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트다운 후쿠시마에 가자구요

by 에도가와 J


오성형님과 함께한 행복한 시간의 여운도 없이 나에게 상상할수 없는 비극이 닥쳐다.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후 14시 46분쯤, 얼마나 흔들리던지 난생 처음 경험하는 지진에 혼비백산. 도쿄에 진도5강의 지진이 2분이상이였던 것 같은데, 집이 무너질정도로 심각했다. 흔들림이 줄어들어 TV를 트니 <긴급지진속보>로 방송사들도 패닉상태였다. 토호쿠지역 쓰나미 현장중계는 너무 무서웠다.


일본의 시스템 중 <긴급지진속보>가 있다. 지진은 P파로 불리는 작은 흔들림 다음, S파로 불리는 큰 흔들림이 온다. P파를 감지해 지진의 규모와 지원지를 예측하고 큰 흔들림의 S파가 오기전에 방송으로 속보로 내보낸다. 무려 3초안 보도가 된다. 이런 시스템은 기상청에서 전국에 설친한 270군데 지진계와 방재과학기술연구소의 지진관측망 800군데의 데이터를 통해 예측가능하다.


통신두절로 인터넷도 안되고, 전화도 먹통, 불안의 연속이였다. 저녁 8시쯤 전화가 터진 것 같은데, 가장 먼저 연락 온 곳은 부모님이 아닌 나의 옛직장인 M본부 보도국이였다.

K기자: 동일본 대지진 현장 가실수 있으세요?

난: 괜찮아요.

K기자: 후쿠시마 취재가실수 있으세요?

난: 가는건 어렵지 않지만 후쿠시마로 들어가는 공항이 폐쇄된 상태고 후쿠시마원전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무턱대고 가는것보다 상황을 지켜본 다음 철저히 준비해서 취재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K기자: 그럼 후쿠시마 말고, 어딜 취재하면 좋을까요?

난: 아키타공항으로 IN해서 이와테현과 미야기현을 둘러보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K기자: 그렇게 하시죠.


난 서둘러 출장준비를 했다. 재난취재는 처음이라 챙길것이 많았다. 혹시 숙소가 없어 차량에서 자야할 상황이 생길수 있을 것 같아 비용은 들지만 10인승 승합차를 예약하고 간단히 먹을 것도 챙겼다. 취재팀에게는 헬멧, 장화, 그리고 비상식량 등을 요청하고 3월 13일(일) 아키타공항에서 상봉했다.


취재팀과 인사를 나누자말자,

K기자: 코디님, 한달 취재 가능하세요?

난: 버벅거리며, 일단 3박 4일 취재해보고 결정하시죠.


아키타공항에서 피해현장인 케센누마시(気仙沼市)까지는 생각보다 멀었다. 3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이치노세키시(一関市), 케센누마시에서 50KM정도 떨어져 있는데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거의 없었다. 날씨가 어둑해져 촬영을 할수가 없었다. 우린 짐을 먼저풀었다. 이곳은 피해가 없었지만, 현장정보를 얻기 위해 호텔관계 자를 취재했다. 그들은 협조를 잘해줬다. 취재가 끝날 때쯤, 정부관계자처럼 보이는 공무원이 호텔로 들어왔다. 우린 이 찬스를 놓치지 않고 취재협조를 요청했다.


김코디: 안녕하세요. 저흰 한국방송사 M본부입니다. 혹시 정부관계자이신지요?

스즈키상: 네, 국토교통성 아키타현소속으로 케센누마시에 파견나왔습니다.

김코디: 저희가 내일 케센누마취재를 하고자하는데, 동행취재를 부탁드려도 될련지요?

스즈키상: 새벽 5시쯤 나가는데 괜찮나요?

김코디: 저희 언제든지 상관없습니다.

스즈키상: 그럼 낼 로비에서 뵈요.

김코디: 고맙습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취재팀의 구세주, 스즈키상은 아키타현의 국토교통성 관계자였고 이와테현의 케센누마시에 일손이 부족하여 파견된 공무원이였다. 새벽 5시 스즈키상과 함께 같이 출발했다. 고속도로가 지진피해로 인해 일반차량은 진입불가인데, 스즈키상 덕분에 고속도로를 달릴수 있었고 시간도 단축됐다. 케센누마시에 도착하자 스즈키 상을 다시 만나기로 하고 우린 시청에 설치된 본부부터 취재했다. 2시간쯤 지나서, 스즈키상은 우릴 현장으로 안내해줬다. 피해현장은 말로 설명할수 없을정도로 끔찍했다. 쓰나미를 피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사람수색이 한창이였고, 시체가 발견된 현장은 가족을 확인하고자 유족들이 몰려들었고, 가스폭발로 화재가 발생 하고 어마마한 쓰나미의 위력으로 떠밀려온 대형어선과 칼로 베어버린 듯한 아무흔적이 없는 주택터 밖에 없었다.



스즈키상은 현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줬고 우린 하나도 빠짐없이 취재했다. 이런말 하면 안되지만, 어딜 찍어도 아이템이고 그림이였다. 현지에는 물자가 부족하여 취재팀이 피난민들에게 민폐를 끼치면 안되기에 한국에서 공수해온 비상식 량(발열되는 카레밥과 짜장밥)은 꿀맛이였다. 짧은 시간이였지만, 사전준비가 주는 행복이였다. 스즈키상은 헤어지는 취재팀에게 경찰서에 들려 미디어에 발부되는 긴급차량스티커를 신청하라고 했다. 이것이 나중에 제2의 구세주가 될줄이야..


쓰나미로 인해 피해현장은 갈수록 심각해졌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물자운송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가솔린도 동이 나서 주유조차 쉽게 할수 없었다. 가솔린이 떨어져 빌린 렌터카를 버리고 간 사례가 있을 정도로 심각했다. 하지만 스즈키상의 말한마디 덕분에, 우린 긴급차량스티커를 발부받았고 이 때문에 우선순위로 10리터 씩 주유를 할수 있었다. 스즈키상이 너무 고마웠다. 취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쓰나미 피해로 망가진 후쿠시마원전이 멜트다운되었다.이 소식을 접하는 순간 방송사로부터 취재전원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


우린 짐을 챙겨 아키타로 향했다.숙소까지45KM를 남겨놓고 차량에 주유램프가 들어왔다. 눈이 펑펑 내려 기상조건이 너무 안좋았다. 만약 차량이 퍼지면 큰일이였다. 네비게이션을 보니 다음 휴게소에 주유표시의 아이콘이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들어갔는데 주유소가 없었다. 줸장, 더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난 차가 퍼질때까지 가자고 했다. 정말 가슴 졸이며 운전했다. 하늘이 도와 우린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다리힘이 쭉 빠지는 순간이였다.


한가지 궁금한건, 자동차에 주유램프가 들어왔을때, 과연 몇KM까지 갈수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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