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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학습

거품이 하수구에 고이면서 하얗게 부글거린다

by 편J


저승사자로 변장한 하계 수련회의 조교들

관뚜껑에 못질을 한다


유서를 태운 촛불이 대신 울어줄 뿐

냄새는 그대로다


오지 않는 날들을 경계선으로 밀어 넣고 눈물을 마련하는 행사


소름을 털어낸 어깨들

수돗가에 식판을 엎어놓고 이를 닦는다

거품이 하수구에 고이면서 하얗게 부글거린다


직육면체 내부에 달라붙어서

치약으로 광을 내는 꿈

귀퉁이마다 망치소리가 멈추지 않아 텐트가 다 젖는다


발버둥 쳐도 벗겨지지 않는 삼베옷

참고서마다 만발한 국화는 이파리를 뚝뚝 흘린다

길게 쏟아지는 장대비

화장터를 부록으로 끼워준다


출구를 잃어버린 장마

빛을 삼켜버려서

레크리에이션 시간은 입이 비리다



*****


고2 여름방학 수련회였다. 텐트에서 지내면서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연일 비가 쏟아졌고 밤새 도랑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들었다. 땅은 축축하게 젖었다. 처음 만난 어색함도 잊고 옆텐트 친구들과 껴안고 잤던 기억.


하이라이트는 장례식이었다. 습하고 비린 추위, 안경에 서려 앞을 가리던 공기, 충분히 두렵고 무서웠다. 유서를 쓰고 가족들을 생각했던 것 같다. 눈앞에 희미하게 촛불이 흔들리던 장면 그리고...

관 속에 누웠다. 모서리를 치던 망치소리. 탕탕탕탕


너무 일찍 다음 진도를 나가버린 건 아닐까? 생각했다. 감정들 속에는 화가 들어 있었던 것도 같다. 삶이 오기도 전에 마지막 장을 먼저 가르쳐주려던 프로그램.

그때의 나는 아무런 배움도 없었던 걸까? 선행학습이라는 제목을 생각하게 된 건 여전히 사춘기를 맴도는 반항심 때문인가? 이제야 아이의 마음에 도착한 이유일까?


심호흡을 한다. 창밖의 공기는 어제보다 선명해졌다. 창문을 닦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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