을 공유할 수 있다. 사진을 찍어서 붙이다가 차차 아이가 낙서를 하거나 그림을 그려도 되고, 그런 과정 없이 글쓰기로 넘어가도 된다. 일상을 보고하는 것을 연습하는 것이 목적이지 그림을 그리게 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림일기 형식이 존재하는 것은 많은 아이들이 그림을 글보다 먼저 익히기 때문에 일기에 쉽게 접하게 하려고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분신사바 같은 손으로 연필을 잡고 겨우 글을 쓰는 아이한테 그림은 기대하지 않았다). 일기장을 하루에 두 장씩 사용하여, 사진을 붙인 옆 장의 그림 자리에 아이가 크게 글씨를 쓰도록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아이가 스스로 단어를 골라 쓰도록 하고, 차차 제시어를 함께 고르고, 스스로 한 단어를 골라 예시 없이 쓰는 연습을 한다. 단어를 골라 쓰는 것이 잘 되면, 문장으로 넘어가는데 “나는 오늘”로 시작하는 문장을 가르친다. 제시어는 대체로 목적어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나는”을 기본값으로 하고, 제시어를 아이가 고르면 동사를 적절히 알려주어 문장을 완성하도록 한다. 이 단계에서는 동사를 제시하여 고르게 하면 좋다. 스스로 생각해 내면 더 좋겠지만 객관식에서 주관식으로 넘어가는 것이 난이도상 알맞다. 시제를 과거형으로 쓰게 한다. “나는 오늘 무엇을 했다”라는 것이 익숙해지면 과거의 일기장을 들춰보며 비슷한 내용을 찾아서 “나는 [언제] 무엇을 했다”라고 문장을 그 밑에 써서 오늘과 오늘 전의 시간을 인지할 수 있게 한다. 대체로 어제 혹은 지난주 정도가 좋고 먼 과거는 계절이 분류되는 정도까지의 시차를 두는 것이 적절하다. 계절이 동일하면 한해 전이라는 개념을 인지해야 하는데 사진상으로 이해시키기에는 계절이 더 쉽다. 현재와 과거를 먼저 인지하고, 이것이 익숙해지면 현재와 미래를 인지하게 한다. 미래를 인지시킬 때에는 다시 하고 싶은 일 혹은 약속한 일을 찾아서 “또” 하고 싶은지, “여름이 오면” 하고 싶은지 등을 이야기하고 “나는 [언제] 무엇을 하고 싶다/할 것이다” 정도의 동사로 만들어서 문장을 구성하도록 한다.


이것과 병행하여 장소를 넣어서 문장을 완성하도록 한다. 학교에서, 놀이터에서, 마트에서 등등 아이가 자주 가는 곳은 이미 단어를 익혀두었을 것이다. 사진을 보면서 글쓰기를 하는 것이므로 장소를 써넣는 것이 시간을 써넣는 것보다 훨씬 쉽다.


하나의 문장을 잘 쓰게 되면 글을 확장하는 연습을 한다. 다음의 두 가지 방법 중에 아이가 더 선호하는 것을 시켜보자.


하나. 어제의 일기를 보고, 오늘의 일기장에 "나는 어제 무엇을 했다"라고 쓰게 하고, 그다음에 오늘의 일을 쓰게 한다. 아니면, 오늘의 일을 쓴 다음에 "나는 내일 무엇을 할 것이다"라는 문장 구조 안에 내일 할 일을 생각해 내서 쓰게 한다.


둘. 아이가 쓴 문장 앞에 오늘 중에 아이가 기록한 일 전에 한 다른 일을 생각해 내서 추가하거나, 그다음에 한 일을 생각해 내서 쓰게 한다. “나는 오늘 미끄럼틀을 탔다.” 앞에 “나는 학교에 갔다.”를 먼저 쓰면 스스로 시간 순서대로 하루가 흘러가는 것을 복기할 수 있다.


나중에는 사진이 없이 일기 쓰기를 연습하면 된다. 사진 없이 간단한 일기 쓰기를 할 수 있게 되면, 꾸미는 말을 사용해서 생동감 있게 글을 쓰는 방법을 알려주고, "그래서"나 "하지만"같은 접속어를 사용해서 문장을 이어가도록 가르쳐주면 더 짜임새 있는 글이 된다.


비슷비슷한 문장이 계속 이어지고 이것이 습관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 편하게 쓰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육하원칙에 맞춘 문장을 쓰는 연습을 한다. 누가, 무엇을,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왜 순서로 난이도가 있다. "내가"를 주어로 시작하는 문장 쓰기를 연습해 왔기 때문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주어로 해서 문장을 쓰는 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엄마나 선생님 혹은 형제자매와 같은 사람들로 시작해 보자. 무엇을, 어디에서, 언제는 이미 연습을 했으므로 좀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라는 질문을 설명을 하거나 주장을 하는 글에 해당하므로, 이 역시 상당히 어렵다. 설명하기가 주장하기보다는 그래도 좀 더 쉬우므로 나는 아이가 쓸 수 있는 수준의 문장을 미리 찾아서 만들어보고 아이가 이 문장을 쓸 수 있는 상황의 사진을 준비하였다. "가위로 색종이를 잘라요" 라든가 "자전거를 타고 마트에 가요" 같은 문장들이 가능하다.


"왜?"라는 질문은 아이 입장에서 답이 없다고 생각되는 상황도 있을 뿐만 아니라, 인과관계의 역으로 이유를 추론하여 생각해 내는 것으로서 이것은 보통 아이들도 어려워한다. 그러니, 정말 천천히 도입한다. 아이가 "왜?"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하는 시기가 이론적으로는 맞겠지만, 이 트랙을 따라 글쓰기를 하는 아이라면 상당히 요원할 수 있다. 어차피 문해력을 키우다 보면 접하게 될 것이므로 너무 속상해하지 말자.


시중의 글쓰기 교재를 참고로 하여 가르칠 문장을 고민해 보면 도움이 된다. 글쓰기는 그 자체가 하나의 스킬이기 때문에 숙련도를 높이는 데에 굉장히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좔좔 글 읽기 교재의 글쓰기 연습을 보고 일기가 아닌 글을 쓰는 날을 가져도 된다. 사람의 경험은 유한하므로, 자신의 경험만을 가지고 일기를 쓰고 이것을 통해 글 쓰는 연습을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편지 쓰기라던가 자기 소개하기와 같은 글들은 반드시 연습해야 하는 주제들이다.


아이가 꾸준히 어휘를 습득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것을 알게 되므로 쓰기 연습은 끝이 없다. 아이 생각이 자랄수록 정확한 표현을 하고 싶어 하고, 문장의 구조도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써놓은 글을 고치면서 자연스럽게 문법 공부도 되고, 새로운 표현이나 정확하 표현을 익힐 기회가 된다. 우리도 아직 육하원칙에 따른 일기 쓰기와 실용 글쓰기 등을 꾸준히 연습하고 있다.



이전 19화본격적인 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