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로드, 큐슈올레

by 에도가와 J

문득 2002년 H카드회사의 광고카피인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가 생각난다. 만약 나에게 일본에서 힐링하기에 어딜가면 좋을지 물어본다면, 큐슈올레를 추천하고 싶다. 한국인들 에게 올레하면 “길에서 집까지 연결된 아주 좁은 골목길”이라는 제주도방언이 떠오를 것이다. 연간 200만명이상 방문하는 효자손 같은 보도여행길인데, 2012년 일본의 큐슈지방에 올레가 탄생했다.


난 큐슈올레의 비화(秘話)가 궁금해졌다. 2010년 큐슈(7개현- 나가사키현, 사가현, 후쿠오카현, 오이타현, 쿠마모토현, 카고시마현, 미야자키현)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100만명을 돌파했다. 그 중 65만명이 한국관광객으로 큐슈지방의 중요한 고객이였다. 하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한국관광객의 극감으로 관광산업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대지진 참사 후,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한국여행객을 유치하고자 하는 절박함에서 큐슈관광추진기구와 큐슈운수국이 연계해 Visit Japan사업의 일환으로 큐슈올레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철저한 분석도 한몫했다. 지금까지 큐슈를 방문하는 한국관광객들이 “온천”과 “골프” 중심이였으나, 2010년부터 “트레킹과 등산”에 주목한다는 트렌드를 읽고, “걷기”라는 새로운 관광패러다임의 잠재성을 내다보고 전략적으로 만들어낸 아이템이였다. 그 결과 한일 양국의 지대한 관심 속에 2012년 3월 큐슈올레의 4코스가 전격 오픈했다.


방송은 아이템과 타이밍 싸움이다. 이 좋은 정보를 놓치지 않고, 방송동기형인 철웅형이 한국의 여행전문채널 T채널과 손을 잡고 <힐링로드 큐슈올레>를 제작한다고 연락이 왔다. 평균 2명정도 일본에 취재오는 교양프로그램과 달리, 촬영스탭이 많고, 인지도가 있는 출연자까지 섭외하다보니 제작비가 빠듯한 모양이였다. 그래서 난 2011년 JNTO(일본정부관광국)지원사업을 따낸 실력으로 발빠르게 기획서를 작성해 지자체별 관광담당자를 설득시켜 그들이 해줄수 있는 범위내에서 제작지원을 받았다. 가뭄에 단비가 존재였고, 나에게는 큐슈지역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실력발휘할 절호의 찬스였다. 드디어 큐슈의 허브공항인 후쿠오카공항에서 촬영진 8명과 상봉하고 오이타현의 오쿠분고코스, 카고시마현의 이부스키코스와 사가현의 타케오코스 순서로 돌아보는 14일간의 긴여정이 시작됐다.


여기서 잠깐!

지금은 LCC(저가항공) 노선이 많이 생겨 후쿠오카공항으로 반드시 입국할 필요 없습니다. 큐슈올레도 22코스로 늘어나, 방문하고자하는 지역별 항공노선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방송은 인쇄매체(신문과 잡지)에서 표현할수 없는 부분을 다양한 방법(영상, 나레이션, 음악 등)을 사용해서 제작해야하기 때문에 출연자들과 스탭들간의 호흡이 잘 맞아야하고, 감동을 줄수 있는 영상을 담아내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는 연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점에서 이번팀은 완벽했다. 연출이 3명(방송분야 피디2명, CF분야 감독1명)이라 의견이 조율이 안되어 배가 산으로 갈 것 같았지만,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 시너지효과를 발휘했고, 에코음악 작곡가인 제인이 메인 출연자로 그녀가 직접 올레를 걸으며 들려주는 힐링음악은 올레여행이 주는 진정한 의미를 전달하는데 완벽했고, 이번 취재의 목적이 만남과 치유, 깨달음이 있는 올레여행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닫혀있던 마음을 열어 깊이있게 서로를 알아가며 성장하는 것이 컨셉이였는데, 2013년 영화 신세계로 주목받은 배우 박성웅의 가족들이 정점을 찍어주었다.


