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작은 양조장의 힘

by 에도가와 J

여러분은 우리 선조인 수수코리(須須 許里,すすこり)를 아시나요? 그가 일본주조의 시작이고, 그를 모셔놓은 곳이 교토의 마츠오타이샤(松尾大神, 한국발음으로 송미대사, 교토의 22곳 신사 중에서도 명성이 높은 곳)다.

일본 문헌에 따르면, 5세기경 조선반도에서 하타일족(秦一族, 진씨일가)이 일본으로 많은 건너왔고, 토목기술, 배틀기술, 양조기술이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하타일족 중 수수코리는 오오미키(大御酒)라는 술을 천황에게 헌상하고,그 술을 마신 천황이 “나는 수수코리가 만든 맛난 술로 기본 좋게 취했다”라는 내용의 노래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술은 어떤가? 김혜련 한국식품연구원에 따르면, 일제강점기때부터 군사독재정권까지 가양주를 금지하면서 전통술의 맥이 대부분 끊어졌다. 밀주를 만들어 마시긴 했지만, 술에 대한 연구가 단절되고, 주먹구구식으로 하다보니 균이나 누룩 관련된 연구가 일본에 비해서 100년 뒤져있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듣다보니, 배은망덕한 일본이 미워졌다. 하지만 배울건 배우고, 그것을 다시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계승해나가야한다.

2019년 한국의 전통술을 살리기 위한 노하우를 배우고자 지역 M본부 <술, 작은 양조장의 힘>의 취재팀과 함께 사케의 고장인 니가타(新潟, 정확한 발음은 니이가타)를 찾았다. 2004년부터 이곳에서는 사케의 진(酒の陣)이라는 술축제가 열린다. 인구 80만의 지방도시가 사케를 즐기기 위해 이틀동안 무려 15만여명이 전국에서 모여들고, 30억엔이상(현 환율로 300억원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주는 황금의 오리알 같은 존재다.




어떻게 니가타현은 사케의 고장이 되었나?

첫째, 쌀이다. 19세기까지만해도 경제중심은 1차산업이였다. 작물의 왕이라 불리는 쌀을 얼마나 재배하는 것이 중요했다. 니가타현은 벼농사를 짓는데 매우 적합한 기후였고, 그 생산량이 일본 최고를 자랑했다. 그 영향인지 1874년(메이지7년)에는 니가타현이 136만명으로 일본에서 인구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그들은 쌀 생산량에 멈추지 않고, 사케만을 위한 쌀품종까지 개발하였다.

둘째, 니가타현 주조시험장이다. 니가타현 사케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한다. 이 연구소는 니가타현의 89개 양조장들이 재원을 모아 설립한 곳이다. 각 양조장의 특성에 맞는 양조기술을 연구해 지원하는 것이 임무다. 원래 니가타의 물은 미네랄 함유량이 적은 연수로 양조에 적합하지 않았다. 주조시험장은 연수를 저온숙성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양조장에 공급했다. 그 결과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당분과 산도가 비교적 낮음)을 내는 탄레이(淡麗담려) 사케를 만들어냈다. 이는 당시 사케의 주류였던 달고 진한 맛(당분과 산도가 비교적 높음)인 노우쥰(濃醇, 농순)의 교토사케를 제치고 돌풍을 일으켰다.

셋째, 정미기술이다. 쌀의 외피, 즉 표층부와 베아에는 단백질, 지방, 무기질 등이 많이 들어있다. 누룩균이나 효모의 증식과 발효를 촉진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이지만, 필요이상 많으면 효모나 효소의 활동을 활발하게 만들어 사케의 맛, 향, 색을 떨어뜨린다. 정미율에 따라 다르지만, 도정할때는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최대한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정미하는 것이 중요하다. 카가노이의 17대 사장인 코바야시상의 얘기를 따르면, 쇼와(昭和1926년-1989년)초기에는 성능이 좋은 정미기계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 양조장에서 정미정도가 70%정도가 최상이였는데, 지금은 기계가 좋아져서 정미율을 50%, 40%, 35%까지 가능해졌다고 한다.

넷째, 양조장의 끊임없는 도전이다. 현재 니가타현에는 89개의 양조장(양조장업체수 전국 1위)이 있다. 그 중 두번째로 오래된 역사를 가진 곳 카가노이(加賀の井)를 방문했다. 17대 사장인, 코바야시상은 굉장히 향이 센 다이긴죠(大吟醸)가 지금 가장 인기가 있다고 했다. 그런 시대적 흐름에 맞춰서 카가노이에서도 다이긴조를 만들지만, 사케의 향이 음식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향을 가진 술을 주력해서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만큼 양조장마다 고객의 니즈에 맞게 다양한 술을 만들어내고, 일본의 사케는 나이든 남성이 마시는 술 이미지에서 젊은층과 여성들도 편안하게 즐길수 있는 술로 거듭 발전하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1650년 창업한 카가노이주조는 니가타현을 대표하는 양조장이다. 에도시대 초기장군이자 카가번(加賀藩)의 2대영주인 마에다 토시츠네가 참근교대(参勤交代, 에도막부가 대명들을 교대로 일정한 기간씩 에도에 머무르게 하는 제도)로 카가노이(당시 숙박업도 병행)에 머물게 되었다. 그때 영주에게 받친 술이 마음에 들어 그로부터 <카가加賀>를 부여받고 상호명으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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