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펠라처럼 살아도 좋겠다
행복을 숫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녀가 가졌던 옷과 그녀를 둘러싼 많은 수의 물건들
큰어머니는 예쁜 옷을 사입혀 주셨다
비싼 보온 도시락을 사주셨다
숟가락은 기능보다 모양이 신기해서 다른 사람들 눈에 띌 만한 것으로 골라 주셨다
금색 머리끈, 빨간 딸기가 그려진 타이즈, 양장점에서 맞춘 울코트...
받는 만큼 그녀는 공부에 매달렸다
눈에 보이는 성취가 있어야 했다
그것으로 증명하려 했다
1등, 큰어머니는 누구보다 잘 키웠다는 성적표를 받은 듯 자랑하셨다
자신이 기르는 아이로 인해 생기는 평판을 신경 썼을 것이다
성취는 그녀에게 중요한 삶의 배경이었다
아니 그 반대였을 것이다
1학년이 지나면 2학년이 되는 것과는 다른 분투가 필요한 시간들이었다
언젠가 그녀보다 그녀를 잘 아는 이가 말해주었다
"당신은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그때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냥 원해서 재미있어서 하는 거라고 반발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결과에만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기를 바랐다
과정과 의미를 중시하는 것이 더 큰 가치라고 생각했었다
오늘, 그녀는 성취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성취보다 행복을 위한 삶의 내용과 목표를 고민해 보는 것이다
행복을 삶의 내용과 목표로 한다는 건 어떤 걸까? 무엇을 해야 하지?
켜놓은 라디오에서 킹스 싱어즈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청취자에게 '소듕하다'는 말을 전하는 디제이의 목소리 뒤로 퍼지는 건 아카펠라였다
반주가 없어도 좋았다
리듬과 박자는 멤버들의 입에서 피어나 하나로 모였다
목소리만으로 가득 찬 음률은 하늘에서 살포시 내리는 눈송이 같았다
성취라는 증명, 그 틀을 너머 마음을 흔드는 노래
큰어머니와 살았던 시간들을 소중한 기억으로 잘 접어서 넣어두었다
성취에는 애정이 따라왔다
누군가의 자랑스러움이 됐다
긍지도 또 장학금도 생겨났다
더불어 계속 배울 수 있는 즐거움과 기회가 열렸다
인정과 부러움, 때론 독립과 자유를 주기도 했다
성취는 두려움을 이겨낸 보상이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성취는 행복과 다른 말이 아니었다
알맹이가 영그는 시간을 기다린 것처럼 껍질 속에 의미가 고이 들어있는 거였다
고소하고 달큰한 예감과 미소까지...
헤르만 헤세는 '건강한 삶에는 나름대로의 내용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라고 썼다(수레바퀴 아래서)
그녀는 건강한 삶을 위해 가져야 할 내용과 목표를 다시 궁리해 보았다
이야기, 그녀는 이야기라는 결론을 발견했다
그녀가 만드는 이야기, 앞으로 쓸 이야기들.
지나간 시간에게 편지를 쓰고 한 챕터를 내려놓았다
이제 다음 챕터를 시작한다
그녀는 어떤 이야기에 속할 것인가?
지난 시간이 난타였다면 악기 없이 목소리로만 화음을 맞추어 부르는 노래, 아카펠라처럼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필라테스 시간에 맞추려고 집을 나섰다
멀리 횡단보도 앞에 사람들이 무리 지어 있었다
신호등은 녹색으로 바뀌었다
깜빡일 때마다 줄어드는 숫자에 조마조마하며 있는 힘껏 뛰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건널 곳의 신호가 바뀔 것을 아는지라 연거푸 달렸다
숨을 몰아쉬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보니 수업 시작 4분 전이었다
'내가 이렇게 사네'
그녀는 뜻밖에도 기분이 좋았다
'본격운동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한다면?'
'지각하지 않고 시간 내에 골인이다'
'좀 더 강해진 것 같은데'
'벌써 몸이 더워졌으니 운동 효과도 좋겠는데'
모든 것이 몸으로 부른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카펠라 같은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그녀는 단골 가게에 들렀다
레드향을 한 바구니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