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여름,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멋진 사람을 만났다. 히로시마현 오노미치시 인노시마(広島県尾道市因島)의 텃주대감, 이시다조선(石田造船)이다. 이 동네는 오노미치시로 합병 되기전 인노시마시(因島市)였다. 그의 첫 만남은 M본부의 <사내식당>의 취재로, 그의 두번째 만남은 지역M본부의 <지역창생, 강소기업>의 취재때다.
이시다조선은 1919년 목조선업으로 시작으로, 올해 101살이 된다. 3대인 이시다 마사노리대표는 2000년부터 가업을 잇게 되었다. 그는 나가사키조선대학 선박공학과를 졸업했지만, 당시 오일쇼크로 대불황이 닥쳐 희망했던 조선업계로 취업하지 못했다.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울수도 있었을텐데, 철이 없었던 건지 아버지의 뜻이 있었던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버님이 “젊을 때 하고 싶은 것을 해라”라는 한마디에 미국유학을 결심하고 떠났다. 2년 후, 일본으로 복귀해 오사카의 나무라조선소(名村造船所)에서 3년간 실력을 갈고 닦은 뒤, 아버지 밑으로 들어와 경영을 배우며 지금의 이시다조선을 이끄는 선장이 되었다.
조선업계 불황으로 15군데의 중소형조선소가 대기업에 합병되거나 도산되었지만, 이시다조선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배를 만들어내며(소형유람선, 소형어선, 특수어선을 만들어내고, 특히 일본 최초로 3동선과 4동선 배의 기술은 최고), 틈새시장을 창출하며 살아 남았다. 뿐만 아니라 설계도가 없는 배수리도 전문이다. 중소형 배들은 설계도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유능한 엔지니어들이 모두 분리해서 원인을 찾고, 부품이 없으면 직접 만들어 수리 한다고 한다.
이시다대표는 사원이 없으면 사장이 될수 없고, 벌거벗은 왕밖에 안되기 때문에 사원은 저의 보물이다. 손실과 이익을 떠나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것처럼 사원을 아껴야된다고 했다.그는 말뿐만 아니라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이였다. 한달에 한번 이상 열심히 일하는 사원들을 위해 사비를 털어 철판요리를 한다. 고기와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이시다스페셜 오코노미야키>. 그 맛이 끝내준다. 뒷정리도 이시다대표가 직접한다. 참 대단한 사람이다.
그는 2015년부터 지역사회공헌을 위해 도크를 비워 여름축제를 연다. 일반적으로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도크를 비운다는건 상상할 수가 없다. 그 손실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오래 살아남을수 있었던 것은 배를 만드는 노하우도 있지만, 지역주민들과 행정의 응원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했다. 모두 하나가 되어 행복의 웃음꽃을 피울수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여름축제를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말로 표현할수 없을정도로 그는 멋쟁이다.
그의 장인정신! 그의 희생정신! 그의 도전정신! 을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