첫 출발지인 오이타현의 오쿠분고코스는 올레정신인 “조금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체험할수 있는 원칙”에 가장 부합한 곳이다. 전형적인 일본 농촌풍경과 역사유산 그리고 자연이 함께 어울러져있다. 두칸짜리 간이열차가 다니는 무인역인 아사지역을 출발해 타케다성하마을을 거쳐 분고타케다역에서 끝나는 역동적인 역사의 길이다.



대나무숲과 삼나무숲이 우거진 오솔길, 꼬불꼬불 논밭길, 낙엽 바스락거리는 흙길 등이 이어지며 자연을 만끽할수 있는 전반부와 마을을 통과해 주상절리를 거치면서 오카성터와 옛날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타케다성하마을로 이어진다. 후반부는 역사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어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고,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오카성터는 구쥬연산과 소보산을 바라볼수 있는 절경 스팟이다. 일본 최대급 마에석불로 알려진 후코지는 거대한 절벽을 접하고 있으며 절벽을 파낸 바귀굴 안에 작은사당이 있고 바위굴 옆 벽면에 높이 11.3m의 거대한 부동명왕이 조각되어 있다. 특히 후코지는 별칭 피아노절로 현지인에게 알려져 있는데, 바위굴에 있는 사당에 놓인 피아노를 연주할려면 주지스님에게 실력을 인정받아야지만 칠수있다고 한다.


우린 전과정을 출연자와 함께 걸으면서, 빠짐없이 한순간 한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어느덧 해가 떨어지고, 절(묘오센지)이면서 민박집을 하고 있는 오지로상 부부에게 신세를 졌다. 출연자들은 이 지역의 소울푸드인 단고지루와 표고버섯요리를 어머니 도움을 받아 직접 만들어보고 진수성찬을 얻어먹었다. 당연히 맛은 일품이였지만, 도심에서 느낄수 없는 고향에 방문한듯한 편안함이 너무 좋았다. 다만 방이 넓지않아서, 촬영스탭들은 간만에 합숙훈련하는 듯 옹기종기 붙어서 잠을 잤다. 첫날부터 강행군했는데,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담날 오지로상 부부는 길 떠나는 취재팀을 위해, 간단한 주먹밥등 먹거리를 가득 챙겨주셨다. 다들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남은 코스를 위해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촬영 6일차, 드디어 기다리던 배우 박성웅 가족을 카고시마공항에서 만났다. 한국에서의 바쁜 촬영과 아빠역할하느라 피곤했는지, 첫만남은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배우 박성웅의 매력을 느낄수 있었다. 이부스키코스는 아들인 상우 때문에 빛났다. 난 5살인 아들 상우가 같이 온다고 했을 때, 짧은일정에 촬영분량도 많고 애로 인해서 생각지 못한 변수가 많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그건 나의 짧은 생각이였다. 가족의 단란한 모습이 올레의 매력 중에 하나인 편안함과 잘 어울렸고, 상우가 없을때는 부부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서로 업무로 바빠 자주 못했던 얘기를 하며, 서로의 소중함이 느끼는 모습이 잘 표현되었다.


카고시마현의 이부스키코스는 검은 모래가 깔린 해안선을 따라 걷다보면 후지산을 빼닮은 기생화산 카이몬다케(開聞岳)가 웅장하게 보인다. 이를 배경으로 한 어촌풍경은 송악산을 병풍처럼 드리운 제주올레 10코스가 떠오를 정도로 닮아서 그런지 편안하게 걷게 된다.


일본의 최남단역인 JR니시오오야마역을 기점으로 나가사키바나를 거쳐서 카와지리 어항을 지나, JR가이몬역까지 이르는 코스로 현재 4개의 큐슈올레 코스 중에서 가장 평탄하면서도 20.4km로 가장 긴 코스이기도하다. 또한 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천연모래찜질로 특별한 체험을 하고, 열대과일의 대명사인 달콤한 망고를 맛보고,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서 온천을 제대로 즐기고, 흑돼지 샤브샤브에 이지역의 향토요리인 키비나고와 사츠마아게를 먹는 건 지상낙원이 따로 없을 정도다.



