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갑옷을 입고 눈을 부릅뜬다
팔뚝에 새겨진 문신이었다
몸집은 남자의 심장 크기다
청동을 녹이고 두드려 조각해 놓은 껍질
턱은 잘 벼린 가위 날처럼 펼치고
끝에는 톱니를 달았다
근육이 움직일 때마다
날카롭고 싯푸르다
막 캐낸 철광석
단단하게 버티고 선 두 갈래의 무기
쩡쩡 쇳소리가 난다
실핏줄 구석구석 예민해진다
뜨거운 용광로 앞
혼자서 근육을 일으켜 세울 수 없는,
새끼를 살리려는 한 마리 짐승
날카로운 칼 두 자루를 엮었다
끈적한 땀에도
녹아내리는 살에도
깊은 곳, 가위벌레 한 마리 버티고 있다
젖은 갑옷을 입고 눈을 부릅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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必인가? 心인가? 어깨 가까운 팔에 새긴 문신은 색이 바래고 희미했다. 아빠는 그 흔적을 자랑스레 내놓곤 했다. 그러나 열정을 잃어버린 자신의 시간, 싹둑 잘라내고 현재를 살지 못하게 된 순간을 부인하는 밤마다 그 살을 떨었다. 점점 옅어지는 글자가 입을 오므렸다. 날카롭고 휘황하게 뻗친 꼬리들도 녹슬고 둔해졌다.
강바닥을 헤집고 세월을 낚는 동안 근육이 사라지고 피부색도 까맣게 변했다. 간이 딱딱해지고 배가 부풀었다. 문신은 음각도 양각도 사라졌다. 문신을 파던 벌레 한 마리가 심장 근처를 맴돌다가 피를 토할 뿐...
청년이었을 적에 건설현장을 누비며 잔뼈가 굵었다고 했다. 기술이 좋아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사업을 했다고. 석유파동에 부도가 나고 시골 형님네로 옮겼다는 얘기. 땅도 없이 아빠의 농사 날씨는 늘 어긋나서 열매는 영글지 않았다. 어린 자식들은 늘어났지만 삶은 불모지로 변해갔다. 벌레는 스스로 녹이 슬기로 했던 걸까?
중환자실에 입원한 아빠를 면회하러 갔었다. 복대로 겨우 여며놓은 배는 다 벌레들 때문이었을까? 문신은 마음먹은 대로 살고 있다는 객기도 반드시 이길 거라는 외침도 없었다. 그저 환자복 속에 들어있었다.
아빠만 믿으라던 말. 기억이 스치던 순간 발가락에서 올라오던 찬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양말을 찾아 신을 때부터 거기 구멍이 있다는 걸 모르기로 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