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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경윤 Nov 19. 2024

중력 콘서트

5화

레이저간섭계의 복구는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한 일의 대부분은 청소였고 그다지 대단한 정밀도를 요구하지 않는 작업들이었다. 하지만 레이저 소스의 안정과 반사경의 미세 정렬은 나노미터 수준의 정밀도를 요구했고 알콜성 수전증을 가진 노인과 유리컵 깨기의 달인인 소녀가 수작업으로 진행하기에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스케줄은 자꾸만 미뤄졌고 인내심이 부족한 쪽은 보통 젊은이다. 


‘오늘은 진전이 좀 있으면 좋겠는데요. 이러다 저 졸업할 때까지 먼지 냄새만 맡겠어요.’

‘내 계산에 따르면 16일 후에 테스트 가동을 할 수 있어.’

‘16일 후에 아저씨 계산이 수정되겠죠.’

‘아냐, 이번엔 정말 장담해. 네 모국어로 말하자면 손에 장을 지진다.’

‘난 모국어 할 줄 모르고, 그 얘기는 벌써 5번이나 들었는데요.’

‘뇌용량이 남아도나 보네. 그런 걸 세고 있냐?’

‘그리고 아저씨 계산에 따르면 작년에 연방정부가 해체되었어야 했죠.’

‘다른 평행우주에서는 전부 해체되었어. 우리 우주만 이상한 거야.’

‘검증할 방법이 없는 이론으로 도망가는 건 개잡놈들의 짓거리라고 했잖아요.’

‘거참, 오늘따라 되게 툴툴대네! 오늘이 무슨 말 꼬리 잡기의 날이라도 되는 거야?’

‘오늘은 엄마의 기일이에요.’


월레스 씨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는 약 때문인지 대체로 날짜감각이 없었다. 


‘... 미안하게 됐군.’

‘저기... 이제라도 다른 방법을 찾으면 어때요? 넷에서 여분차원계측기를 싸게 제작해 준다는 사람을 만났는데...’

‘내 뇌가 아무리 약에 절여졌어도 여분차원계측기 정도는 만들 수 있어. 못 만들어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야.’


중력파 관측을 위한 여분차원계측기를 만드는 방법은 예전엔 손쉽게 찾을 수 있었고 필요한 장비도 이런저런 방법으로 구할 수 있었다. 덕분에 한 때는 벨테브레이 협주곡을 듣는 것이 아마추어 천체 관측가들 사이에 유행이었고 중력파를 음파로 변환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만들어졌었다. 그중에는 엄마가 만든 그래비닉스라는 프로토콜도 있다. 그래비닉스 프로토콜은 벨테브레이 협주곡의 중력파에 포함된 비선형성 고차 모드, 즉 일종의 하모닉 디스토션을 효과적으로 감쇄시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이 중력파관측 장비를 보유하는 것이 전면 금지되어 있다. 6년 전 오늘 일어난 사건 때문이다. 


6년 전 오늘, 어떤 망상증 환자가 유럽의 한 도시에서 그레이 구 테러를 일으켰다. 테크 테러 대응팀이 그가 만든 나노머신의 알고리즘을 해석해 카운터머신을 살포할 때쯤엔 이미 도시의 절반이 녹아내렸다. 엄마는 벨테브레이 협주곡을 관측하는 아마추어 연구자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그곳에 가있었다. 테러범은 컨퍼런스 참석자 중 한 명이었고 연방정부는 연결점이 없는 두 가지를 아무 근거도 없이 원인과 결과로 짝지어버렸다. 그들은 벨테브레이 협주곡이 인간의 정신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망한 컨퍼런스 참석자 전원을 테러 공모자로 몰아갔다. 수사관들은 우리 집에서 엄마가 남긴 벨테브레이 협주곡 레코딩을 발견하였고 덕분에 나와 아빠는 반년이나 정부시설에 수용되어 무의미한 정신감정 평가를 받아야 했다. 엄마를 잃은 10살 소녀가 슬픔을 추스르기에는 최악의 환경이었다. 아빠에게도 그랬겠지. 얼마 후, 안보국의 수사가 편견과 억지로 끼워 맞춘 엉성한 결론임이 드러나고 아빠와 나는 간신히 풀려났지만 우리에게 찍힌 낙인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다. 



-계속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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