일본에서 6월은 장마로 날씨가 변덕스러운데, 이번 이부스키코스 촬영은 날씨도 도와주고, 여러모로 행운이 많이 따랐다. 카와지리어항에서 초등학생들과 지역어민들이 치어방류를 하는 날이였다. 우린 이런 기회를 놓칠수가 없었다. 성웅형도 그걸 바로 인지했는지 짧은 일본어로 담당자에게 부탁해서, 상우도 참여하게 되었다. 나 또한 4살짜리 아들을 둔 아빠로서 상우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마치 내자식이 하는 것처럼 흐믓했다. 다음은 배우 박성웅 차례였다. 어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카고시마의 명주 고구마소주와 싱싱한 회거리를 펼쳐놓고 조촐한 잔치가 벌어졌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지나가듯이 배우 박성웅이 자연스럽게 무리에 끼여 술잔을 돌리며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이번 큐슈올레의 테마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한씬이였다. 촬영도 잘 마치고, 마지막밤 뒷풀이때 배우 박성웅에게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나요?라고 하니 성웅형님이 당연하지하며 우린 형동생 사이가 되었다. 지금도 가끔식 톡을 주고 받는다. 이런 소중한 인연을 맺게 해준 철웅형에게 고마웠고, 성웅형 가족과 함께 큐슈올레를 돌아다니며 가족의 소중함과 아빠의 역할이 뭔지를 배울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어느덧 촬영 10일차, 이쯤되면 다들 피로가 쌓여서 얼굴이 상할법한데, 가는 곳마다 시설이 좋든 나쁘든 온천이 있다보니 그 효과를 톡톡히 보는 것 같았다. 마지막코스인 사가현의 타케오코스다. 후쿠오카에서 JR 또는 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어서 우선 접근성이 좋고, 1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온천마을에 있는 타케오코스는 꽤 치밀하다. 타케오산을 조망할수 있는 이곳은 257계단을 오르는 상급자코스와 산행에 서투르거나 어르신들을 위해 초급코스도 마련해놨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볼수 있는데, 봄에는 벚꽃으로 장관을 으리고, 이케노우치호수를 코스 중간에 배치하고, 3000년 묵은 녹나무 코스를 하일라이트로 마지막에 배치한 것은 꽤 전략적이였다.


이 코스는 사가현관광연맹의 나카시마과장과 유수근주임이 현장에 직접 나와서 도와줬다. 이때 알게된 것은 각 지자체마다 국제교류원이라고 하여 한국직원들이 배치되어있다고 했다. 나랑 동갑이였고, 한국인이다보니 급친해졌고, 그는 지자체별 해외미디어 제작지원에 대한 제도를 자세히 알려줬다. 그 덕분에 난 무기를 하나 더 장착하게 되었다.


일본하면 에키벤(駅弁, 역에서 파는 그 지역의 특색이 담긴 도시락)아닌가. 타케오코스에는 큐슈역 도시락 그랑프리에서 1등한 사가현의 명품소고기 사가규(佐賀牛)로 만든 도시락이 있다. 유주임은 그 비싼 도시락을 사서, 촬영중 배가 출출할때쯤 모든 스탭들에게 돌렸다. 그 맛이 일품이였고, 우린 이걸 프로그램에 녹였다. 유주임의 전략인지 센스인지 모르겠지만, 타케오코스에서 양념역할을 했다.



모든 스탭들이 단결해서 촬영은 무사히 끝났다. 뒷풀이를 하면서 기분이 좋았던 것은 지금까지 큐슈올레 취재를 위해 여러 취재팀이 방문했는데, 이번처럼 모든 코스를 걸으면서 이렇게 세심하게 촬영한적이 처음이라고 했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난 대박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그해 T채널에서 시청률을 최고로 찍었다.


큐슈올레는 한국여행객을 유치하고자 하는 절박함과 철저한 분석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 전략이 통했는지 2012년에 시작해 2년간 5만 7천명(70%인 4만명이 한국인, 나머지가 일본인)이 방문하여 성공적으로 평가되었다. 이를 반영하듯 현재 큐슈올레는 22곳으로 늘어났고, 매년 큐슈올레박람회를 개최하고, 지속관광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작년 한일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지금 큐슈는 많이 힘들다. 거기에 코로나까지 닥쳐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상태다. “This too shall pass”될텐데, 그때 그들에게 힘이 되고싶고 한국방송 최초로 22코스 전편 제작에 도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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